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제 3시(오전 9시)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제 6시(낮 12시)부터 제 9시(오후 3시)까지 어둠이 온 땅을 덮었습니다. 제9시에 예수님이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엘로이 엘로이 라마 사박따니?”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태양이 가장 밝게 빛나고 있어야 할 시간입니다. 그러나 태양이 빛을 잃고 세상은 우주적 흑암 속에 묻혀버렸습니다. 이는 악의 세력, 곧 죽음이 삶을 압도해 버린 상황입니다. 이 시간은 하느님의 침묵, 하느님의 부재만이 실체로 경험될 뿐입니다. 고통을 참다 참다 철저하게 버림받은 예수님은 부르짖었습니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절망입니다. 육체적 아픔보다도 더욱 괴로운 것은 버림받은 고통이었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였던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그 마음은 몸이 찢어지는 아픔보다도 훨씬 더 큰 고통의 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응답 없는 예수님의 외침 속에서 우리는 절망적인 상황을 뚫고 솟아나는 역설적인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우주적 어둠이 승리한 것 같은 절망적 순간이 바로 새로운 시대의 변혁을 탄생시키는 종말적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잠시 후에 예수님이 큰 소리를 지르고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제 9시(오후 3시), 예수님이 죽은 그 시간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두 개로 찢어졌다고 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폭으로 찢어졌다. 그리고 땅이 흔들리고, 바위가 갈라지고,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많은 성도의 몸이 살아났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뒤에,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도성에 들어가서, 많은 사람에게 나타났다.”(27:51-53)고 합니다. 신비와 권세가 추가된 내용입니다.

탈무드에 의하면 성전에는 모두 열세 개의 휘장이 있었으며, 성전의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는 두 개의 휘장이 있었고, 이 사이는 빈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이 두 개의 휘장은 각각 길이가 18m, 폭이 8m 정도 되었으며, 두께는 한 뼘만큼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휘장을 드는 데 300명의 제사장들이 동원되어야 했다고 합니다. 학자들은 찢어진 휘장이 바깥쪽, 즉 성소로 들어가는 곳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성전의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가르는 막입니다. 제사장들조차도 성소까지는 들어갈 있지만 감히 휘장을 지나 지성소로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다만 지성소는 1년 단 한번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모든 백성을 대표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다시 말해 성전의 휘장이란 사람들이 감히 하느님께 다가갈 수 없다는 경계입니다. 하느님과 사람을 가르는 장벽이고, 더불어서 1년에 한 번만이라도 들어갈 수 있는 제사장들의 특권을 뒷받침하는 근거이고, 따라서 제사장들과 백성들을 갈라놓고 차별하는 벽이었습니다.

복음서에서 제 9시(오후 3시)라는 시간을 밝히는 이유는 바로 그 시간이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저녁 희생제사를 드리는 때였기 때문입니다. 제사장들이 있는 자리에서 그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에 제사장들은 이 일의 증인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제사장들이 가장 신성시하고 그들의 특권이라고 여겼던 성전의 휘장이 그들의 눈앞에서 찢어졌습니다.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억압하던 근거인 성전과 희생제사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죽음으로 차별의 벽을 부수고

예수님의 죽음과 성전의 휘장이 찢어졌다는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났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예수님의 죽음이 성전의 휘장을 찢어지게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으로 성전의 휘장을 찢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임 당함으로써 분리의 장, 분단의 막, 차별의 벽을 허물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사람 사이를 갈라지게 하고 차별하는 경계를 무너뜨린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활동이 그랬습니다. 흔히 기적이라고 하는 병 고침, 귀신축출을 통해서 예수님이 한 일은 궁극적으로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무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그랬습니다. 갈릴리 논쟁(2:1-3:6)과 예루살렘 논쟁(11:27-12:37)을 통해서 가르친 것은 전통과 신분으로 굳어진 사회적 차별의 근거를 폐지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경계를 철폐하고,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는 장벽을 허무는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일은 오늘날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 예수님을 닮으려는 사람들, 예수님의 얼굴을 그리려는 사람들, 예수님을 따라서 살려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그런 면에서 사도 바울의 사역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차별 철폐’입니다. 유대지역이 아닌 소아시아를 중심으로 활동을 했던 바울의 편지들은 유대교와의 종교적 충돌, 각 지역마다의 문화적 갈등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입니다. 유대적 전통과 율법을 강조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율법보다는 복음을, 행위의 의보다는 믿음의 의를 강조합니다. 또한 각 지역의 문화적 상황 속에서 대두되는 문제들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와 복음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각 서신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바울이 편지에서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과 방법으로 가장 강조하는 것은 평화입니다. 그 평화는 서로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자기들의 장점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다른 부류의 사람들을 속박하려는 차별의 근원을 포기함으로써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평화는 갈라진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화해시켜서 이루려는 목적이기도 합니다.

갈라디아서는 갈라진 사람들의 극단적인 대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할례를 중심으로 한 유대적 전통과 율법을 강조하는 사람들을 바울은 “거짓 신도”라고 하고, 그들이 전하는 것은 “다른 복음”이기 때문에 그들을 “저주를 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냉혹하게 말하기도 합니다. 할례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선택받은 백성의 육체적인 증표입니다. 교회 안에 유대적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헬라적 그리스도인들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의 논리와 주장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된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를 주장합니다. 극단적으로는 “할례를 가지고 여러분을 선동하는 사람들은, 차라리 자기의 그 지체를 잘라 버리는 것이 좋겠습니다.”(5:12)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교회를 갈라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공동체에 “원수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분쟁과 분열과 파당과 질투”(5:19-21)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할례나 율법 그 자체를 비판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숨은 의도를 비판한 것입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데리고 루스드라에 갈 때에,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들을 생각해서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고 동행한 적이 있습니다(행 16:3). 바울이 할례 그 자체를 비판했다면 그는 이중적인 사람이라고 평가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미 할례를 받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는 사람들에게 똑같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강요한 것은 공동체를 갈라지게 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에 바울은 할례를 강요하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할례가 갈라짐과 차별의 근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차이와 차별, 교회 이야기 속에서

한국교회사 속에서 이러한 차별로 인해 갈라진 교회들이 많습니다. ‘곤당골교회’(서울 중구 을지로1가)는 1893년에 세워졌습니다. 백정인 박성춘(이름이 없었으나 세례를 받으면서 받은 이름)이 교회에 나오자 양반들이 백정과 함께 예배드릴 수 없다고 반발하며 ‘홍문동교회’를 세웠지만, 3년 후인 1898년 다시 두 교회가 합쳐지게 됩니다. 1905년에 예배당이 지금의 인사동으로 옮겨지게 되는데, 그 교회가 승동교회입니다. 그런데 1911년 이 승동교회에서 백정 박성춘이 양반들을 제치고 초대장로가 되면서 당시 양반들이 다시 교회를 나가 지금의 안국동에 지금의 안동교회를 세웠습니다.

조선시대 칠천반(七賤班)은 포졸, 광대, 백정, 고리장(나무 껍질을 벗겨서 장을 만드는 사람), 무당, 기생, 갖바치(동물 가죽으로 신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1893년에 설립된 연동교회에는 갖바치를 비롯한 천민들이 많아서 천민들과 양반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1904년에 첫 장로로 갖바치 출신 고찬익이 선출되었을 때에 양반들이 교회를 나와 자기들만의 양반교회인 ‘묘동교회’를 세웠습니다.

이와는 전혀 다른 예도 있습니다. 남한에 남아 있는 교회 중에서 지금 남아 있는 ㄱ자 교회가 둘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금산교회입니다. 2006년에 역사문화기행을 하면서 선운사와 금산사를 가면서 잠깐 들른 적이 있습니다. 금산리에 있는 용화마을은 전주, 정읍, 김제를 모두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여서 마방(馬房)이 있었습니다. 그 마방의 주인 조덕삼은 그 지역에서 가장 큰 부자였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조덕삼은 1905년에 사랑채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경상남도 남해도라는 섬에서 출생한 이자익은 어려서 고아가 되어 친척집을 전전하다가 금산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자익은 금산리에서 제일 부자 집인 조덕삼의 집에 들어가서 마부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조덕삼은 머슴들에게도 쌀밥을 주었고, 특히 이자익에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도 허락하였다고 합니다. 1906년 5월 30일 조덕삼과 이자익이 함께 세례를 받고, 한 주후에 함께 집사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1년 후 금산교회에서도 한 명의 장로를 뽑게 되었습니다. 당시 장로는 실제적으로 설교도 하고, 교회를 이끌어가는 총책임자였습니다.

그런데 상전이고, 나이도 많고, 인품도 흠잡을 데 없는 조덕삼을 제치고 이자익이 선출되었습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앞에서 조덕삼은 “우리 금산교회 교인들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저희 집에서 일하고 있는 이자익 영수는 저보다 신앙의 열의가 대다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조덕삼은 자신의 머슴이었던 이자익이 먼저 장로가 되었지만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그뿐만 아니라 이자익을 평양신학교로 보내 신학공부를 할 수 있게 지원하였습니다. 이자익이 목사가 되자, 1915년에 이자익을 금산교회로 모셔 당회장으로 깍듯이 대접했다고 합니다.

지금 금산교회는 1908년 4월 4일에 헌당된 모습 그대로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초창기 예배당의 모습은 ㄱ자로 된 곳이 많았습니다. 교회에서 남녀를 구분해서 앉히기 위해서 구조를 ㄱ자로 하거나 예배당 가운데를 천으로 가렸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교회에서 남녀를 차별하기 위한 것이기 보다는 오히려 남여차별에 반대하는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당시에 한 자리에 함께 앉을 수 없는 사람들이 함께 앉아서 예배드리기 위한 방편이었기 때문입니다.

 
분열과 차별을 넘어서

히브리서에는 이 사건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서 담대하게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휘장을 뚫고 우리에게 새로운 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휘장은 곧 그의 육체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집을 다스리시는 위대한 제사장이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참된 마음으로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는 마음에다 예수의 피를 뿌려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맑은 물로 몸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또 우리에게 약속하신 분은 신실하시니, 우리는 흔들리지 말고, 우리가 고백하는 그 소망을 굳게 지킵시다. 그리고 서로 마음을 써서 사랑과 선한 일을 하도록 격려합시다.”(10:19-24)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임 당함으로써 성전의 휘장을 찢은 것은 참된 마음으로 하느님께 나아가게 하시 위함이고, 서로 격려하면서 사랑으로 선한 일을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날 눈에 보이는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고 하면서 신성시합니다. 강대상에 함부로 올라가지도 못하게 하고, 예배 외에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그 곳에서 사람들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어떤 일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비판한 궁극적인 목적을 생각해 봅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를 받거나 안 받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 사랑을 통하여 일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입니다.)”(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를 받거나 안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 중요합니다.”(6:15)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3:28)

사순절을 맞아 매주 수요일마다 ‘생명평화 백배서원’을 하였습니다. 절하면서 명상하다가 보면 생명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생명에 대한 묵상은 예수님의 죽음과 오늘 우리의 삶과 생명이 어떤 관계인지를 깨닫는 데에 좋은 근거를 제시합니다.

“생명이란? 그물의 그물코처럼 온 우주가 참여하는 총체적 관계로 이루어진 존재가 지금 여기 내 생명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상대들과의 조화로운 관계의 조건에 따라 온전히 살아 있는 존재가 내 생명입니다. 분리 독립, 고정 불변하지 않고 총체적 관계의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가 내 생명입니다. 너이면서 나이고 나이면서 너이며, 우주가 곧 나이고 내가 곧 우주인 영원과 무한의 존재가 내 생명입니다.”

이병일 목사(강남향린교회)

이병일 위원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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