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선교사로 파송되어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이옥희 목사의 <연꽃과 십자가>를 분량상 2회에 걸쳐서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타밀나두 주의 수도인 마드라스에 도마 관련 유적지가 세 곳이 있는데 그 중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지로 선포된 성 도마성당이 가장 유명하다. 1896년에 건축된 고딕식 하얀 건물이 하늘을 찌를 듯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이 성당의 제단 앞에 세워진 십자가의 예수상은 유별나다. 하얀 옷에 단정한 홍포를 걸치고 머리에는 금 면류관을 쓰고 연꽃 위에 서있다. 연꽃 위에 서있는 금관의 예수상은 언제 봐도 낯설기만 하다. 금관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광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연꽃 위에 예수상을 세우다니......

인도에서 가장 큰 교단으로 알려진 남인도교단의 연꽃과 십자가로 만들어진 로고를 처음 대했을 때 받은 문화적 충격이 컸다. 아무리 연꽃이 상징하는 의미가 풍성하다해도 굳이 불교와 힌두교의 꽃으로 인식되고 있는 연꽃을 상징으로 채용할 필요가 있었을까? 나는 연꽃을 과감하게 교단의 로고의 심볼로 사용한 남인도의 교회의 아이디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굳이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 남인도 교단의 연꽃로고

작년 9월 27일 남인도교단은 교단 출발 50주년 기념행사를 거창하게 치루었다. 갑작스런 폭우에도 불구하고 5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목회자들과 각계 인사들로 마드라스대학교 강당은 만원을 이루었다. 나는 우리 교단의 대표로 참석해서 22개 다이어씨스, 400만 교우, 15,000 회중 공동체, 3000 명의 목사, 101명의 여성 목회자를 자랑하며 하나님 나라의 증인으로서 사명을 감당하는 교단의 앞날을 마음껏 축복하였다. 8년 6개월 동안 몸담고 섬겨온 때로는 거대한 공룡처럼 느껴지는 교단이 자기 갱신을 하면서 달릿 교회로서 정체성을 확보하며 달릿들의 구원과 해방, 생명과 평화를 위해서 전력투구하길 간절히 빈다.
처음 나에게는 교권 다툼의 최선봉에 서있는 남인도교단이 때로는 정치적 집단으로 보였지만 때로는 천국을 사모하는 바닥교인들의 눈물과 열망의 집합체로서 정말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보였다. 나는 교단의 양면성을 때로는 긍정적으로 때로는 부정적으로 응시하며 한국적 잣대로 교회를 재고 평가하고 부패와 위선, 후진과 미개를 탄식하는 심판자였다.

한국에서 장로교 목회자로 17년 동안 교회를 자유롭게 섬겨 왔던 나에게 10여개의 교단이 하나가 되어 조직된 남인도교단의 조직과 구조는 중세 교회처럼 답답하게 보였다. 우리 장로교회에는 없는 비숍직과 목회자들의 권위의식, 중앙집권적 인사 발령, 사제복과 예배 가운 착용의 의무화, 천주교와 다름없는 정교한 예배의식과 성찬식 등은 솔직히 나에게 지루하고 불편하였다. 인도교회의 제도와 의식은 나에게 기쁨과 호기심보다도 의심스러운 신학과 신앙의 차이 때문에 회의와 냉소의 대상이 되었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그들 곁에서 보고 듣고 경험하면서 나의 고정관념이 깨졌고 나는 더 이상 우리와 다른 인도 교우들의 예배와 제도와 의식 때문에 고민하지 않게 되었다. 다름의 미학을 깨달았으며 우리 한국교회의 예배와 의식과 제도도 하늘이 정해준 표준이 아니고 우리 역사 속에서 우리가 만들어낸 우리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인도는 인도식으로 예배를 드리고 우리는 우리식으로 예배를 드리면 된다. 하나님은 다양한 형태의 예배에 담긴 신령과 진정을 열납하신다. 역사와 문화, 문명과 기후, 인종과 상황이 다른 사람들의 예배가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모든 민족들은 자기들의 문화로 빚은 예배를 드리며 제도와 의식을 만들고 신학하며 신앙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고 다양함을 의미하며 서로 다른 존재의 차이일 뿐이다. 그러므로 모든 민족이 다양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열등과 우월, 야만과 문명의 문제가 아니고 민족이 처해있는 삶의 자리의 차이일 뿐이다. 그렇다. 다양한 예배는 하나님의 관심사이다.

나는 남인도교단의 22개 노회 중에 라열라씨마, 난댤, 동케랄라, 깐니야꾸마리, 띠루넬벨리, 마드라스, 도나깔, 크리슈나 고다바리 노회 등을 방문하여 다양한 인도교회를 체험하였다.
특별히 미끈하게 정리되고 조직된 도시교회보다 허름하고 낡고 어수선한 시골 달릿교회를 방문을 선호하였다. 인도교회에는 인도교회 만의 아름다움이 있다. 특별히 달릿교회에는 달릿교회의 특유한 아름다움이 있다. 

▲ 카다피 지역 인디라니가르 교회봉헌예배에 참여하려고 모인 교우들

인도교회 예배는 시작과 끝의 분별이 없다. 주일 예배는 보통 아침 7시 30분에 정식으로 시작한다. 시작 시간이 되었어도 앉아있는 사람은 서너 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목회자는 예배를 시작한다. 사람이 많고 적음에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성경 봉독할 즈음이 되면 언제 들어왔는지 사람들이 교회에 가득하고 설교 시간에는 자리가 비좁게 된다. 헌금이 끝나면 사람들이 조용히 그림자처럼 움직여서 빠져 나가고 성찬식 시간에는 세례 받은 사람들만 남아 있고 성찬이 끝나면 갈 사람은 갔고 기도할 사람들만 남아서 축도를 받고 예배위원들이 퇴장과 함께 송영을 한다. 송영 뒤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고 남아서 기도를 한다. 자연스럽다. 지각이라고 야단치는 사람도 없고 빨리 간다고 눈살 찌푸리는 사람도 없다.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것이 소리 없이 진행된다. 예배도 중단되지 않는다. 예배에의 강요도 없다.

인도 교우들에게 교회당은 하나님의 집이다. 인도인들이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고 교회당에 가는 것은 예배에 참여하는 것 이전에 하나님 전에 가서 인사를 드린다는 의미가 강하다고 본다. 간혹 예배 시작 전에 와서 기도하고 나가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또한 축도 전에 달려와서 성찬을 받는 사람들을 만난다. 자신의 상황 속에서 믿음을 고백하는 이들에게는 교회당에 가는 것 자체가 예배다. 하루 종일 시작도 끝도 없이 옷깃을 여미는 자발적인 교우들이 있는 한 인도교회는 건강하게 성장할 것이다.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르게 시작되는 예배가 아름답다. 강렬하지도 일사불란하지도 않지만 하나님 전을 향하는 마음이 서두르지 않고 한가와 여유를 즐기며 경건해질 수 있어서 좋다.

인도교회 축제는 주체와 객체 구별이 거의 없다. 많은 봉헌예배와 절기 축제에 참석을 하면서 나는 우리나라의 마당극을 보는 느낌을 받았다. 마당극에서는 구경꾼이 극에 뛰어들 수가 없으나 여기서는 누구나 원하면 판에 뛰어들 수 있어서 더욱 좋다. 봉헌예배는 거리 축제부터 시작된다. 맨 앞에는 마이크 시스템을 실은 트럭이 가고 다음에는 춤꾼들과 악사들이 뒤따른다. 비숍 또는 담임 목회자와 초청받은 게스트가 춤꾼들의 뒤를 바로 따르고 그 뒤를 교우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 이어간다. 동네 어린이들 청년들도 함께 오합지졸로 대열을 이룬다. 거리 축제는 악사들 몇 명과 춤꾼들이 판을 주도한다. 그러나 그들은 흥을 돋우는 일을 할 뿐 결코 전체를 장악하지 않는다. 구경을 하다가 신명이 지핀 사람이 들어가서 춤을 추고 노래를 한다. 잘 추는 춤도 아니고 북 장단에 맞추어서 개구리처럼 이리저리 폴딱폴딱 거리는 모양이 단순하지만 파워가 있고 스릴이 있다. 마치 태고 원시인의 춤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손을 쥐게 된다. 아무나 원하는 자는 판에 들어가서 묘기를 보인다. 대나무 돌리기, 항아리처럼 큰 둥근 돌 들어올리기, 북을 쳐서 동전 뒤집기, 봉술 등을 선보인다.

▲ 인디라나가르 교회봉헌예배를 드리기 전, 마을행진을 하기 위해 기도하는 비숍목사님과 지역목회자들

축제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다. 구경꾼과 춤꾼 사이에 경계가 없어 상호 호환이 가능하므로 누구나 원하는 대로 참여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거리축제는 교회만의 축제가 아니라 지역사회 축제가 되어서 지역 전체가 소란해지고 흥겨워진다. 거리 축제를 마치고 교회 안으로 들어가면 교우들의 흥분과 신명은 가라앉는다, 축제를 통해서 형성된 일체성과 동질감은 감사와 신앙 고백으로 이어지고 아름다운 찬양으로 메아리친다.

인도교회 축제는 소란하고 무질서하며 전혀 통제되지 않는다. 게다가 화약과 폭죽을 터뜨려인간의 야만성과 원시적 본능을 터치한다. 가끔 술을 마신 사람들이 춤판에 들어와서 난장판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무질서가 폭력으로 치닫는 것을 본적이 없다. 축제의 광란이 가져오는 스트레스 해소, 감정의 정화를 본다. 축제 후에 오는 고요와 평화가 있다.
앞으로 인도교회가 어떻게 변화될지 모르지만 축제가 예배 속에 자리 잡아서 인도적인 예배로 세계 교회에 기여하게 되길 반다.

▲ 동케랄라 노회, 페인트밸리 교회 봉헌예배 행진에 참여한 악대와 교우들

인도교회에는 찬송가가 없다. 찬송은 있지만 찬송가 책이 없다. 찬송가 가사를 적은 찬송가집은 있어도 악보를 적은 악보집은 없다. 우리 한국 찬송가는 대부분이 서양 음계로 작곡되어 찬송가에 악보와 함께 수록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인도 찬송가는 인도음계로 작곡되었다. 아직까지 우리는 인도음계로 작곡된 인도 찬송가 악보를 본적이 없다. 찬송은 부르는데 악보가 없이 찬송을 부르기 때문에 지역마다 음이 약간씩 다르다. 그러나 그것을 아무도 문제삼지 않는다. 자기들의 감정을 자기들의 것에 담아서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인도의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인 지겐발크가 1706년 타밀나두의 트랑끄바르로 들어와서 복음을 전한 이래 인도인들은 서양 선교사가 전해주는 찬송을 받기도 했지만 자신의 신앙고백과 감사를 인도음계에 담아 표현하였다. 나는 음치라서 달릿들의 찬송을 제대로 듣지 못하지만 때로는 너무 간절하고 애절한 것이 우리의 단조 노래를 듣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그레고리안 찬트를 듣는 것 같기도 하다. 악보도 없이 찬송이 구전되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고 더욱 신기한 것을 악보도 없는 찬송가를 손풍금으로 연주하는 악사가 있다는 것이다. 요즈음은 신디사이저로 반주를 하는 도시교회가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골 교회들은 아직도 봉고와 심벌즈를 손바닥만한 크기로 축소한 것 같은 놋쇠로 만들어진 짝짝이로 음을 맞춘다. 어느 교회에 가든지 북을 치는 고수가 있고 짝짝이를 치는 아이들이 있다.

인도 찬송가는 얼마나 긴지 모른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찬송가의 길이는 최하가 5절 정도다. 긴 찬송가를 어떻게들 기억하는지 신기하게 책도 없이 잘 부른다. 오늘날 서양 음계에 익숙하고 오히려 우리의 음계를 낯설어하는 우리교회를 생각할 때 200년 전부터 인도 크리스챤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자기들의 음악에 담아냈다는 사실이 놀랍고 그 전통을 받아서 자기의 감정대로 자기들의 찬양을 바치는 인도 교우들이 보배롭다.

인도교회는 원색 장식을 좋아한다. 처음 시골 교회에 갔을 때 무당집과 사찰의 단청이 떠올랐다. 빨강, 파랑, 노랑의 원색의 종이를 잘라서 운동회 때 만국기를 매달 듯이 천장에 빈틈없이 부쳐 놓은 것에 경악했었다.

인도 시골 교회 건물들 참으로 열악하다. 대부분 40,50년 된 건물로 직사각형이나 십자가형의 꼴을 하고 있고 재료가 값싸고 흔한 카다파 스톤이나 베당체를라 스톤이고 간혹 대나무를 잘라서 엮어 지은 건물도 보게 된다. 2000년대에 지어진 교회 중에는 시멘트 콘크리트 건물도 눈에 띤다.

교우들은 교회 청소와 수리를 성탄절, 부활절 또는 건축 봉헌일에 하면서 최선을 다해 아름답게 장식하고자 한다. 그러나 날품팔이로 생계를 유지하는 그들은 많은 돈을 들여서 수리나 장식을 할 수 없다. 수리는 외벽에 하얗게 석회 칠을 하는 것과 문과 창틀에 페인트칠하는 것이 다다. 장식은 교회마다 약간씩 다르지만 기본은 얇은 색종이를 예쁜 문양으로 오려서 천장에 늘어뜨리는 것이다.
수백 장의 종이를 가위로 일일이 오려서 부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전인 교회를 아름답게 단장하고자 하는 믿음과 열정 없이는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달릿교회의 종이 장식을 가난한 자들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이라고 부른다. 하나님 사랑으로 정성스럽게 부쳐진 종이들이 천장에서 빚어내는 화려하면서도 오묘한 아름다움이 주는 신비가 있다. 이것들이 선풍기 바람에 나부끼면 하나님의 손이 우리의 가슴을 어루만지는 것 같기도 하고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부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대나무로 지어진 교회에 가서 색종이 장식을 보면 더욱 눈물이 난다. 드리고 싶지만 드릴 것이 없는 가난한 자들의 하나님 사랑이 더욱 뜨겁게 감지되기 때문이다.
인도교회의 원색 장식은 교회를 아름답게 장식하고자하는 가난한 성도들의 예술이다. 원색 속에 담겨있는 그들의 원시적인 신앙과 하나님 사랑에의 갈망이 있어서 교회는 교회가 되고
축제의 자리가 되며 은혜와 위로가 있는 아버지의 집이 된다.

<필자 소개> 한신대학교, 동대학원 졸업 영주중앙교회, 군산한일교회, 베다니집 등에서 시무. 1997년 전북서노회 파송 인도 선교사로 출발. 1999년 기장총회 파송 남인도 교단 선교동역자로 데칸고원 라열라씨마 일대에서 달리트 선교에 동참해 오늘에 이름. 2007년 7월 13일 전 인도 신학 협회로부터 명예신학박사 학쉬를 수여. 비전아시아미션 창립 이사(2005년 11월 30일)이자, 비전아카데미(지도자훈련원) 설립 이사(2006년 6월) 인도선교 10주년 기념시집 <비아돌로로사>의 저자 <후원계좌> 국민은행 520702-01-176813 이옥희

이옥희 선교사  yiso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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