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이 땅을 밟을 교황께서 아르헨티나의 한 대형화재로 인해 수백 명의 청년들이 목숨을 잃자 백성들 앞에 나아가 이렇게 말씀했답니다. ‘더욱 애도하자고, 철저하게 슬퍼하자’고 말입니다.

세월호 유가족을 단식 장으로 내몬 것도 부족하여 이제는 잊어야 한다고, 여름철 휴가를 다녀오라고 애써 권하는 우리 정부와 너무도 변별된 모습입니다. 잊혀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유가족 가슴속에 정부는 큰 대못을 또 한번 박은 것이지요. 세월호 참사로 ‘부모는 자식을 잃었고 백성은 국가를 잃었다’는 세간의 말이 조금도 틀리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유족들은 광화문 광장에서 마주칠 교황과의 만남을 내심 너무도 기다릴 것 같습니다. 정부는 유족들을 방어막 밖으로 내칠 기세이지만 말입니다.

세월호 참사 백일을 지나면서 우려할 일, 우리 관심을 분산시킬 만한 많은 사건들이 터졌습니다. 상당 규모로 치러진 금번 보궐 선거의 결과가 지난 대선의 악몽보다 끔찍했다 평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세월호 특별법 처리를 기대했던 사람들의 절망이 너무 컸던 탓이지요. 망각을 요구하는 그들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더욱 거칠고 야비해졌습니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공분을 크게 살 일입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자치구를 무자비하게 공격하여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이스라엘의 만행, 젊은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간 이 땅 군대 조직의 비극 그리고 어른들에 의해 잔인하게 희생된 진해 여고생 사건 등을 목도하며 우리의 고통과 슬픔을 어찌 나눌까를 걱정하였습니다. 이 모두 국가가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중대 사안으로서 관심 둘 일이건만 세월호 참사에 집중하기 위하여 애써 마음을 접고 있는 중입니다.

물론 단식 중, 무더위나 폭풍도 감당하기 쉽지 않은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휴가를 광화문 유족들과 함께 하려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것을 보며 힘을 얻습니다.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 결코 끊어져서는 아니 될 귀한 발걸음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밝혀지는 것은 없고 쌓이는 것은 의심뿐입니다. 주지하듯 백성들은 경찰과 검찰이 조사했던 수많은 사건을 조작 수준이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누구도 그들의 결과를 믿고자 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월호 침몰 원인부터 유병헌 시신부검 그리고 그의 아들 검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대해서 말입니다. 자기검열에 충실한 채 정권의 입맛과 조율하는 일에만 관심하는 다수 언론에도 결코 신뢰를 주지 않습니다. 남의 고통을 희화시키며 야단법석을 떠는 종편들에 마음을 빼앗기는 듯 보였으나 실상은 달랐습니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연령대 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국민들 과반수이상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지닌 특별법에 찬성했던 까닭입니다. 이는 결국 세월호 참사로 야기된 무수한 유언비어를 백성들이 일정부분 사실로 믿고 있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집단지성으로서의 다중(多衆)들의 통찰력은 대단합니다. 세월호 참사의 사실적 이유가 은폐될수록 이들 상상력과 판단은 예리해 질 것이고 더 많은 유언비어를 유통시킬 것입니다. 예부터 민심은 천심이라 했습니다. 유언비어는 사실이 왜곡되고 억압 받을 시, 민심이 만들어 내는 천심이란 말입니다. 그렇기에 유언비어는 결코 거짓된 날조가 아니라 백성들 마음이 담긴 하늘의 소리인 것을 위정자들이 깊이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예수의 부활 역시도 유언비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종교권력과 정치권력이 합작하여 자신들에게 거추장스런 예수를 십자가에 달아 처형했는데 그런 그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은 로마와 대제사자들에게 의당 유언비어로 치부되어야 마땅했습니다. 당시 권력자들에게 예수의 부활사건은 함구해야 될 정치적 유언비어와 다름없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성서는 특히 마가의 경우, 로마가 예수를 죽였으나 실상은 예수가 로마를 이겼다는 가르침을 부활의 메시지로 전하고 있으니 로마로서는 의당 그리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권력자들이 유언비어라 여긴 부활은 정작 당시 백성들에게 진리였고 희망이었으며 용기였습니다. 삶의 방향을 달리하는 사건이었고 인생에게 새로운 관(觀)을 선사하는 엄청난 변화였습니다.

그때처럼 지금도 유언비어는 계속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단지 권력자들이 아니라 백성들이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다를 뿐입니다. 유언비어란 진실을 밝혀달라는 이 땅 민중들의 아우성입니다. 하여 세월호 참사를 당한 유족들과 그를 안타깝게 여기는 이 땅의 백성들을 죽음이 아닌 부활로 이끌기 위해서라도 유언비어의 실상은 낱낱이 밝혀져야 옳습니다.

그렇기에 성역 없는 조사가 보장되지 않는 한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세월호 참사는 예수를 차디찬 무덤 속에 가두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것은 진리에게 승리를 보장 못하는 패배의식의 일면으로서 이 땅을 전혀 달리 만들 수 있는 여지를 부정하는 까닭입니다. 불행하게도 어느 언론, 방송도 사실을 사실대로 밝히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잊히기만을 바라며 여전히 우리를 경제동물로 만들고자 할 뿐입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라는 아픔을 겪으며 개인과 우리 모두는 새로운 세상을 기대합니다. 돈이 아닌 생명의 소중함이 지켜지는 나라, 누구나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 있는 노동의 현실, 획일적 잣대에서 빗겨난 새로운 교육제도, 가족의 소중함을 지켜주는 사회, 총체적으로 정의와 법으로 약자의 삶이 보장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땅의 총체적 불의로 인해 생명을 잃은 그들 영전을 바라다 볼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럴수록 그들의 부활은 이렇듯 새로운 대한민국의 현실로 나타나야 마땅합니다. 이일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을 아는 것이고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 운용하는 일일 것입니다. 진실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진실의 힘을 가르치고 믿도록 하는 일은 이 땅 종교인들에게 남겨진 몫입니다. 진실을 찾아 지켜낼 수 없다면 부활을 선포할 자격도 잃을 것입니다. 예언도 환상도 모조리 빼앗길 운명입니다. 정말 그것은 부활신앙을 사장시키는 일이자 3백여 명의 영혼을 또다시 진도 바다 속에 수장시키는 일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종교인으로 제대로 산다는 것은 힘들고 어렵습니다. 더구나 기독교인의 가치가 한없이 추락한 현실에서 이런 말 하는 것조차 버겁기 그지없습니다.

그럼에도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우리의 슬픔은 끝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순간(골든타임)조차에도 국가는 그곳에 없었던 탓입니다. 유언비어 속의 진실이 인정될 때까지, 국가가 자신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내는 순간까지 우리의 애도는 끝나서는 아니 될 일입니다. 부활한 예수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며 공생애를 시작한 갈릴리로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갈릴리는 오늘 우리에게 팽목항이며, 진도이고 안산이며 광화문이고 국회의사당입니다. 바로 이곳에 오늘 우리의 교회가 자리해야 합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갈릴리로 옮겨갔듯 오늘의 교회 역시 자신의 거처를 이곳으로 이동해야 마땅하겠지요. 다시 교황의 말이 생각납니다. 이 땅의 백성들이 교회에게 요구하는 것은 실천이란 말입니다. 오늘의 갈릴리에서 교회가 감당할 실천이 무엇이겠습니까?

섣부른 위로보다 더욱 철저히 같이 애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진실이 묻히지 않도록 죽을힘을 다해 애쓰는 것이 세월호 참사 이후를 준비하는 교회의 실존인 것을 잊지 맙시다. 부활을 믿는 교회라면 지금 억울하게 죽은 뭇 영혼을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은 진실을 제대로 밝혀 그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일일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느님께서 교회에게 올 8월 15일 귀한 기회를 주셨습니다.

우리들 모두 시청광장에 모여 타는 목마름으로 하늘을 향해 호소할 수 있는 까닭입니다. 교회의 여름 행사가 끝났다면 교회들도 이곳 광화문에서 단식하는 이들의 고통을 함께 느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목사와 교우들이 유족들과 의 슬픔에 충분히 공감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교황 오는 일에 기쁨을 느끼면서도 초라한 개신교의 위상을 걱정한다면 8월 15일 함께 모여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크게 소리치며 이 슬픔을 함께 이어 가십시다.

이정배 교수(감신대 종교철학)

이정배 교수(감신대)  ljbae@mt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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