들에 핀 개망초 꽃을 보아라

만약에 예수님께서 우리 마을에 오셔서 산상수훈의 말씀을 하신다면 아마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를 생각하여 보라” 대신에 “들의 개망초 꽃이 어떻게 자라는가를 생각하여 보라”고 하셨을 것이다.

개망초! 우리 고향 김제 만경 들녘에 지천으로 피었던 천덕꾸러기 풀꽃이다. 그 꽃은 예쁘지도, 귀엽지도 않고, 향기도 없고, 맛있는 나물도 아니고 약초도 아니어서 우리들의 눈길을 끌만한 요소가 하나도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마구 분지르고 짓밟고 놀아도 마음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던 그런 꽃이었다.

그런데 40년만에 고향에 돌아온 나를 그들이 환영해주었다. 그 많던 꽃들과 나물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그들만 의연히 남아서 고향의 들녘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을 주목하여 바라보며 인사를 건네고 나니 눈물이 주르르 쏟아졌다. 꽃들이 잔바람에 고개를 들며 나를 보고 웃었다. 그 순간 꽃들이 사랑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세상 풍파에 시달리면서도 해맑은 영혼으로, 아무도 바라봐 주지 않는 들녘에서도 단정한 모습으로 서있는 그들이 너무 귀하고 고마웠다. 아 얼마나 소탈한 꽃인가! 아 얼마나 다정한 꽃인가! 아 얼마나 조용한 꽃인가!

개망초 들판에 서면 샨띠홈 아이들과 믿음의 집 아이들 그리고 우리 달릿 아동들이 절로 떠오른다. 꽃봉오리가 가난한 우리 달릿 아이들의 해맑은 눈망울 같다. 달릿 아동 중에서 특별히 우리 “샨띠홈”과 “페이뜨홈”의 아동들은 아름답지도 않고 영리하지도 않고 아무도 바라봐주지 않는 “개망초 꽃”이다.

부모님들도 에이즈로 병들어서 죽었고 자신들 또한 에이즈에 수직 감염되어 있는 세상이 보기에 쓸모없고 거추장스럽고 위험한 존재들이다. 세상의 천대와 무관심에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거칠고 투박하게, 굳세고 단호하게, 외롭고 서럽고 고달프게 지낸다. 그들은 모두 형편없는 마을 공립학교에 다닌다. 누구도 영어로 교육을 받는 좋은 학교에 갈 엄두를 내지 않고 누구도 부모님이나 어른들로부터 공부하라는 말을 듣지 않는다.

나도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권면하며 용기를 주지만 동굴 같은 작은 방에서 10명씩 지내는 우리 아이들의 현실과 에이즈에 걸려 있는 그들의 건강을 생각하며 차마 초달하지 못한다. 오직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만지시고 위로하시며, 꿈을 가지도록 은혜를 베푸시는 것뿐이다.

개망초 꽃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샨띠홈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아이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특별히 엄마와 아빠에 목말라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부모님이 일찍 세상을 떠난 탓에 투정 한 번 부리지 못하고, 재롱 한번 떨지 못하고 서럽고 외롭게 자라는 아이들. 오죽하면 “엄마”라고 부르면 대답만 한 번 해주어도 좋겠다고 했을까? 얼마나 그리우면 하나님께 자기 죄 때문이라면 용서해주시고 단 하루 만이라도 엄마를 볼 수 있게 기적을 베풀어주시라고 간청하는 기도를 드렸을까? 얼마나 사랑 고프면 엄마가 시꺼먼 손가락으로 떠먹여주는 밥을 먹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을까? 다시 태어나도 부모님의 아들로 살겠다고 맹세하는 것일까?

엄마에 고픈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 그냥 바라보는 것뿐이다. 하찮은 성적일지라도 성적표나 시험지를 부모님께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일인가! 나는 시험을 보고 성적표를 받아와도 보여줄 사람도 없고 보여 달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는 것이 얼마나 슬프고 외로운 것인가를 그들을 통해서 배웠다.

어느 날, 10살짜리 키란이 주머니에서 접고 접어서 눌리고 눌려서 걸레가 된 성적표를 내게 보여주었다. 알아 볼 수 없는 성적표를 보고 잘 했다고 칭찬했을 때 키란의 행복해 하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뒤부터 아이들은 나에게 보여주려고 성적표를 잘 간직하였다. 성적이 좋던 나쁘던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성적표를 보여주면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고 한 번 품에 안아 주고, 한 번 여러 사람들 속에서 시선 집중을 받으며 박수를 받는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성적표를 정성껏 보관하였다.

성장하는 과정동안 부모님에게 꿈이 무엇인지? 희망이 무엇인지를 질문 받고 대답하는 것이 얼마나 가슴 벅차고 멋지고 신나는 일인지를 그들을 통해서 배웠다. 아이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는 것인지를 깨달았다. 그런데 세상에서 누가 고아들에게 그것도 에이즈에 감염된 아이들에게 꿈을 물을 것인가? 희망을 가지라고 용기를 줄 것인가? 아무도 없다.

희망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꿈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만날 때 마다 거듭 희망과 꿈을 물었다. 아이들은 웃고 떠들며 장난으로 “운전사, 교사, 엔지니어, 경찰관, 의사, 간호사, 공무원, 군인, 사업가”라고 대답을 하며 즐거워했다. 그러자 점점 꿈과 희망을 말하는 아이들의 눈동자가 빛나기 시작하였고 얼굴에는 생기가 감돌았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진짜로 꿈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꿈을 품기 시작한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자주 던진다.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되어요”, “노력해야 되지요”, “부지런해야 돼요”, “정직해야 되어요”, “기도해야 되지요”라고 대답을 한다. 앞을 다투어서 정답을 말하는 아이들에게 나는 마음속으로 ‘태어나면서부터 대학 졸업 때 까지 부모님과 가족으로부터 완전 지원을 받으며, 배우고 익히는 일반 아이들과 고아인 너희들이 나란히 어깨를 겨루기 힘들어. 애들아, 너희는 일반 아이들보다 꿈을 위해서 10배, 100배, 1000배 노력을 해야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해라. 꿈을 이루며 살도록 도와주시라고 울부짖어라. 그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실 거다.’라고 외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누구나 다 명절이나 생일날, 심부름을 잘 했을 때, 좋은 성적을 냈을 때, 착한 일을 하면 부모나 어른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선물이나 용돈을 받는다. 선물과 용돈을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설레고 신나는 일인가!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선물이나 용돈을 받는 설렘, 기대와 흥분을 느껴볼 수가 없다. 누가 고아들에게 애정과 관심을 담은 선물이나 용돈을 주겠는가?

생각해보면 우리의 아름다운 추억 속에 적지 않은 부분이 가족, 이웃, 친구들과 함께 맛있는 것들을 먹었던 일,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받은 예쁜 옷이나, 신발, 가방, 인형, 책 등의 선물들과 어른들에게 격려와 사랑의 표시로 받은 용돈, 가족들과 함께 했던 놀이와 여행 등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이런 즐거운 추억을 만들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부모가 없고 가정이 없는데 어디서 그런 즐거움을 맛볼 수 있겠는가! 우리 샨띠홈을 비롯한 거의 모든 고아원들이 아이들의 의식주 해결과 교육, 의료 혜택을 주는 정도까지 일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니 먼 장차에 어린 시절을 추억을 떠올리며 기뻐할 수 있도록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준다는 것은 감히 생각할 수도 없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이 미소를 지으며 어린 시절을 회고할 수 있도록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여행도 하고 다양한 놀이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맛있는 것도 먹고 컴퓨터 게임도 하고 관광지도 방문하여 견문도 넓힐 수 있는 “비전트립”을 시작하였다.

3박 4일, 또는 4박 5일 동안 아이들은 숲의 새처럼 노래 부르고 나비처럼 춤추며 마음껏 웃으며 먹고 마신다. 아무 생각 없이 그림도 그리고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 하나님께 아뢰는 소원 등을 글로 쓰면서 아이들은 함께 울며 기도한다. 아이들을 다시 시골로 돌려보내는 시간이 되면 내 마음이 짜해지지만 선물과 용돈을 받으며 부잣집 개구쟁이 아들처럼 놀았던 며칠간의 추억으로 든든해진 아이들은 내년을 기약하며 씩씩하게 차에 올라탄다.

나는 아이들의 부모님을 대신해서 용돈과 선물을 가능하면 많이 주고 싶다. 나는 그것들이 아이들에게 세상은 살만한 곳이고 삶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가르쳐 줄 것이라고 믿는다.

형제나 자매가 어울려 함께 산다는 것은 축복이며 참으로 든든한 일이다. 형제자매가 없다는 것은 성장기 동안 집에서 혼자 지냈다는 말이 된다. 함께 싸우며 울고불고한 일이 없다는 뜻이고 함께 야단맞고 벌 받은 일이 없으며, 서로 시기 질투하며 경쟁한 일도 없다. 서로 협력하고 도우며 우애를 쌓고 즐겁게 놀 일이 없고, 편들어 주고 보호하느라 용기를 내고 수고를 해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함께 노래하고 게임을 하며 TV를 보면서 응원하는 기쁨을 맛볼 기회가 없었다는 말이다. 참으로 형제자매가 없다는 것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진정으로 나눌 사람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우리 아이들은 거의 다 혼자다. 언니와 오빠, 형이나 누님이 없다. 싸울 때 편들어 주고, 아프고 슬플 때 눈물을 닦아주고, 공부도 도와주고, 힘들 때 서로 위로할 형제자매들이 없다. 그래서 마음을 둘 곳이 없고 아픔을 호소할 대상이 없다. 나는 아이들이 언니와 형 또는 누님과 오빠로 성장하며 서로 사랑하며 도울 수 있도록 큰 아이와 작은 아이를 묶어서 짝을 지어주었다. 형처럼 생각하고 존경하라고. 동생처럼 생각하며 공부도 가르쳐 주고 챙기라고. 언니처럼 생각하며 의지하라고. 동생처럼 생각하며 머리도 빗겨주고 옷도 예쁘게 입히라고. 서로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며 믿음으로 함께 살라고.

부모님이 에이즈 때문에 돌아가시고 친척들이 받아주지 않고 오갈 때가 없어서 샨띠홈에 온 아이들이라서 서로의 형편과 처지를 잘 이해한다. 그래서 서로에게 관대하고 넉넉하다. 언뜻 보기에는 서로 다정하며 친하다. 그러나 이제 사춘기가 된 큰 언니들과 형들인 우리 아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세상의 벽과 차별에 대한 분노와 불안, 두려움이 있다. 거대한 세상의 벽 앞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두려움과 공포로 떨고 있는 작은 벌레 같은 아이들의 눈물이 내 가슴으로 방울방울 떨어진다.

나는 안타깝게도 이들을 위해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분노와 두려움의 극복과 해소를 위해서 일기를 쓰기를 지도하였으며, 드럼반을 만들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는 모든 아이들에게 무조건 장학금을 주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현재 내가 살아 있어야할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을 바라보며 약속대로 장학금을 주기 위해서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개망초 꽃처럼 예쁘지도, 귀엽지도 않고, 향기도 별로고, 맛있는 나물도 아니고 약초도 아니어서 세상에서 별 볼 일이 없는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그리운지 빵 반죽을 분할하고 성형하며 많이 울었다. 빵을 배우면서 어렵고 힘든 과정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도 내 마음 속에서 함께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의 응원의 힘이 컸다

눈이 유난히 크고 조용하며 무슨 이야기든지 열심히 귀담아 듣는 나래쉬, 일기를 날마다 정성껏 쓰며 언제나 살며시 다가와서 내손을 꼭 잡는 나래쉬가 내 눈 앞에서 자주 어른거렸다. 지금도 개망초 꽃 같이 바람에 흔들리듯이 아이들이 내 눈 앞에서 흔들리고 있다.

비자 문제로 고통당하고 있는 나에게 인도에서 기쁜 소식이 왔다. 샨띠홈의 큰형들인 라메쉬, 벵까따 라마나, 존 밥이 10학년 국가시험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하여 칼리지에 진학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페이뜨홈의 나레쉬, 샤밀라, 푸리티도 합격했다는 낭보가 날라 왔다.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한 우리 아이들의 합격 소식에 감격의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아이들과 하나님을 향해 환호성을 발하였다.

“애들아, 고맙다. 그 열악한 환경에서 해냈구나. 장하다. 애들아, 약속대로 장학금을 지불할 거야. 파이팅!”
“할렐루야! 하나님 감사합니다. 당신은 참으로 고아들의 아버지이십니다. 언제나 우리 아이들을 보살피시며 위로하십니다. 아버지! 제가 그 아이들을 위해서 큰 잔치를 열어주고 싶지만 여기 있어서 잔치를 열어주지 못하니 친히 축하의 잔치를 열어주십시오. ”

그 날 나는 개망초 꽃 들판에서 메아리치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들의 개망초 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그렇다! 우리 아이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키우는 개망초 꽃이다.

<필자 소개>

한신대학교, 동대학원 졸업

영주중앙교회, 군산한일교회, 베다니집 등에서 시무.

1997년 전북서노회 파송 인도 선교사로 출발.

1999년 기장총회 파송 남인도 교단 선교동역자로 데칸고원 라열라씨마 일대에서 달리트 선교에 동참해 오늘에 이름.

2007년 7월 13일 전 인도 신학 협회로부터 명예신학박사 학쉬를 수여.

비전아시아미션 창립 이사(2005년 11월 30일)이자, 비전아카데미(지도자훈련원) 설립 이사(2006년 6월)

인도선교 10주년 기념시집 <비아돌로로사>, 선교 17주년 기념에세이 <선교사는 거지다>의 저자

<후원계좌>

국민은행 520702-01-176813 이옥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