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 시골에 왔는데 서울에 사는 내 아내는 어떡하지?

귀촌하면서 가장 큰 고민거리는 무엇보다 서울에 사는 내 아내를 설득하는 일이다. 일단 내가 시골로 내려와 사는 데는 집사람의 양해를 받아냈지만, 시골에서 내 아내와 함께 산다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집사람이 시골을 꺼리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이것들은 여성들이 갖는 공통점이 될 수 있다. 우선, 자연조건이 너무 거칠어 견뎌내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여름에는 너무 덥고, 겨울에는 너무 춥고(웃풍 때문), 장마철에는 습하고,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는 거센 해풍과 비바람이 몰아친다. 더위를 위해 에어컨 설치를 하고 추위를 위해 보일러 시설을 갖추고 습기제거를 위해 제습기를 가동해 보지만 자연의 위력 앞에는 역부족이다. 거기다 모기, 지네, 뱀 등의 위협과 잡초 및 엉겅퀴 등의 괴롭힘은 상존한다. 더구나 건강이 자연환경에 맞지 않거나 혹은 피부, 미용에 대한 관심이 큰 경우는 시골이란 있을 곳이 못된다.


▲ 지난 여름 우리집 가까이에 있는 발포해수욕장의 해변을 거닐고 있는 우리 집사람의 모습.

둘째는 시골의 생활환경이 도시에 비해 불편하다는 점이다. 서울의 집과는 거리가 멀고, 군내(郡內)의 대중교통이 빈번하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부가 각각 자동차를 운영할 형편도 아니다. 취미나 문화생활을 하려고 해도 시설이나 기회제공이 마땅하지도 않다. 거기다 생각과 정을 나눌 만큼 가까운 이웃도 없다. 시골생활은 발이 묶이고 생각이 묶이고 벗이 없는 고도(孤島)와도 같은 곳이다. 내가 자동차를 독점하고 있는 한, 우리 집사람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내 아내가 하는 말, “시골가면 남편 얼굴만 보며 살라는 것인가?”고 항변한다. 이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가 좋아 시골을 선택한 것이지, 우리 집사람이 좋아서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 고려사항으로 우리 집사람은 묻는다. “시골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요?” 시골이란 대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편안함과 즐거움(entertainment), 기회제공을 포기할 만큼 매력적인 것은 없다. 있다면 도시가 주지 못하는 자연 그 자체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집사람이 농촌에서 태어나 성장하였기 때문에 농촌에 대하여 호감을 가지고 있다. 거기다 자연조건에 적응하는 것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지 아쉬워하는 것은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과 같이 시골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하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활동’이란 보람을 느끼는 일을 의미한다. 그가 갖고 있는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기회는 시골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에 대해 나는 대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고작 내가 하는 말이 “당신도 이제 쉴 때가 되지 않았소?”이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우리 집사람은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반대해 본 적이 없다.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이번 시골에 내려와 사는 것도 그가 허락한 것이다. 그런데 함께 하는 것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이것은 강요할 수가 없다. 그는 그의 삶을 살아가야하며, 나는 그의 삶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부부의 공동생활이 끝이 나는 것일까? 흔히 보듯 주말부부, 월말부부, 휴가부부, 연간부부와 같이 이따금씩 만나는 부부로 전락하는 것일까? 나는 지금 내가 선택한 시골의 삶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면 내가 너무 이기적인 것일까? 여러 가지 질문과 착잡함이 교차하는 순간을 맞고 있다.

이 와중 가운데 내 아내는 몇 가지 제안을 하고 있다. 시골이 자기에게 매력적일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이다. 우선, 꽃을 좋아하니 꽃밭이 있어야 한다. 둘째는 채소를 가꿀 수 있는 텃밭이 있어야 한다. 셋째는 익살스러운 주장인데, ‘이제부터는 당신이 나를 위해 부엌일을 하시오’이다. 나는 OK 했다. 사진에서 보듯 나는 꽃밭을 집 앞과 주차장 앞에 그리고 도로의 주위 공간을 이용하여 만들어 놓았다. 꽃을 심어놓으니 잘 자라고 있다. 집 옆의 공간에 5평 정도의 텃밭을 마련하여 가꾸고 있다. 거기에 집사람이 좋아하는 토마토와 가지를 심어 놓았다. 횟감에 사용할 상추와 깻잎, 쑥갓도 심어놓았는데 잘 자란다. 이렇게 되면 첫째, 둘째 요구는 어느 정도 마련한 셈이다. 그런데 세 번째 요구는 어떻게 될지 진행 중이다. 아직 나는 요리하는 것을 배우는 단계에 있기 때문에 자신이 없다. 찌개나 매운탕 종류는 그런대로 익숙한데, 나물종류를 요리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불가피하게 내 아내의 조언과 도움을 받으며 배우고 있다. 정말 고마운 것은 우리 집사람이 나의 서툰 솜씨를 보며 짜증내지도 않고 인내를 가지고 지켜보고 내가 해 논 것을 투덜대지 않고 잘 먹는다. 먹고 나서 논평까지 해주니 좋은 스승이다.


▲ 우리집 뒷길에 위치한 꽃밭에서 핀 국화. 요즘 한창 예쁘게 피었다.


▲ 우리집 꽃밭에 핀 꽃. 5각형의 하얀 꽃으로 밤에 피었다 낮에 지는 것으로 매우 예쁘다. 어떤 분은 '매꽃'이라 하는데, 꽃 이름을 아는 사람은 알려주기 바람.

나는 지난 8월 휴가를 이용하여 1개월 동안 집 사람과 고흥 집에 함께 살면서 실험을 해 보았다. (우리 집사람과 의논하여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으로 표현함) 역할분담이 제대로 되는 것 같다. 꽃밭과 텃밭은 내 아내가 가꾸고, 나는 마당청소, 방청소, 낚아온 생선을 포뜨고 지리국 끓이면 하루가 술술 지나간다. 밥이야 전기밥솥에 하루 분을 해두면 된다.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원도낚시하려고 출조하는 날이면 일손이 매우 바쁜데, 이것을 아는지 우리 집사람이 저녁준비를 해준다. 돌아올 때도 시장한 나의 사정을 아는지 미리 밥을 얹어 놓고 기다리고 있다. 너무 고맙다. 함께 지내면서 신경을 건드리는 것이 있다면, 서로 잠자리 들어가는 시간과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른 점이다. 나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에 많이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서울서 온 우리 집사람은 밤늦게까지 TV 보다 잠자리에 들고 늦게 일어난다. 연속극을 거의 보지 않는 나로서는 저녁 조용한 시간에 TV 소리가 소음처럼 들린다. 이것은 서로 짜증냄이 없이 풀어야할 과제다. 한 달 동안의 공동생활에서 우리 집사람은 만족이다. 그의 말, “요번 휴가는 고급 텐트생활을 한 셈이네요.(고흥집이 있기 전까지는 텐트생활하며 휴가를 보냈기 때문) 재미있었고, 한 달이 금방 지나갔네요.” 듣기에 반갑고 나의 실험은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한 달 동안의 휴가가 아니라 지속적인 생활은 가능할지 걱정으로 남는다.


▲ 텃밭에서 우리 집사람이 내가 심은 숫갓과 상추를 따고 있다. 가지나무가 예쁘게 보인다.

시골에서 혼자 사는 것은 싶지 않다. 하루의 일을 마치고 나면 피곤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만큼 시골집에는 시시콜콜한 일들이 항시 있고 그것을 하지 않으면 사람 사는 집이나 환경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심신이 고달플 때면, “여보, 내 곁에 있어주~”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 마음을 내 아내는 아는지, 모르는지?

2014년 11월 5일
고흥반도 해변의 시골집에서

박명철(전 연세대교수) mcpark@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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