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를 문제 삼을 때 눈여겨 보아야 할 작품이 하나 있다. 바로 영화 <밀양>이다. 아들과 함께 죽은 남편의 고향 밀양에 정착하기 시작한 주인공 신애.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아들 진우를 유괴살해로 잃는다. 주변의 권유로 교회에 다니며 은혜를 체험한 신애는 범인을 용서하기로 결정한다. 교도소에서 죄수와 마주한 신애는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신애는 그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다. 자기도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느님이 죄 많은 자기에게 찾아와 주셨다고. 눈물로 회개하고 용서를 받았다고. 그리고나서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그러나 신애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드디어 그녀는 항변한다. 자기가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하느님이 어떻게 먼저 용서하실 수 있느냐고. 영화 <밀양>이 기독교에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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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밀양 | ||
성경에서 일곱은 완전을 의미하는 수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거룩한 수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곱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가인과 라멕의 인간성은 그만큼 더 철저히 보호를 받지 않으면 지켜지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일곱 번씩 일흔 번의 용서는 인간성이 회복될 때까지 이어져야 할 철저한 용서를 가리킬 것이다.
그런데 당한 쪽에서만 용서하면 되는 것인가? 용서의 교훈은, 일곱의 일흔 갑절이라는, 실제로는 무한을 의미하는 수량의 무게 때문에, 시혜자 쪽에서 행해야 하는 일방적인 의무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이어지는 비유(마 18.23-34)를 곰곰이 살펴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한 임금이 빚을 갚을 길이 없다며 애걸하는 “종”의 1만 달란트를 탕감해준다. 그러나 그 종은 100데나리온 빚진 동료 종을 윽박지르며 옥에 넣는다. 소식을 전해들은 임금은 그 “악한 종”을 다시 불러들이고, 옥에 가두었다.
비유에서 부각되는 주제는 빚의 탕감이다. 그런데 한번 탕감해준 빚을 다시 받겠다고 해도 되는 것인가? 세상에는 일사부재리라는 원칙이 있다. 이미 완결된 판결이 아니며, 더욱이 임금 스스로 내린 결정이 아니었는가? 그러나 비유의 공간은 세상 법정이 아니고, 판결은 세상의 법칙대로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비유에서 빚의 탕감으로 표현된 용서를 법정적인 것으로 파악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용서를 죄의 탕감이 아닌 인간성의 회복으로 파악한다면, 그 과업의 수행은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의 몫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 일은 길고 다양한 과정이 요구될 것이다. 잘못이 무엇인지 세밀하게 파악되어야 하고, 그것들이 하나하나 바로잡혀야 할 것이다. 뼈를 깎는 고통이 동반될지도 모른다. 원상회복이란 그런 것이 아닌가?
개역에서 옥졸로 번역된 원어 ‘바사니스테스’는 ‘바사노스’에서 유래한 말이다. ‘바사노스’는 본래 시금석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서 알 수 있듯이 ‘고통’이라는 뜻으로 전의되었다(눅 16.23). 따라서 ‘바사니스테스’는 단지 감옥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진실을 가리기 위해서 고통을 가하며 국문(鞠問)하는 사람으로 파악된다. 종은 빚을 다 갚을 때까지(마 18.34) 그런 고통 속에 있어야 한다.
종이 고통 속에 있어야 하는 기간은 산상수훈에서, 형제에게 화를 내며 ‘골빈 놈’이라고 욕하며 쓸모없는 인간으로 취급하는 자들(마 5.22)이 받아야 하는 고통의 기간과 같다. 그들은 마지막 한 푼도 남김없이 다 갚기 전에는(마 5.26) 그 고통의 공간에서 풀려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들이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기 전에 해야 할 일은 형제와 얽힌 갈등을 먼저 해결하는 일이다(마 5.23,24).
용서의 비유가 담고 있는 구조도 그와 같다. 사람들 사이에서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느님 앞에서도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면 신애는 이렇게 다시 항변할지도 모른다. 자기한테도 용서를 받지 못했는데, 어떻게 하느님께 용서를 받을 수 있겠느냐고. 요즘 우리 사회에는 사람들한테서 용서 받을 수 있는 기회마저 스스로 내던지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김구 (한신대 외래교수)
김구(한신대 외래교수) fonsjugi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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