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포시 민통선안에서 민통선평화교회를 개척해 18년간 목회를 해온 이적 목사의 자전적 성격의 에세이 <민통선 예수>를 매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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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순간 드디어 김대중 총재가 포문을 열었구나 싶었다. 뉴스는 계속 이어졌고 박부총재의 삼청발언은 엄청난 논란이 되어 사회적 충격으로 일파만파로 퍼져 나갔다. 내가 바깥에 나가면 만나는 사람마다 <야, 이선생 소원 풀렸어, 축하해>하는 소리가 줄을 이었고 그들은 내가 평생 젊음을 그 일에 매달렸음을 알고 있기에 더욱 더 축하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아직 멀었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군사정권이 쉽게 고백을 하지 않을 겁니다. >라고 답만 했다.
정말 나의 대답처럼 군사정권은 박 부총재가 본격적인 삼청진상규명을 요구했지만 그들은 끝까지 부인했다. 삼청에서는 죽은 사람도 없고 가혹행위도 없었다. 도리어 그들을 갱생시켜 사회생활을 잘 도왔다. 그들은 한결같이 그 같은 말을 앵무새같이 반복하면서 삼청인권유린을 은폐하기에 급급해 했다.
그러나 그들의 삼청 덮기 이면에는 그들이 저지른 죄의 댓가에 당혹해 하는 모습들이 역력히 드러났다 . 삼청교육대 사단장을 맡았던 사람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삼청교육대를 무리하게 진행한 측면이 있다라고 자기 고백을 하기도 했으며 또 어떤 관계자는 삼청교육대 계획을 짧은 기간 안에 빠르게 진행하다보니 너무 졸속으로 처리했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어쨌든 박영숙 부총재의 삼청진상규명 요구가 있고 난 다음부터 삼청진상규명은 빠르게 진행되어갔다.
그로부터 얼마 후 군사 정부는 깜짝 놀랄 정보를 발표했다. 야당의 진상규명요구와 국민들의 정서에 굴복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들은 삼청에서 사망자가 43명이 있었다고 공식 시인을 한 것이었다. 이에 함께 조사활동을 벌였던 평민당측에서는 4명이 더 많은 47명으로 다른 집계발표를 했다.
이제 정부가 공식적인 사망자 숫자를 발표하다보니 그야말로 국회는 벌집을 쑤셔 놓은 것처럼 시끄러웠고 국민들은 나의 책을 보고 <설마….>했던 것이 사실로 드러나자 다들 경악을 금치 못하는 분위기였다. 언론들에서는 내 책을 인용하여 삼청기획시리즈를 연재하여 자체 진상규명 활동을 벌이는가 하면 야당들에서는 당내에 삼청특별위원회를 설치하여 전국적으로 피해자 접수를 받기에 이른다.
정부는 88올림픽 유치와 올림픽 개최 원년을 맞이하여 자기들의 정권 홍보에 정신이 없는데 <웬 악재냐> 싶을 정도로 충격을 받고 있었다. 나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더, 더욱 부지런하게 뛰고 있었다. 나를 부르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를 막론하고 막 뛰어다녔다. 심지어는 영등포산업선교회, 흥사단, 교회의 청년부 같은 곳에도 부르면 서슴없이 뛰어갔다. 영등포산업선교회는 노동자들이 모여 있는 단체로 진보교단의 어느 목사님이 이끌고 있는 단체였다.
그곳에 가서 강연을 하니까 강연비가 3만원이 나왔다. 물론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숙식하고나면 3만원이 더 나온다. 하지만 강연을 끝마치고 뒷풀이를 하면서 주최 측이 준 3만원과 내 돈을 합하여 음식비를 내가 계산하다보니 이건 완전히 적자다. 뒷날 외국어대학에 가서 강연을 마치니 10 여만원의 강연비가 나와 차비를 하여 부산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오라는 곳 찾는 곳을 뛰어다니다보면 항상 느끼는 것은 자금 부족이었다. 그래도 부르는 곳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곳이면 별 부담 없이 찾아가서 강연을 할 수 있는데 그렇지가 못할 경우엔 내 돈으로 숙식을 해결해야 한다. 이런 땐 참으로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은 경제에 구애를 받지 않고 전국으로 쫓아다니며 군사정권의 폐해를 호소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하지만 군사정권과 한 판 벌이기로 작심을 한 나는 강연비는 제껴 두고 내 강연을 듣겠다는 곳이면 무조건 달려가 군사정권의 인권실종과 민주주의에 대해서 얘기했다.
<인권의 정착 없이는 미개국이며 선진국은 항상 인권이 잘 정착되어 있는 나라일수록 그 가치척도가 다르게 평가된다. 우리나라도 군사정부를 물리치고 하루빨리 선거로 뽑은 대통령(당시는 간선제였음)을 배출하여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 정치를 하는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내 강연의 마지막 주요 요지였다.
나는 다른 한편으로도 삼청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을 했다. 신동아에 악몽의 삼청교육대를 투고하여 논픽션으로 당선된 주문진의 정인수씨를 찾아갔다. 정인수씨는 마침 평민당 원주, 양양 지구당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당인이라 색깔과 의식이 우리와 맞아 떨어져 금방 의기투합이 될 수 있었다. 그와 나는 삼청피해자 단체를 만들어 활동을 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리고 전 충주 MBC사장 출신으로 삼청교육대를 끌려갔다 온 유호씨를 고문으로 앉히고 유모목사등과 함께 <삼청교육대진상규명전국투쟁위원회>라는 이름이 긴 단체를 결성하였다.
이 단체가 결성되자 그동안 흩어져 있던 전국의 피해자들이 속속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내 아닌 다른 피해자들을 만나다보니 이들의 피해상이 말이 아니었다. 남편이 죽고 난 뒤 먹고 살기 힘들어 아이들과 자살을 기도하다 불구자가 된 여인, 다리가 불구가 되어 다리를 질질 끌며 찾아오는 피해자. 외아들을 잃은 어느 노모, 남편을 삼청교육대에 뺏기어 미쳐버린 아내, 아내가 가출하여 어린아이 둘을 가는 곳마다 데리고 다니는 사내, 삼청에서 하체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된 사내, 소변을 볼 수 없어 호스로 연결하여 오줌을 받아내는 피해자, 그 피해자의 종류가 하도 많아 기록을 다 하기 힘들 정도로 군사정권의 폐해는 엄청났다. 우리 단체는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는 사망자와 행불자 집계에 들어갔다. 그리고 실제 피해자 수도 집계해보기로 했다.
우리의 이런 활동소식이 언론을 통하여 알려지자 정보기관 등에서는 비상이 걸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세 들어 있던 마포 사무실 근처에는 사복형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출입자들을 체크하기 시작했고 피해자들의 회유공작도 서슴치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군사정권에 대한 포문을 절대 닫지 않았다. 나는 우리 조직의 대변인을 맡아 있었으므로 주로 대 언론과 성명서 발표를 주 업무로 했다.
나는 수시로 성명서를 발표하여 시의적절하게 움직였으며 때로는 국회와 민정당사 앞에서의 집회도 유려하게 이끌고 나갔다. 정인수씨도 정당인 출신이라 시국대처 능력이 탁월하여 많은 활동을 하였다. 삼청진상규명위는 나 혼자서 부산서 운영하던 단체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그 움직임이 신속 정확했다.
우리는 정당대표들인 김영삼, 김종필, 김대중씨를 공식방문 하여 우리의 요구사항을 전달하곤 했다. 당시 김영삼씨가 이끌던 통일민주당은 우리 일에 아주 소극적으로 대처하였는데 그는 우리단체를 평민당 하부조직쯤으로 인식하며 전혀 협조를 하려들지 않았다. 쉽게 말하자면 삼청문제는 정치적으로 평민당에 이미 기선 제압을 당했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어 그들은 역사적인 인권실종사건의 규명보다 당리당략적 입장에서 우리 사건을 대하는 듯 했다. 우리는 더 이상 통일민주당에는 기대를 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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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이적 목사 약력 -1957년생 경남 통영 출생. -1986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기관지 민족문학에 <안개속으로><연작시 삼청교육대10> 등으로 신인추천. - <80년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3년 구금, 88년 <미주중앙일보> 정화작전 연재 91년 <대한매일 창사기념/ 장편소설 적도> 당선, 80년대 군사독재 저항문인 단체였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후신인 <민족문학작가회의 창립회원> <민예총 창립회원> 1987년 삼청교육대사건을 최초로 폭로한<삼청교육대정화작전/전예원 87>발간. 이후 <장편소설 북방산계곡의비밀/90광야> 장편실록 <청송감호소 죽음의 그림자> 정치평론<대통령의 늦바람/남풍89>등이 있으며 시집 으로 <바스티유의땅/한겨레 88><이별과절망의둔주곡/ 푸른숲91>< 바다가 된 그대에게/ 새암바다/2000>등 기타 <김대중 살리기 공저><분단과통일시 1,2집/공저><사람과문학/ 공저>등 20여권의 작품집이 있다 현재 저항문인 단체인 <분단과통일시 동인>, <우리시대의시인들 동인>으로 활동 하고 있으며 경기도 김포시 <민통선평화교회담임 목사>로 시무 하고 있음. |
이적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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