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필자는 다음 학기에 조직신학교수로서는 약간 파격적인 제목의 과목을 개설하려고 한다. 그 제목은 “이야기와 정치사상”이다. 이야기는 민중신학의 중요한 주제이고 방법인데, 이것을 정치사상과 연결하려고 생각하게 된 것은 민중신학자로서 당연한 귀결이라고 하겠다. 나는 약 16년 전에 “우리 구원을 이야기하자”라는 책을 썼는데, 이것은 ‘이야기신학 시론’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필자는 그동안 이야기를 버리고 개념과 담론으로 신학을 해 왔다가 이제 와서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고 있다. 지난 가을 송도에서 개최되었던 민중신학국제학술회에서 이 필자는 이야기의 중요성에 대해서 발표한 적이 있지만, 본격적인 논의는 뒤로 미룬 상태였다.
 
필자는 지금 예수와 최제우를 비교하는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데 놀라운 것은 예수와 최제우 모두 제국주의 하에서 어떻게 인간이 인간답게 사느냐, 즉 어떻게 정의를 누리며 살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고민했다는 것이고, 두 분 모두 그 언술이 이야기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의 경우, 복음서는 예수의 이야기로 되어 있고, 수운 최제우의 경우도 이야기의 구조로 되어 있는데, 특히 한글체로 쓰여진 용담유사가 더욱 그렇다. 
 

이야기가 정치적인 사태에 정말 유용한 도구라는 것을 일깨워준 것은 세월호 사건이었다. 세월호 사건을 놓고 정부측이나 보수측의 입장의 이야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당사자들의 이야기가 있는데 당사자들의 이야기가 언론의 농간 속에 묻혀 가는 것을 보면서 정의의 이야기, 즉 피해자들의 입장에 굳건히 선 이야기가 좀더 체계적으로 나오고 들려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확인되었다. 피해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사건에 너무 몰입되어서 자신들의 사건을 이야기로 제대로 엮어내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약간 거리를 둔 사람들이 이야기를 좀 더 조리 있게 해 낼 수 있다고 보았다. 이야기는 다양한 사건들과 일들을 엮어내는 언술이라고 하겠다. 그 엮어내는 틀을 플롯이라고 한다. 이야기가 개념과 다른 점은 이야기에는 이야기의 주체 즉 주인공이 있다는 것이다. 개념은 보편적인 것이어서 그것 자체로는 주체를 상정하지 않는다. 이야기와 담론의 차이는 무엇인가? 담론은 논리적(연역, 귀납, 추론적)이나 이야기는 논리와는 다른 플롯(plot)에 의해 엮어진다. 플롯은 사건들을 구슬처럼 꿰는 역할을 하는데, 이 플롯이 사건들을 꿰어서 이야기로 만든다.
 
플롯을 철학적으로 말하면 선험적이고 초월론적인 것으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 구상 혹은 줄거리라고 하는 플롯(plot)은 이야기 하는 사람 이전에 이미 정해진다. 그러므로 선험적이고 초월론적인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약자에게는 강자와는 다른 줄거리 즉 플롯이 있는데 그것은 그의 삶의 정황이 그것을 제공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들은 이야기하는 동물이다. 만약 이야기 동물인 우리 안에 회개와 같은 변화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바로 이러한 초월론적인 플롯의 변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개의 경우, 획기적인 사건에 참여하면서 이러한 변화를 입는다. 사도 바울이 다마스커스 길 위에서 예수를 만나 회심하는 큰 사건(big event, 여기서 작은 사건들과 구별하여 큰 사건이라고 함)과 같은 것을 말한다. 사도 바울은 이 사건을 경험하면서 이제까지의 유대적, 바리새적인 초월론적 관점을 버리고 새로운 관점과 눈을 갖는, 크리스천으로의 주체의 변화를 입었다. 다른 말로 하면 이야기의 플롯에 변혁이 일어난 것이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주체의 변화가 가져온 엄청난 질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그것을 선교여행 속에서 이방인들에게 전했다. 이와 비슷하게, 수운도 그러한 내적 변화를 입었는데, 이 경험을 동경대전과 용담유사에서 전해준다. 문제는 이러한 이야기의 내용과 질을 결정하는 것이 플롯이라는 것인데, 이 플롯들의 싸움이 오늘 우리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지만, 그 위원회에 적어도 두 개의 플롯이 부딪치고 있다. 정부 여당 측의 이야기 플롯과 희생자의 이야기 플롯이 있다. 이 두 개의 플롯 중에 어느 것이 더 진실한 (truthful) 것인가?

아래의 이야기는 극우 일베 쪽에서 나온 이야기인 것 같다. 모순투성이 이야기인데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줄여서 여기 싣는다. 같은 사건도 다른 플롯으로 전개하면 전연 다른 이야기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 대한민국은 세월호 침몰사건 이래,
정치적으로 이를 이용하려는 불순 세력과,
또한 너무도 염치없는 막가파식의 일부 유족들에 의해,
발목이 잡혀 아무것도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이대로 이렇게 계속 끌려가서는 안 된다.

당신들이 지금 단식 농성까지 하면서 집요하게 요구하는 것은,
‘진상을 밝히라’는 것이고, 또 당신들의 뜻에 맞는,
‘세월호 특별법’을 통과시키라는 것이다.
지난번 교황을 만났을 때도 같은 소리를 했다.
영어로 “We want truth!'라는 플래카드를 모두 들고 있었다.

‘진실’이라고 했는가?

‘침몰’원인은,

첫째로, 유병언과 그 일당의 탐욕에 의해:
(1) 배 상층부에 선실을 더 증축
(2) 적재 한도의 2-3배 넘는 초과 화물 적재 등
그래서 배의 ‘복원력’이 없어지게 된 것이
‘세월호 침몰’의 주원인이 아닌가?

다음으로 ‘해경’의 초동대응 실패 및 재난 대비체계의 미비 등,
정부 쪽의 잘못도 일부 들 수 있는데,
그런 것들은 이전(以前) 정부들로부터 내려온 잘못이지
왜 박근혜 정부만의 잘못인가?

세월호 유족측에 서있는
소수의 ’종북, 좌익, 반대한민국 세력‘ 측을 위해서인가?

‘5,18특별법’처럼, 비헌법적인, 비합리적인, 비이성적인,
‘세월호특별법’은 제정되어서는 안 된다.
시급한 민생 관련 법안부터 빨리 처리하라.
....

위의 이야기를 보면 중반부 이후부터 세월호 사건과는 무관하게 이데올로기적인 입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이야기의 진실성이 의심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떤 이야기가 진실 되지 않고 거짓된 이야기인가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야기의 중심이 플롯이라고 한다면 이야기의 진실성은 플롯에서 나타나야 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플롯 즉 줄거리는 다양한 재료들을 엮고 짜깁기 하여 이야기를 만들어주는데, 줄거리 즉 플롯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윤리적인 판단, 가치관, 세계관이 이미 내포되어 있어 이야기의 내용과 질을 결정한다.  

이야기는 사람들을 동원하고 일정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 데에 강력한 효과를 주는 도구이다. 그러므로 잘 엮어지고 다듬어진 이야기는 힘이 있고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그게 올바른 이야기인지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좋은 사람이 좋은 방향을 위해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히틀러와 같이 악한 이들이 이야기를 사용하면 세상이 혼탁해 지고 죽음이 많아진다. 우리 사회에는 이렇듯 거짓 이야기꾼들, 거짓 예언자들이 창궐할 수 있다.
 
모든 이야기꾼들은 과거의 사건들을 현재의 상황의 필요에 의해서 새롭게 재구성한다. 그런 면에서 과거는 항상 재구성되어 새롭게 탄생한다. 예를 들어, 지금의 권력자들은 과거를 새롭게 재구성하거나 재생하여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보장한다. 이것은 권력자들만이 아니라 약자들도 이에 저항하기 위해서 과거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거의 역사적 사실들이나 사건들 그리고 현재의 다양한 현상들과 사건들을 어떻게 재구성하여 하나의 이야기가 되게 하느냐가 문제가 되는데 나는 이렇게 다양한 과거적 현재적 (더 나아가서 미래 예측적) 자료들 엮어 나가게 하는 것을 플롯이라고 본다. 알랑 바디우는 이것을 경험이전의 아프리오리하고 초월론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하여 그의 책 “세상들의 논리들” (Logics of worlds)은 초월론적인 것의 분석으로 가득 차 있다.
 
이야기화자는 한 문화와 역사로부터 전달되어 오는 사건들과 이야기들을 재구성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 낸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이 한 사회를 규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 어떤 이야기들이 한 사회를 지배하고 있느냐에 따라 한 사회의 문화적 질, 정의의 정도가 결정된다. 

권진관(한국민중신학회, 성공회대 조직신학)  jkkwon@s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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