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집에는 초대하지도 않았는데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다. 이들은 고흥집이 마치 자기 집처럼 드나들면서 나를 괴롭힌다. 그 대표주자들이 제비, 아랫집의 개, 이름 모른 새(사진참조), 그리고 쥐새끼들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우리 집의 모든 것이 자기 것처럼 여기며, 주인행세를 한다.
 
3월말에서 4월초에 찾아오는 제비는 우리 집 안방입구의 대문 옆에 둥지를 틀고 새끼 5-6 마리를 낳고 키운다. 첫 해에는 둥지 속에 새끼가 있는 줄도 몰랐다. 어느 날 아침 마당청소를 하다가 가느다란 새똥들이 있기에 이상하게 여겨 그 출처를 찾다보니 제비새끼들의 소행인 것을 알게 되었다. 신기한 것은 그 어린 새끼들이 똥을 쌀 때는 둥지에 내밀고 있던 머리를 뒤로하여 180도 회전한 후 궁둥이를 둥지 밖으로 내밀고 찔끔 싸고선 원위치 한다. 생후 얼마 되지도 않은 저 어린 것이 어떻게 똥을 가릴 줄 아는지 신기하다. 그리고 좁은 둥지에서 여섯 마리가 빽빽이 앉아 있는데, 움직이면 떠밀려 아래로 떨어질 것 같은데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 또한 신기하다. 새끼들이 커갈수록 배설물의 양도 많아진다. 아침마다 이것을 치우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유독 ‘더럽다’ 여기는 것에 대해 민감한 나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고역이다.

▲ 제비. 봄에 우리집에 찾아 왔다 가을에 떠나가는 손님이다. 둥지에 어린 새끼들이 보인다.

제비들이 나의 마음을 서글프게 하는 것은 가을에 일어난다. 이것들은 나에게 인사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둥지에서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새끼들이 어느 정도 커서, 둥지에서 여섯 마리가 함께 있지 못할 정도로 커지면(약 8월경) 둥지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날개를 펴서 파닥거리기 시작한다. 이때가 되면 어미가 둥지에서 새끼들을 하나 둘씩 유인하여 나는 연습을 시킨다. 이 기간은 매우 짧다. 새끼들이 오늘도 나는 연습을 하고 있으려니 생각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둥지는 비고 제비들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이미 집을 떠난 것이다. 내가 새끼 때부터 청소도 해 주고, 월세도 안 받고 편하게 지내도록 했는데, 이것들은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매정하게 내 곁을 떠난 것이다. 서운하고 속이 편하지 않다.
 
두 번째 불청객은 마치 딱따구리처럼 생긴 놈인데, 주둥이는 뾰쪽하고 회색 옷을 입고 있으며 아주 탁한 음성으로 “찌익, 찌익”하고 소리를 낸다. 어찌나 경계심이 많은지 잠시도 한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고 민첩하게 자리이동을 한다. 주로 두 마리에서 네 마리가 수시로 우리 집을 들락거리며 방문한다. 이것들이 나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은 내가 눈여겨보면서 따먹으려고 벼루고 있는 토마토나 감과 같은 과일을 언제나 한발 앞서 쪼아 먹어버리는 것이다. 신기할 정도로 이것들은 어떤 것이 맛있고 언제 먹어야 할지를 너무나 정확하게 알고 있다. 이것들이 양심이 없는 것은 먹을 때 하나를 다 먹든가 아니면 먹을 만큼만 먹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를 한두 번 쪼아 먹고는 달아나 버리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땅에 떨어져 못 먹게 된 것들이 수북이 놓이고, 거기에 파리가 일고 썩은 냄새까지 나니 이것들을 쓰레기 처리하는 것도 나의 몫이다. 내가 씨 뿌리고 물주고 속구와 내고 잘 키워놓았더니, 이것들의 밥이 되고 있으니 신세타령이 안 나올 수가 없다. 내 아내가 하는 말, “새에게 네 것, 내 것이 어디 있소. 온 땅이 다 창조주의 것이고, 그 열매도 다 창조주의 것인데, 왜 당신이 ‘자기 것이라’ 주장하는 것이오?” 한다. ‘나의 생각은 새만도 못 한가?’ 반문해 본다.

▲ 딱다구리 같이 생긴 새. 옅은 회색 깃털의 새로 수시로 우리집 주변을 드나들면서 나무열매와 과일, 토마토를 나보다 앞서 쪼아먹는다.

세 번째 불청객은 우리 집 아랫집에 사는 ‘순돌이’다. 이놈은 우리 집 식객이다. 아랫집에는 암놈과 수놈 두 마리의 진돗개를 키우고 있다. 이름이 없이 키우고 있기에 우리 집사람이 암놈은 ‘돌순이’, 수놈은 ‘순돌이’라고 부르고 있다. 순돌이는 어찌나 힘이 센지 목줄로 묶어 놓으면 며칠도 안 가 끊어 버리니 할 수 없이 방생하며 키우고 있다. 순돌이는 점심때가 되면 우리 집 문 앞에 와서 대기하고 있다. 먹을 것을 달라는 신호이다. 이놈은 우리가 식사하는 동안 자는척하며 능청부리며 기다린다. 우리가 식사를 다 하고 설거지도 하고 커피를 마시며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이 꽤 갔는데, 이때에도 순돌이는 기다리고 있다. 그 인내심과 애절한 구애에 우리 마음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무엇인가 먹을 것을 주지 않을 수 없다. 고약스러운 것은 순돌이가 먹을 것을 다 먹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기 집으로 사라져 버린다. 참으로 야속한 순간이다. 그러나 우리가 없을 때 외부인이 오면 주인행세를 하며 짖어대는 것을 보면 기특하기도 하다.

▲ 우리집 아랫집에 사는 '순돌이'. 우리집 식객으로서 점심때가 되니 부엌 문앞에 누워 대기하고 있군요.

마지막 불청객은 쥐들이다. 이것들은 우리가 고흥집에 오기 전부터 상주하고 있었던 터줏대감이다. 우리 집 천정은 베니아판에 도배를 한 것인데, 천정은 쥐들의 운동장이다. 주로 이들은 밤에 활동을 하는데, 천정 끝에서 끝으로 질주하며 베니아판 건반을 두들겨 댄다. 거기에 뭔가 떼굴떼굴 굴려가면서 질주할 때는 쥐들이 드리블 하면서 축구경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피곤하여 곤하게 잠들었을 때는 별문제가 없지만 어쩌다 한 번씩 깰 때는 잠을 설치게 한다. 요즘 가을철을 맞아 고구마, 감자, 호박, 꽃씨 등을 수확하여 부엌 헛간에 두었더니, 쥐들을 위한 푸짐한 잔칫상이 되고 말았다. 지금까지 천장에만 머물고 있던 이것들이 이제는 지상으로 내려와 나의 먹거리를 넘보고 있는 것이다. 아랫집 아주머니는 쥐약을 사다 치라고 하는데, 어렸을 때 쥐약 먹은 쥐를 먹고 잔혹하게 죽어가던 개들의 모습이 생각나서 쥐약치고 싶은 맘은 없다. 쥐덫을 놓아 볼까? 쥐를 죽이지 않고 쫓아낼 방법은 없을까 궁리 중이다. 며칠 전에는 부엌의 환기통을 통해 쥐가 부엌 안으로 침투해 들어 왔다. 나는 처음으로 고흥집의 불청객, 쥐를 본 셈이다. 약 10cm 정도의 조그마한 체구로 작은 구멍만 있으면 얼마든지 드나들 수 있는 종자였다. 우선 쥐구멍을 때울 목적으로 백시멘트를 사왔다. 내일은 구멍 때우는 작업부터 할 계획이다. 내가 쥐 때문에 속상해 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집사람은 또 한 말씀 하신다. “농촌에선 쥐와 함께 사는 것”이라고. ‘쥐와 함께 사는 것’이라면 한 식구인데, 나로서는 너무 끔찍하다. 고흥집의 불청객, 이들이 나와 한 식구가 되는 것은 고사하고 과연 내 이웃이 될 수 있을까? 이들은 심심치 않게 나의 신경을 자극하고 일손을 멈추게 하지 않는다.

2014년 11월 15일
고흥반도 해변의 시골집에서

박명철(전 연세대교수)  mcpark@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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