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나는 하나님나라에 공공성이 깔려 있다고 본다. 그래서 제목에 ‘하나님나라의 공공성’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물론 이 관점은 성서로부터 뒷받침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나라의 공공성은 교회의 사회적 성격을 규명하는 좋은 용어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쟁점으로 크게 부각되고 있는 ‘공공성’이란 주제를 종교 특히 개신교의 영역에 한정하여 다루어 보는 것이 이 글의 뜻이다.

‘공공성’이란 말은 “한 개인이나 단체가 아닌 일반 사회 구성원 전체에 두루 관련되는 성질”이다(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공공성은 공(公, public)의 성격뿐만이 아니라 함께 하는 공(共)의 과제를 안고 있다. 이 과제 때문에 공공성을 담아내는 일을 국가가 독점할 수는 없게 된다. 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지만(公) 시민들이 함께 나서야 해결되는 문제도 있다(共). 정부의 개입 없이 민간 스스로가 해결려고 나설 때 공공성의 의의는 온전히 실현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공화국’이란 말은 res publica라는 라틴어에서 발달하였다. <레스 푸블리카>는 ‘공적인 것 또는 일’, ‘시민의 것’이란 뜻으로 공공성을 표현한다. 로마 도성에서 공공성은 성민이 모여서 어떤 일을 함께 결정해나가는 과정을 의미하였다. 로마라는 도성공동체의 일을 함께 결정해나가는 과정에서 공공성이 발달한 것이다. 이 용어에는 ‘common / official / public / open’이라는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공공성은 ‘사’를 버리고 ‘공’을 앞세우는 ‘멸사봉공’이라는 협소한 의미로 한정하면 안 된다. 공무원이나 전문가가 공공성을 실현하는 주체라는 인식이 우리나라 왕조시대와 근대 이후에 널리 인식되어 왔다. 이것은 공공성을 왜곡한 것이다. 공유화는 소유의 주체가 공동체이고 운영 과정에서 스스로 결정하고 관리하는 주체를 기른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공공성은 어느 누가 임의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성원이라면 누구나 그 결정 과정에 참여함을 의미한다. 일본 생협운동가 요코다 가쓰미는 “정부가 만드는 공공 영역과 시민이 만드는 공공 영역이 힘의 균형을 이루게 하고 두 영역이 만드는 가치가 선순환하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와 시민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려면 시민 사회가 국가의 공공성 독점을 해체할 수 있는 힘을 갖추어야 한다. 시민사회가 커지는 기업의 영향력에 의해 공공기관이 민영으로 사유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국가와 시장에 대항할 수 있는 대안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 관점에 공공성의 강조점이 있다. 공공성을 재구성하려면 시민들이 자신의 뜻을 실현할 거점을 마련해야 한다. 노동조합이 운영하는 ‘개방센터’, 유럽에 있는 ‘민중의 집’. 노동자들의 공제조합, 협동조합, 러시아에서 농촌문화생활의 거점이 된 ‘인민회관’, 윤봉길이 조직한 위친계․월진회·부흥원, 풀무학교, 안창호 등이 시도한 이상촌,  ‘지역 도서관’, 등이 시민운동의 거점의 사례들이다. 

17세기 중반부터 ‘공중public'이라는 말이 등장하고 여론이 공공성을 실현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1970년대 말부터 거버넌스governance란 말이 등장했다. 복지국가의 위기와 1990년대 이후의 정보화․세계화․지방화의 흐름 속에서 정부와 시민사회가 협약, 협의, 관행에 따라 같이 약속하고 의논하고 정책을 만들며 문화를 만들어가자는 운동이 거버넌스다. 거버넌스는 시민 사회의 자치와 정부/시민 사회의 협치를 지향하고 공공성을 실현하는 국가 구조의 전환을 의미한다. 

우리네 역사에서는 천리天理나 위민爲民 같은 개념을 통해 공공성이 실현되었다. 다만 이러한 공적인 사업들이 지배자의 판단에 좌우되었다는 점에서 공공성을 높이 평가하기는 어렵다. 개화기 지식인들은 유학에서 무시되어온 사私의 가치를 살림으로써 근대적인 공론장을 만들고자 했으나, 이런 전환은 계몽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민중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반反민주적 성격을 드러내기도 했다. 인민과 백성의 중요성을 인식했지만 그들을 신민으로 계몽시키길 원했고 사의 의미에 주목했지만 이를 동포에 편입시키려 했던, 공공성에 대한 모순된 인식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더 뒤틀리게 된다. 식민지시기에 일제는 계몽과 근대화의 논리를 앞세워 폭력적인 공공사업을 벌였다. 역사학자들은 ‘식민지 공공성’이라는 개념에 주목하는데 식민지의 정당성을 부인하면서도 공익에 해당하는 공공사업을 환영하는 모순된 감정이 이 용어에 실려있다. 식민지 공공성은 식민지 시기의 경제 변화에 주목한 것이다. 일제는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정신 및 순국 정신 앙양, 성지 참배, 후생 운동’ 등을 내세워 사회 전체를 규율하려 했다. 식민지 공공성이라는 개념은 그동안 논의되지 않던 쟁점을 드러내긴 했으나 식민지 당시 주민의 삶에 공공성이 어떤 의미가 있었고 어떤 지향을 가졌는지를 드러내지는 못했다. 식민지 공공성의 정의에서는 공公이 부각되지만 공共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참조. 하승우, 『공공성』, 서울: 책세상, 2014.]

성서는 로마 도성의 공공성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를 우리는 질문할 수 있다. 근자에 ‘종교와 공공성’이란 주제가 쟁점이 되었다. 하나님의 공공성을 담보해야 할 교회가 사유화되거나 공공성을 상실하고 집단이기주의를 표출하는 사건들이 불거지면서 교회가 사회의 문제를 일으키는 집단으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 집단, 사회, 국가가 종교 와 연동하여 움직이는 다양한 연관성에서 공공성의 문제가 생긴다. 기독교는 어떠한 공공성을 내포하고 있는가? 교회는 국가로 대변되는 공(公)에 어떻게 관여하고 있는가? 그리고 시민운동으로 대변되는 공(共)에 대해서는 어떻게 참여하고 있는가?

‘종교와 공공성’은 교회를 사유화하려는 시도들로 인해서 사회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 쟁점은 종교가 마땅히 해야 할 사회적 책무를 방기함으로써 제기된 것이다. 공적 영역을 정의하는 일은 애매하며 국가권력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의 맥락 등과 얽혀 있다. 따라서 교회의 공공성을 논하려면 국가(권력)와의 관계와 시장권력(돈)과의 관계를 제대로 설정해야 한다. 최근에는 세계화 담론이 확산되면서 국가권력 문제만이 아니라 시장권력의 문제도 크게 쟁점화되고 있다. 한국사회에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종교집단이 돌출하고 기업체를 닮는 운영기법을 도입하는 교회들고 생긴다. 특히 교회가 상업주의와 결탁하는 사례들이 많이 드러나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교회와 공공성의 문제를 논하는 것은 매우 긴급하고도 중요한 일이다. 먼저 교회의 사회적 존재양태로서의 공공성을 논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당연히 성서에서 해답을 찾아야할 질문이다.

1. 도성신학의 문제점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공인을 받은 후 교회는 국가의 중심 세력이 되었다. 국가를 잘 경영하려는 사명을 맡으면서 왕과 제후들과 함께 사회와 국가와 교회의 문제를 풀어나가야 했다. 이런 과정에서 고대부터 도시경영을 위하여 발달해온 헬레니즘 철학의 정치학과 윤리학이 신학의 근간을 이루고 기독교사상의 중심에 우뚝 서게 되었다. 여기에 현대교회가 당면한 곤경의 본질이 놓여 있다.

본디 도성은 가인이 세운 죄의 열매이다. 아벨을 죽인 가인이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하여 성벽을 쌓아 올렸다(창4:17). 그것을 아들 이름을 따서 에녹성이라 불렀다. 성벽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가로 막는 불통의 상징물이다. 또한 성벽은 폭력의 상징물이다. 죄의 현상은 폭력이며 도성의 본질은 폭력에 대한 공포심과 방어기재에 있다(창4:14). 도성에서 인류의 문명이 발달하였고 인간의 복지를 위한 산업이 융성하였다. 사람의 먹을거리는 채소라고 지정하여 주셨건만(창1:29), 도성에 살던 가인의 자손 라멕은 육식에 탐닉하여 도성 바깥에서 축산업을 장려하였다(창4:20). 라멕은 도성 안에서 문명을 위한 심포지움을 열고 향연을 일상으로 열어서 음악을 개발하였다(창4:21). 노예제 사회체제를 구축한 도성은 강한 국력을 신장하기 위하여 광산을 개발하였다. 구리와 철을 캐고 공업을 발달시켜 각종 기구 특히 무기생산에 열을 올렸다(창4:22). 하나님 없이 사는 인간주의의 도성문명은 불행한 삶으로 귀결되었다.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 진행되어 살인 사건이 증가하였다(창4:23~24).

노아의 시대에 대홍수가 나서 노아의 가족을 제외한 모든 인류가 심판을 받았다. 심판의 동기는 폭력에 있었다(창6:11). 심판 후에 새언약을 맺었으나 노아의 둘째 아들 함과 그 후예들이 가인의 문명을 계대하여 도시국가들을 세웠다. 애굽(미츠라임)과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 같은 대도시들이 주변의 도시들을 복속시키면서 국가를 건설하였다(창10:10, 마믈레케트). 국가는 본디 도성들의 연합체로서 구성되었다. 성서는 국가의 기원이 가인과 함의 죄에 있고 그 본질은 폭력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폭력으로 세운 국가 대신에 창조주의 사랑이 편만하게 넘치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로 작정하셨다. 가인에게 살해당한 아벨 대신에 셋을 주셨다(창4:25). 창4:25에 ‘대신에’란 뜻의 전치사 <탁하트>를 사용했는데 이것은 셋이 아벨의 후예이며 하나님께서 의인의 생명을 되살리신다는 부활사상의 원조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셋의 후예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려고 한다. 당장 도성이나 국가를 건설하지 않으시고 오랜 세월을 거쳐서 나라를 섬길 백성을 우선 양육하시려고 한다. 선악과를 먹고 타락한 인간성을 하나님을 닮은 사람 본유의 것으로 바꾸시려는 것이다. 그래서 셋의 후예는 가인의 후예와 명료하게 대조를 이루는 가계로 이루어주셨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승천하였으며 라멕은 최장수를 기록한 므두셀라의 아들이었으며 당대의 의인 노아를 길러낸 아버지였다. 라멕은 거룩한 숫자로 이루어진 777년을 살았다. 셋의 족보<톨도트>는 가인의 족보에 뚜렷하게 대조된다(창5:1~32). 이 대조법은 함의 족보에 나란히 주어진 셈의 족보에서도 나타난다. 함의 후예들이 애굽과 메소포타미아와 가나안 지역에서 도시국가들이 즐비하게 건국한 것과는 반대로 셈의 후예들은 소수자로서 아무런 도시나 국가를 세우지 않는다. 도시국가들이 전쟁을 일삼았지만 셈의 후예들은 평화를 기원하면서 도시국가들의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열국광야를 유랑하였다.

성서는 고대의 지중해 문명권에서 번영한 도시들과 국가들에게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 모든 문명이 도시에서 발달한 것이며 하나님의 거역하는 죄악의 산물이다. 도시국가들은 철철이 전쟁을 일삼았으며 전쟁으로 약탈하고 노동력과 재물을 취득하였다(창14장). 성서는 전쟁에서 전리품을 사취하지 말라고 금지함으로써 전쟁의 동기를 원천에서 차단하고 있다(헤렘). 야훼의 거룩한 전쟁 신학이 바로 그것이며 여호수아의 여리고 함락 전쟁에서 전형으로 제시되어 있다. 세속도시들은 통상 군주제로써 사회체제를 이루어 왕의 지배를 받았다. 성서는 도시국가의 왕들을 말씀의 능력으로 진멸하는 과정을 보여준다(수12:24). 요단강 동편에서는 아모리왕 시혼과 바산왕 옥이 진멸을 당하였다(민21장). 

도시국가에서 노예제를 합리화하는 신학이 발달하였다. 노예는 도성에 산다하더라고 도성민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도성민들은 노예는 영혼이 없기 때문에 동물이며 사람이 아니라고 간주했다. 신들은 강한 자들을 선택하며 약한 자들은 신들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도성에서 발달한 신학은 강자의 이익을 옹호하는 신학이며 엘리트의 신학이고 영웅을 숭앙하는 사상이었다. 전쟁에서 패배하여 포로로 잡혀온 자들은 약자들이므로 신들의 은총을 받지 못하여 동물로 전락하여 노예노동에 종사하는 것이 마땅하다. 도성들은 이러한 신학을 각기 자신의 섬기는 우상으로 형상화하고 표현하였다. 모든 도성마다 우상이 있었다. 우상의 기치 아래 모든 도성민들은 단결을 꾀하고 부강을 도모하였다.

도성체제(politeia) 아래에서 고통당하던 노예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도성민 중심의 레푸블리카에는 심각한 문제가 깔려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시민들이 왕의 전제정치를 저지하는 것까지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노예들이나 다른 도성들과의 투쟁하는 관계에 생각이 미치면 레푸불리카의 한계를 명확히 짚어 낼 수 있다. 로마도서의 예를 들면, 로마도성에 사는 시민들만이 레푸불리카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제국의 범위에서는 로마시민이 아닌 자들은 로마나 팍스의 혜택을 누릴 수가 없었다.

율리우스 시저는 유럽 대륙을 침략하여 수많은 원주민 부락공동체를 파괴하고 재물을 약탈했으며 주민을 노예로 잡아서 로마도성으로 끌고 왔다. 개선할 때 로마시민 전체의 환호를 받았으며 약탈물과 백만 명의 노예를 로마시민에게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이에 시저는 전 국민의 환호를 받았으며 영웅으로 숭앙받았다. 이 경우에 로마시민의 정체는 무엇인가? 로마의 번영을 위해서 모든 다른 족속들을 야만인으로 간주하고 정복한 것을 정당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가? 성서는 이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도성은 폭력자 가인이 세운 죄의 결과물이다. 성서는 도시국가에 대해 몹시 불편해 하며 경계한다.

'도성/도시/성읍' 따위로 번역한 히브리어는 <이르>이며 그리스어는 <폴리스>다. 공화체제를 가리키는 그리스어 <폴리테이아>는 그 말에서 보듯이 도시의 사회체제를 가리킨다. '정치학'이란 영어 단어 <폴리틱스>도 도시의 경영학을 의미한다. 도시들의 연합으로 국가가 성립하는데 정치도 도시를 전제로 한 용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도시나 국가를 너머서 도시나 국가가 없는 대안체제를 구상한다면 <폴리티>라든가 <폴리테이아>라든다 <폴리틱스>란 단어 자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에도 대한민국의 법은 자국민에게 혜택을 주며 타국에서 이주한 외국인들에게는 동일한 혜택을 주지 않는다. 만일 그가 이주노동자라면 그 혜택은 더욱 제한된다. 뿐만 아니라 도시국가의 생래적 한계성 때문에 체제 내의 빈부격차를 이겨낼 힘은 국가 자체 내에서 생겨나지 않는다. 예수께서도 ‘가난한 자는 언제나 너희 곁에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도성에는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이다. 스칸디나비아식 복지국가가 성립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식민지지배의 역사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공화국도 고대의 레푸블리카의 역사적 한계성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사회의 대안은 무엇일까?

▲ 피카소의 '전쟁과 평화'

영웅이 지배하는 국가의 죄악성을 극복하고 그 체제 아래에서 신음하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여호와는 애굽에서 노예살이하는 히브리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이시다(출20:2). 애굽이란 국가의 왕조를 무너뜨리고 거기에 히브리인으로 하여금 새 왕조를 세우도록 하는 방식으로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이 아니다. 혁명이나 개혁을 통하여 국가의 권력을 잡도록 지도하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애굽이란 국가 자체를 버리고 탈출하여 광야로 이끌고 나가신다. 하나님은 시내산 위에 내려오셔서 백성에게 십계명을 주신다(출20:1~17). 백성이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여 모세를 설교자로 내세운다(출20:18~21). 하나님은 십계명을 자세하게 풀어서 계약법으로 다시 내려주신다(출20:22~23:33). 백성이 이 말씀을 준행할 것을 서약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이 이 땅에 탄생하였다. 이스라엘은 하나의 말씀공동체로 성립하여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다(출24:1~11). 이들을 일컬어 ‘여호와의 총회’라고 부르는데 히브리어로는 <카할>이며 그리스어로는 <에클레시아>이다. 이 용어는 신약성서에서 ‘교회’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가인의 도성과 함의 국가를 극복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양육하시고 언약을 맺으셨다. 도시와 국가에 대한 대안의 사회로서 에클레시아를 창설하신 것이다. 광야공동체! 그것이 하나님나라의 원형이다. 이 공동체는 이제 광야를 거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가나안에는 무너뜨려야할 여리고 도성과 아이 도성과 벧엘 도성 등 서른 한 개의 도시국가들이 기라성같이 서 있다. 에클레시아가 레푸블리카의 대안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에클레시아의 본질적 차별성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3. 하나님나라의 공동체성

하나님나라의 공공성이란 용어가 성립하려면 도시국가에서 생겨난 용어 res republica란 의미를 넘어서야 한다. 왜냐하면 도시국가의 아고라를 전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에클레시아는 가나안의 도시국가를 무너뜨리고 왕들을 진멸하는 대안체제였다. 시민사회가 공공의 광장에 나와서 연대하며 국가의 권력을 대행하는 정부로 하여금 민주주의를 수호하도록 지지할 때 교회도 그 연대에 합류하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레푸블리카의 도시국가적 한계성 안에 있음을 늘 인식해야 한다.

요한신학은 도시국가의 폴리티 자체를 그것이 전제군주제가 되었건 레푸블리카가 되었건 간에 <코스모스>라고 부른다. 코스모스는 ‘세상’이라고 번역하였다. 하나님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여서 독생자를 보내셨다. 그러나 ‘세상’을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죽였다. 이 때 ‘세상’은 도시국가가 지배하는 세계를 가리키며 도시국가가 창출한 가치와 문명과 사회체제를 통털어 일컫는 용어로 쓰였다. 그러므로 ‘세상을 이겼다’는 표현은 기존의 사회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대안의 사회를 향한 거듭남을 이루었다는 선언이다. 에클레시아는 이 점을 지향하는 공동체다.

3.1. 디아스포라와 창조신앙 - 농의 신학

오경연구의 최근동향에 의하면 성경이 저술된 시대는 디아스포라의 시대였고 성경의 독자들은 디아스포라의 말씀공동체였다.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한 후에 바빌로니아 포로지에서 소수의 남은 자들이 디아스포라 공동체로 성립하였다. 이들은 안식일에 모여서 말씀을 읽고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로 탄생하였다. 이것이 말씀공동체의 원조이며 교회의 모형이 된다. 디아스포라 중심사상은 하나님의 나라였다. 그들은 도성 바깥에 살았으며 도성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는 노예노동에 종사하였다. 페르시아 시대에 이르러서는 상당한 규모의 공동체를 구성하였다. 이들은 도시의 문명을 존속시키기 위하여 노동을 강요당하면서 노예제의 폐지를 꿈꾸었다. 야훼는 노예를 해방시키신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이 이들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노예는 7년 째 해방시켜야 한다는 큰 깨달음도 이들에게서 언약으로 체결되었다. 디아스포라는 도성민들이 주도하는 레푸불리카를 가능하게 하는 물적 기초가 노예제에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 세상 도시국가의 기초를 이루는 노예제를 강타함으로써 새로운 대안체제를 에클레시아는 제시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교회의 원조이다.

도성의 신학을 넘어서기 위하여 에클레시아는 농의 신학을 제창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을 창조주와 구원주로 고백하는 데서 출발하였다. 농(農)은 하나님의 창조원리에 따라 사는 삶의 방식이다. 별 진(辰) 자 위에 노래 (曲) 자가 얹혀 있으니 ‘별들의 노래’가 농이다. 황도를 따라 도는 우주의 운동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존재자가 곧 사람이라는 고백이 창조신앙으로 터져나왔다. 사람이 하나님 없이 폭력으로 살아가는 도성의 삶은 심판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에클레시아는 하나님의 복을 받을 것이다.
에크레시아는 도성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 시민사회의 정치참여와는 근본에서 궤를 달리한다. 모든 공공성이 권력의 분점을 노리며 더 나아가 운동가들이 권력의 획득을 노리고 있다면 에클레시아는 출발부터 권력의 존재를 부정하는 입장을 취한다. 정치란 영어로 <폴리틱스>인데 이 용어는 <폴리스> 곧 도시를 전제한 용어이다. 정치는 근본에서 도시경영학 내지 국가경영학이다. 그러나 에클레시아는 처음부터 도성의 멸망을 바라보면서 탄생한 공동체이다. 에클레시아는 세상의 국가를 허물고 그 대신에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기를 기다리는 희망의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에크레시아의 정치참여란 권력의 획득을 노리지 않는다. 

3.2. 대안공동체의 주체로서 레위인

에클레시아를 잘 나타내는 물질운영의 원리가 민수기 18장에 나타나 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레위지파에게는 아무런 분깃이 없다는 것이다. 레위인의 분깃은 하나님이고 하나님의 분깃은 레위인다. 즉 레위인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선언이다. 레위인은 아무런 직업도 가지면 안된다는 말이다. 레위인은 오늘날 교회의 목회자를 낳은 모범이다. 레위인은 목사의 원조라는 말이다.

레위인은 에클레시아를 말씀공동체로 지속하게 하는 영적 지도자들이다. 레위인은 전 삶을 바쳐서 회막에서 봉사해야 한다. 모세와 아론도 레위인이었다. 레위지파에서 제사장이 나온다. 모세는 말씀을 풀어서 설명해 주는 역할을 맡았다(출20:18~21; 신1:5). 모세는 설교자의 원조이다. 아론은 백성을 위하여 중보하는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다(민18:1). 아론은 목회자의 원조이다. 다른 레위인들은 회막수직을 서야한다(민18:2). 레위인은 교회 직분자의 원조이다. 레위지파는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땅을 소유해서는 안 되었다. 이스라엘 열 한 지파는 땅을 분배받고 소득의 십일조를 레위지파에게 주어야 한다. 이것이 에클레시아의 운용 원리였다.

에클레시아는 대안사회로서 그 중심에 말씀을 품고 있어야 한다. 언약궤 안에 들어 있는 두 돌판이 말씀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동체가 늘 준행할 수 있도록 레위인들이 말씀을 항상 공부하고 익히고 가르쳐야 한다(신17:18). 에클레시아는 국가로 성립해서는 안 된다. 국가는 언필칭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어 있는 체제이므로 아무리 말씀을 가르쳐도 결코 하나님의 뜻에 부응할 수가 없는 죄악의 체제이다(삼상8:22). 레위지파가 성서의 가르침을 목숨을 다해 수호함으로써 에클레시아는 세상을 이기는 힘을 받을 수 있다.

사무엘의 만류를 뿌리치고 기어코 왕을 옹립하여 국가를 세우더니 결국 북왕국도 남왕국도 모두 멸망하고 말았다. 에클레시아는 국가로 전환해서는 안된다. 에클레시아가 하스모네 왕국으로 성립했을 때 또 다시 국가로서는 하나님의 법을 준행할 수 없다는 뼈저린 교훈을 남겼다. 예수께서 국가의 건설을 추동하는 메사야 사상을 일체 거부하심으로써 바리새파의 표적이 되었다. 초대교회가 에클레시아로 거듭 태어나서 로마의 레푸블리카와 황제로부터 오랜 박해를 받았다. 에클레시아가 로마제국을 이기고 콘스탄틴 기독교로 성립하였다. 그러나 콘스탄틴 기독교는 성서가 가르치는 에클레시아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여 결국 교회가 국가의 권력을 이행하는 마수에 걸려들고 말았다. 이것이 서구교회의 본질이므로 한국교회는 서구교회의 바탕에 짙게 깔려 있는 콘스탄틴 기독교를 성찰하여 제거하고 성서 자체로 돌아가야 한다.

3.3. 레위인과 공공성 - 기금운용의 원리

레위인은 공공기금을 운용하는 책임을 맡았다.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게 하여라’는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 레위인들이다. 땅도 재산도 없는 레위인들이 어떻게 가난한 자가 없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가? 그 비결은 십일조에 있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는 레위지파에게 십일조를 주어야 한다(민18:21). 레위인은 십일조뿐만 아니라 제단에 바친 모든 헌물을 받아야 한다. 레위인은 모든 헌물을 에클레시아를 위한 공공기금으로 사용해야 한다.

광야에서 인구조사를 했을 때 레위인이 전체 지파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얼추 30:1이었다. 열한 지파의 인구가 603,550명이었는데 레위지파는 22,273명이었다(민2:32; 3:43). 열한지파의 십일조를 받으면 레위인의 수입은 일반 지파의 세 배를 웃돌게 된다. 거기에 각종 헌물을 다 받으면 레위인의 수입을 훨씬 더 늘어난다. 이것은 레위인이 받은 수입은 에클레시아의 운영 기금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기금을 가지고 레위인은 학교와 병원과 법원 등 각종 복지시설에 투자해야 한다. 이것을 사취하는 레위인은 타락한 제사장으로 금방 드러나게 되어 있다. 엘리 제사장이 타락한 전형을 보여준다(삼상2:12~14). 타락한 제사장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레위인은 받은 십일조에서 다시 십일조를 떼어서 대제사장 아론에게 주어야 한다. 아론도 마찬가지로 그것을 공공의 기금으로 운용해야 한다. 에클레시아의 모든 헌물과 헌금은 이와같이 공공성을 띤다. 교회가 사유재산이 되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재산권과 관련하여 목사의 세습을 금지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목사의 사유재산조차도 모두 공적 재산으로 환수해야 에클레시아가 건강하게 성장한다. 그리고 목사에게 기금운용의 모든 권한을 맡기고 그가 타락하지 않도록 잘 보살펴야 한다. 이것이 교회재정운용의 원리로 정립해야 교회가 타락하지 않는다.

나가는 말

교회가 시민사회의 공공성을 인식하고 세상에서 주어진 사랑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 교회가 집단이기주의에 빠져서 사회적 책임을 방기해서는 안 된다. republica 사회의 일원으로서 민주주의를 떠받들고 나아야 하는 선교적 책임은 교회에게 중요하다. 그러나 교회는 republica 속에 있는 에클레시아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에클레시아는 하나님의 나라를 추동하는 주체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신앙공동체로서의 교회는 구약성서가 증언하는 에클레시아<카할>의 본질을 잊지 말고 말씀을 중심으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회복해야 한다. 세상의 도시와 국가들이 익숙하게 세워놓은 질서를 본받지 말아야 한다. 세상문명의 주는 모든 이기를 가능한 한 멀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것은 에너지 순환의 원리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세상이 구축해 놓은 위계질서를 거부해야 한다. 목사나 당회가 평신도 위에 군림하는 권위주의를 청산해야 한다. 형제 위에 군림하는 카리스마를 없애고 온전히 섬기는 레위인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교회는 에클레시아가 주변 열방들에 대해서 지녔던 관계를 잘 공부하여 명확하게 인식하여서 세상에게 먹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기는 하나님의 나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이영재 교수 (Ph.D., 전주화평교회)  rheeyjae2005@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