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안은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에큐메니안은 오늘 무엇을 해야 할까? 이 물음에 대답하려면 에큐메니안이란 이름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에큐메니안’은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나온 말이고, 에큐메니칼 운동은 교회일치운동을 뜻한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분열된 교회들이 전도와 봉사를 연합해서 하자는 운동으로 20세기에 활발하게 일어난 운동이다.

‘에큐메니안’의 뜻

교회일치운동에 에큐메니칼이란 말을 쓴 것은 ‘모든 족속’에게 ‘땅 끝까지’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의 마지막 명령을 염두에 둔 것이다. ‘모든 족속’, ‘땅 끝까지’를 나타내는 그리스어가 오이쿠메네이고 오이쿠메네는 ‘사람이 거주하는 세상’을 뜻한다. 오이쿠메네에서 에큐메니칼, 에큐메니안이란 말이 나온 것이다.

사람이 사는 온 세상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의 마지막 명령은 교회의 일치와 연합보다는 훨씬 깊고 큰 뜻을 지니고 있다. 하나님 나라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한 가족이 되는 세상이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유롭고 주체적인 존재로 해방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해방된 인간들이 서로 하나가 되는 나라를 이루려 하신다. 모든 족속에게 땅 끝까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의 마지막 명령은 온 인류를 자유로운 주체로 해방하고 온 인류가 하나로 되는 공동체를 만들려는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라는 것이다. 예수의 마지막 명령과 결부된 오이쿠메네는 교회 일치가 아니라 온 인류를 해방하고 온 인류가 하나로 되는 세계공동체를 이루려는 하나님의 뜻을 나타낸다.

오늘 교회는 분열되었을 뿐 아니라 신뢰를 잃고 있다. 왜 분열되었는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세상 끝까지 전하는 교회의 본래적 사명을 잃었기 때문이다. 교회의 본래적 사명에 충실했을 때 교회는 본래 하나이고 보편적이며 거룩한 사도의 교회였다. 인간을 해방하고 온 인류를 하나 되게 하는 복음과 사명을 잃었을 때 교회는 타락하고 분열되었다.

실패한 종교개혁

중세의 타락한 교회를 비판하고 나온 종교개혁은 기독교가 유럽에 전파된 이래 정신사와 정치사에서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은 절반의 개혁이며 실패한 개혁이다. 종교개혁으로 교회는 분열되었고 종교개혁으로 시작된 개신교는 분열의 종교였다. 개신교의 교단과 교파는 얼마나 많은가? 루터와 칼빈의 신학서들에서 욕설이 난무하고 배타적인 관점이 일관되게 나타나는 것은 그들의 신학적 한계와 결함을 나타낸다. 종교개혁은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혜’를 내세웠으나 새로운 정치세력과 결탁하고 자본주의사회와 유착됨으로써 신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절충적이고 타협적이었다. 성직제도를 거부하고 만인사제설을 주장했으나 새로운 위계질서를 가져왔다. 종교개혁자들이 ‘오직 믿음, 오직 은혜’의 성경진리를 드러냄으로써 정치사회적으로 큰 변화와 파장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에서 나온 개신교는 성경보다 교리와 신학을 더 중시했고 신학과 교리가 다른 사람을 이단으로 규정하여 서슴없이 죽였다. 종교개혁이 일어나서 얼마나 오랫동안 전쟁과 폭력이 난무했던가! 믿음만, 은혜만의 구호와 현실은 얼마나 다른가! 종교개혁은 중세서 근세로 넘어가는 16세기의 정치변화와 맞물려 있으며 그 시대의 한계와 제약에 묶여 있다.

오늘 우리는 민주화, 산업화, 세계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21세기에 살고 있다. 동서고금의 정신문화가 합류하고 온 인류가 하나로 만나는 세계에 살고 있다. 오늘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의 신학과 관심에 머물 수 없다. 한국교회의 분열과 위기는 종교개혁 신학으로 치유될 수 없다. 오늘 한국교회의 분열과 위기를 치유하고 극복하는 길은 21세기의 시대적 상황에 걸맞게 교회의 본래적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21세기의 시대적 상황에서 새롭게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해야 하며 성경과 예수의 가르침을 다시 읽고 해석해야 한다.

예수의 마지막 명령: 주체의 깊이와 전체의 일치

예수가 마지막으로 당부한 교회의 사명은 온 인류를 하나님의 자녀로 해방하고 하나의 인류 공동체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가 하나님 나라 운동을 통해서 이루려고 했던 예수 자신의 사명이기도 하다. 예수의 사명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이 지으신 생명세계와 인간이 저마다 저답게 자유로우면서 전체가 하나로 되는 것이다. 저마다 자유로우면서 전체가 하나로 되는 것이 생명과 정신의 본성과 목적이다. 주체의 깊이와 자유(영혼)에서 전체(나라, 세계)의 하나 됨에 이르는 것이 인간과 사회의 본성과 목적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생명과 정신, 인간과 사회의 본성과 목적이 하나님 안에서 실현되고 완성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 나라다. 예수는 이 일을 위해 살고 죽었으며 다시 살아났다.

이제까지는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온 세상을 떠돌며 땅 끝까지 예수의 복음을 전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땅 끝까지 기독교가 복음을 전했다. 기독교의 복음이 미치지 않은 곳은 아프리카 오지의 토착민이나 남미의 열대 우림에 사는 원주민들뿐일 것이다. 책을 통해서 언론방송매체를 통해서 인터넷을 통해서 수많은 전도자들을 통해서 세계에 기독교의 복음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따라서 지리적인 땅 끝은 의미가 없게 되었다.

자치와 협동의 길

21세기 에큐메니안의 사명은 무엇인가? 에큐메니안은 지리적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넘어서 하나님 나라 복음의 실현을 생각해야 한다. 온 인류의 주체를 해방하고 전체가 하나로 되는 세계를 여는 것이 오이쿠메네, 에큐메니안의 참된 의미이고 사명이다. 주체의 깊이와 자유에서 전체의 하나 됨에 이르는 일은 오늘의 사회에서 자치와 협동으로 나타난다. 오늘 인류는 민주화 과학·산업화, 세계화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민주화, 과학·산업화, 세계화의 실질적 실현과 완성은 자치와 협동으로 나타난다. 민주주의는 민이 주권을 가지고 통치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민의 다스림은 자치와 협동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과학·산업화를 민주적으로 실현하고 완성하려면 생산과 유통과 소비에서 자치와 협동을 강화해 가야 한다. 세계화를 민주적으로 실현해 가는 길도 자치와 협동의 삶을 확장해가는 것뿐이다. 자치와 협동을 통해서만 인류는 세계의 평화와 통일로 나아갈 수 있다.

이제 정치사회경제종교문화 모든 영역에서 자치와 협동의 길로 나아가야 할 때가 왔다. 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 서로 다름 속에서 상생과 공존의 협동을 이루어가는 것이 오늘 인류가 살 수 있는 길이다. 그것이 바로 주체와 전체가 일치하는 길이며 자치와 협동의 길이다. 주체와 전체가 일치하는 자치와 협동의 연결망을 만들어가야 한다. 주체와 전체의 일치는 생명과 정신의 본성과 목적이며 창조자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 나라는 인류와 생명세계의 주체와 전체를 일치시키는 나라다. 자치와 협동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과 나라가 드러나야 한다. 교회는 교인들을 중심으로 교회 주변에서 자치와 협동의 공동체와 생활양식이 심화되고 발전되도록 이끌어야 한다. 교회의 신앙정신과 영성이, 교회의 공동체적 훈련과 실천이 사회에서 자치와 협동의 삶으로 꽃피우고 열매 맺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한국교회는 분열과 불신의 늪에서 벗어나 하나이고 보편적이며 거룩한 교회가 될 수 있고 예수의 마지막 명령을 수행하는 사도적 교회가 될 수 있다.

동서정신문화를 통합하는 영성 신학과 철학

오늘 한국교회는 동서고금의 정신과 영성이 합류하는 통합적 신학과 철학, 생명과 영성의 철학과 사상을 제시할 책임과 사명을 지니고 있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동서문명의 만남과 민(民)의 자각운동으로 전개되었다. 한국교회는 한국근현대사의 중심에서 동서정신문화의 만남을 실현하고 민의 자각운동을 이끌었다. 오늘 세계는 동서고금의 정신문화와 전통이 합류하는 정신과 영성의 바다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동성의 정신문화가 합류하는 두물머리다. 한국인의 삶과 정신 속에서 특히 한국기독교인들의 삶과 정신 속에서 동서정신문화가 합류하고 있다. 여기서 세계인류를 평화와 통일로 이끄는 새로운 영성을 지닌 신학과 철학이 나와야 한다. 새로운 영성과 철학이 나와야 자치와 협동의 공동체를 만들고 넓혀갈 수 있으며 평화와 통일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한국교회서 자치와 협동, 평화와 통일을 위한 영성과 철학을 닦아내야 한다.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서 새로운 영성과 삶의 지평을 열어가야 한다. 교리와 교회제도에 갇힌 기독교는 이미 낡은 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일찍이 디트리히 본회퍼가 감옥에서 갈파한 대로 종교의 껍데기를 벗겨내고 종교의 알맹이를 살려내는 일이 교회의 절실한 과제가 되었다. 유럽의 교회를 보라! 교회의 교리와 건물과 제도는 낡은 유물이 되었다. 한국교회도 그렇게 될 날이 다가오고 있다. 기독교 신앙과 정신의 알맹이를 살려내서 세계인류를 이끌어갈 새로운 영성신학과 철학을 만들어내고 자치와 협동의 공동체와 생활양식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이 21세기 한국교회의 사명과 과제이고 에큐메니안이 오늘 해야 할 일이다. 에큐메니안이 동서고금의 정신문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영성신학과 철학을 모색하고 다듬어내는 마당이 되고, 자치와 협동의 연결망이 확대되고 심화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박재순(씨알사상연구소 소장)  p994@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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