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알이란 말 속에는 생물학적 의미뿐 아니라 역사·사회적 의미와 영성적 의미가 풍부하게 담겨 있다. 말 자체는 낯설지 않은데 신학-철학적 의미와 연관 지으면 씨알이란 말이 사뭇 낯설다. 기독교인들에게 밀알이란 말은 아주 친숙하다. 신앙, 성경, 영성의 의미가 밀알이란 말 속에 녹아 있다. 그런데 성경에서 밀알로 번역한 것은 오역은 아니지만 잘못된 것 같다.

희랍어 성경 원문의 글자는 인데 일반적인 곡식의 낟알을 뜻한다. 중동지역이나 유럽과 미국에서는 밀과 빵이 주식이므로 밀알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과 아시아에서는 쌀, 보리와 밥이 주식이다. 한국과 아시아의 농경문화와 음식문화를 감안하면 당연히 씨알로 번역해야 했다. 한국어 성경에서 밀알로 번역한 것은 희랍어 성경 원문에서 번역하지 않고 영어성경에서 번역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밀알 대신 씨알로 고쳐서 번역하고 씨알을 화두로 삼아서 생각하고 실천하면 좋지 않을까? 씨알이 밀알보다 훨씬 풍부하고 보편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며 우리 생활과 밀착되어 있다. 씨알은 어디서나 보고 느낄 수 있으나 밀알은 찾아보기 어렵다.

씨알 하나가 깨지고 죽어서 새싹이 나면 수 백 배의 영양소가 새로 생겨난다고 한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진리일 뿐 아니라 생명과 역사와 사회의 진리이고 영의 진리다. 오늘 인간과 사회가 살 길은 이런 씨알의 진리를 깨닫고 실천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 동아시아가 공자 말씀을 기준으로 살았다면 21세기 민주와 생명, 영성과 평화의 시대에는 씨알의 사상과 정신을 기준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박재순(씨알사상연구소 소장)  p994@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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