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후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서, 나의 제1계명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이다. 남이 뭐라 하든, 자신의 신분이 어떠하든, 여기에 연연할 것이 없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 우선 재미있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러기에 나이 먹는 것을 의식함이 없이 10년이 하루 같이 훌쩍 지나간다. 당연히 젊어질 수밖에 없다. 이들에겐 10년이 1년이 되기 때문이다.

▲ 천등산 가을풍경. 천등산(550m)에서 본 해변인데, 아래에 고흥반도 남단의 섬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우리집에서 약 8 km 떨아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시간 나는대로 찾아가는 곳이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 여기서 얘기하는 좋아하는 것은 주로 취미가 될 수 있다. 레저 시간을 이용한 취미활동이다. 퇴임 이후에는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주요하다. 어떤 취미를 선택할 것인가? 여기에도 여러 가지 고려사항이 있다. 우선 자기 좋아하는 것을 대전제로 깔고, 내가 고려한 것이 몇 가지가 있다.

첫째, 팀(team)을 구성하여야 가능한 것 보다 혼자 가능한 것을 고려했다. 게임이나 구기운동 등은 팀이 구성되거나 상대짝을 필요로 한다. 스스로 이런 조건을 만들거나 형성된 여건을 쫓아다니는 것은 여러모로 신경 쓰이고 행동에 자유스럽지 못하다. 혼자만으로 가능한 것은 언제든 본인이 원하면 즐길 수 있다. 이것이 부인(파트너)과 함께 할 수 있다면 더욱 좋다. 나이 먹으면 혼자되는 것을 의식하고 미리 대비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 갈대밭. 우리동네에 있는 갈대밭이다. 자전거롤 타고 산책하거나 걸아서 마실가는 곳이다. 갈대밭 너머로 방조제가 길게 늘어서 있는데, 방조제롤 쌓고난 이후 하류에 형성된 갈대숲으로 남들은 잘 찾지 않치만 나는 한적한 이곳을 즐긴다.

둘째,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취미생활을 하루 이틀 하고 그만두는 것이 아니다. 하루 가운데 많은 시간을 이에 투자하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부담을 주는 것이 되고 있다면, 이 또한 스트레스가 되고 건강을 해치고 지속적일 수가 없다. 건강을 위해서 실내 보다 실외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이 좋고, 자연과 벗할 수 있는 것이 우선 고려된다. 장시간 가만히 앉아하는 것 보다 육체적 활동을 하는 것이 좋다. 일상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는 즐기는 것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이 좋다. 취미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일상생활과의 단절을 가져오는 그런 것이다.

셋째, 경제적으로 부담이 가지 않으면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다. 취미생활에는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간다. 초보자가 아닌 한, 취미생활에 빠져들수록 더욱 편리하고 전문적인 것이 요구된다. 이것들은 다 돈과 연관된다. 취미생활 입문자가 한꺼번에 모든 장비를 마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만큼 비용이 만만치 않다. 퇴임 전부터 하나씩 하나씩 필요한 것을 구입하면서 취미를 익혀나가야 한다. 그래야 퇴임하면서 취미생활을 동시에 시작할 수 있다.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만만치 않다. 대도시, 특히 서울지역에서 야외의 취미생활은 쉽지 않다. 한강의 고수부지나 공원, 주변의 산행은 그런대로 용이하지만, 서울을 벗어나 시외로 이동한다면 교통난에 시달려야 한다. 갔다 왔다 교통지옥을 겪고 나면 만사가 귀찮아 지고 만다. 이런 면에서 캠핑이나 귀촌(歸村)을 고려하게 된다. 나의 경우는 귀촌을 결정했다.

▲ 갯바위 낚시. 병풍처럼 전개되는 기암절벽의 갯바위 낚시터. 이곳은 낚시인의 사랑을 받는 손죽도이다.

과연 이상의 3가지를 충족할 수 있는 레저 활동은 어떤 것이 있을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등산, 자전거, 낚시 등이다. 이것들은 혼자 즐길 수 있으며 맘만 먹으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것들이다. 필요한 장비와 소요되는 비용은 자기 형편에 따라 얼마든지 조정 가능하다. 그 외의 취미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것은 각자가 자신의 적성과 취향에 따라 맞는 것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내가 낚시를 하면서 충격적인 제안을 받은 것이 있다. 내 생일이 가까워 오는 어느 날, 내 아들은 아빠의 생일선물로 좋은 것이 있다면서 제안했다.

“아빠, 낚시하려고 밤잠도 재대로 자지 못하고 새벽에 떠났다가 밤늦게 돌아오는데, 왜 그 고생을 해! 돈은 돈대로 써가면서 ...”
 “돈 안 쓰고 고생 안 하고 낚시하는 것을 생일선물로 주고 싶은데, 어때?”
 “좋은 아이디어다. 그게 먼데?” 하고 나는 반신반의 하면서 물었다.
 “낚시 컴퓨터 게임, 어때? 손가락으로 클릭 만 하면 고기가 줄줄이 올라와!”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아들의 생일선물을 포기했다. 내 아들의 제안은 한마디로 낚시에 대한 모욕이다. 이것은 레저 활동이 아니라 게임이다. 내가 아무리 낚시를 좋아해도 게임 중독자는 될 맘이 없다. 게임은 내가 앞서 제안한 둘째 항목,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에 위배된다. 

▲ 낚인 감성돔. 우리집 앞 방파제에서 낚은 감성돔 새끼(일명 "삐깔이'이라 함). 필자가 좋아서 웃고 있다.

취미생활은 하면 할수록 깊이 빠져들기 쉽다. 시간과 돈과 정성을 다 쏟아 붓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이쯤 되면 부인과 자식이 보이지 않고, 가정도 안중에 없다. 자나 깨나 바다 위에 떠오른 찌만이 보일 뿐이다. 대물(大物) 꿈속에서 산다. 낚시에 미친 “낚시광”이다. 상황이 이쯤 되면, 다른 어떤 습관성 질환자(중독자)와 다를 바 없다. 질환의 종류가 다를 뿐 그 습성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퇴직하고 인생을 즐기려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것은 기본적이고 일차적인 것이다. 퇴임하고 젊게 살려면 취미생활이 “광”의 지경에 까지 가서는 안 된다. 광의 경지는 자기가 하고 있는 것, 취미 그 자체가 전부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자기 인생이란 없다. 취미생활을 즐기더라도 ‘프로가 되기보다는 아마추어로 머물라’고 권하고 싶다.

취미생활에도 한 가지 만으로 제한할 필요는 없다. 나의 경우 주로 낚시를 하지만, 물때가 안 맞거나 날씨가 궂으면 텃밭도 가꾸고 자전거도 타고 산행도 겸하고 있다. 시간은 빨리도 흘러간다.

2014년 9월 20일
고흥반도 해변의 시골집에서

박명철(전 연세대 교수)  mcpark@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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