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군인들은 채찍에 맞아 만신창이가 된 예수님을 끌고 우리네 인생 같은 시장바닥에 난 십자가의 길을 따라 골고다 언덕에 도착합니다. 골고다(Golgotha)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된 예루살렘 교외의 언덕입니다. 현재 그 위치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골고다(히브리어)는 라틴어로 칼바리(Calvary)라고 하며 해골을 뜻합니다. 그 장소는 예로부터 공개 처형장이었다고 하며, 그 이름의 유래는 언덕의 지형이 두개골과 비슷하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또는 근처에 묘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그들은 몰약을 탄 포도주를 예수님에게 먹이려 했으나, 예수님은 거절하였습니다. 몰약의 향기는 청정제로서도 귀중하게 여겼으며, 죽은 시체를 썩지 않고 보존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몰약을 탄 포도주는 약간의 진통작용이 있다고 하여, 유대인들은 사형당하는 사람들에게 정신이 혼미해져서 고통을 덜 느끼도록 하기 위하여 포도주에 유향을 섞어주었습니다(탈무드 Sanh. 43a; 미쉬나 Sem. 2:9). 그러나 마태에 의하면, 이러한 관습을 조롱의 뜻이 있었습니다. 마가는 예수님이 혼미한 상태에서 죽지 않기 위해 마시지 않았다고 합니다(시편 69:21; 애가 3:15).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의 옷을 제비뽑기를 하여 나누어 가졌습니다. 피에 절은 천 조각이라도 차지하려는 로마 군인들의 행동이 안쓰럽기만 합니다. 이제 예수님은 아무 것도 남김없이 빼앗겼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 그 모습 그대로 처형의 도구인 십자가 위에 매달려 있습니다. 많은 무리들 앞에서 하느님 나라를 가르치고,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고치시고, 대적하는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그들의 잘못을 폭로하던 모습은 기진맥진한 몸으로 고통을 애써 참으려는 모습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이 장면에서 초점은 제비를 뽑아 옷을 나누는 로마 군인들보다는 모든 것을 빼앗긴 예수님에게 있어야 합니다. 이제 예수님은 더 이상 빼앗길 것이 없습니다. 오직 그의 목숨뿐,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자기의 생명뿐입니다. 삶의 마지막에 자기의 목숨을 억지로 빼앗으려 하는 사람들의 의도를 거슬러, 예수님은 자기의 목숨을 기꺼이 내어놓습니다. 자기와 함께 했던 사람들을 위해서, 하느님의 뜻이 펼쳐진 하느님 나라의 실현을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바칩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던 사람들과 함께,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꺼이 죽음의 형틀인 십자가 위에서 자기를 희생하였습니다.

십자가 처형은 페르샤 사람들이 최초로 사용했는데, 본래 저항하는 외국인들의 처형방식이었습니다. 로마 시대에는 십자가형이 노예나 외국인, 또는 반란을 일으킨 자 등에 대한 처형방식이었습니다. 로마의 십자가형은 탈주, 비밀 폭로, 내란선동, 살인, 반역 등의 중죄에만 적용되었는데, 십자가형이 정치범을 다스리는 형이 되자 십자가형은 로마변방의 속주들에서 가장 널리 행해졌습니다. 십자가 처형은 “로마의 평화”(Pax Romana)를 유지하는 이상적인 수단으로 쓰였습니다.

본래 로마에서는 형을 내리고 집행하기까지 이틀간의 기간을 두었으나 예수님의 경우에는 바로 집행을 하였습니다. 모든 일이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마치 인혁당 재건위 조작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지 8시간 만에 죽임당한 8명의 열사들의 죽임처럼.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린 시간이 아침 9시(제 3시)라고 분명히 밝힌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받은 재판뿐만 아니라 처형까지도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것을 드러내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 예수님의 죽음을 시간대별로 정리하는 목적이어야 합니다.

십자가형을 받은 사람은 네 명의 로마 군인의 경계를 받으며 형장을 향해 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는 죄목이 적힌 흰색 판을 들고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수직으로 되어서 땅에 고정시키도록 되어 있는 십자가의 세로대(stipes) 부분은 형장에 미리 설치되어 있고, 죄수는 그의 팔을 고정시킬 가로대(patibulum)를 매고 갔습니다. 죄수 자신이 직접 이것을 매고 가도록 하였습니다. 십자가의 형태는 X자 형(성 안드레 십자가), T자 형, ✝자 형(로마의 십자가) 등이 있는데,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패가 십자가 위에 달려있었기 때문에, 로마 십자가와 동일시하였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예수님을 상징하는 모양이나 문자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상징은 물론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삶의 정점을 이루는 십자가 사건은 자기를 죽임으로써 인류를 구원하는 희생적인 사랑을 말하고, 인간과 하느님을 화해시키기 위한 자기희생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기독교 하면 십자가가 떠오르고 교회마다 어떤 식으로든 십자가를 내걸고 있습니다.

현재 가장 잘 알려진 상징은 십자가이지만 처음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물고기가 그리스도인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물고기가 예수님의 상징으로 사용된 이유는, 물고기를 희랍어로 Ιχθυς라고 하는데 그 스펠링 하나하나에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Ἰησούς, χριστὸς, θεού υἱός, Σωτήρ)라는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사람들은 로마의 박해를 피해 카타콤에서 예배하기 위해서는 물고기가 지시하는 방향을 따라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임을 확인하기 위해서 서로 물고기를 그려서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 지금까지 주로 사용하는 상징인 Χ(키)Ρ(로)는 χριστὸς의 처음 두 글자를 겹쳐놓은 것으로 그리스도(메시아)를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교회의 말씀상을 받치고 있는 ΑΩ는 요한계시록 1:8을 근거로 그리스어 알파벳의 처음과 마지막 글자를 따서 만든 것입니다. ΑΩ는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어 자기의 피로 우리의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여 주셨고, 우리로 하여금 나라가 되게 하시어 하느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예수님이 지금이나 이전이나 앞으로도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임을 고백하는 상징입니다.

십자가 중에서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형태는 로마 십자가라고도 하는 라틴십자가(the Latin Cross)입니다. 로마 십자가는 윗부분과 좌우 두 팔의 길이가 같고 아래 부분은 길이가 두 배이다. 카톨릭에서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강조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crucifix)을 사용하고, 동방정교회에서는 예수님의 승천을 강조하여 십자가에 화려한 장식을 합니다. 개신교에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강조하기 위해 비어있는 십자가(cross)를 사용합니다.

카톨릭에서는 교회력 중에서 사순절, 고난절을 중요시하고, 개신교에서는 부활절을 크게 지킵니다. 카톨릭에서 주로 사용하는 십자가 위에 “INRI”라는 죄목이 적힌 패가 달려 있습니다. I. N. R. I.는 라틴어 이니셜인데 “유대인의 왕, 나자렛 예수”(IESUS NAZARENUS REX IUDAEORUM)를 말합니다. 세 복음서에는 “유대인의 왕”으로 되어 있고, 요한복음서에는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목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합니다. 복음서에서 대사제들과 장로들이 예수님을 잡아 죽이기 위해 고소하는 근거로 “하느님을 모독했다”, “성전을 파괴하려 했다”, “스스로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했다”, “스스로 그리스도[메시야]라고 했다” 등등입니다. 그 중에서 네 복음서가 공통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은 “유다인의 왕”으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유대인의 왕”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곳은 모두가 예수님의 재판과 처형에 관련된 이야기에 있습니다. 유일한 예외는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이 아기였을 때에 동방의 박사들이 예수님의 찾아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있느냐?” 하면서 찾는 장면에 나옵니다. 당시에 유대인의 왕으로 있던 헤롯과 온 예루살렘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당황하였다고 합니다. 당황을 넘어서 화가 났을 것입니다.

극악무도한 학살자 헤롯은 “유대인의 왕”인 자기의 자리를 아기 예수님이 위협한다고 하면서 어린 아기들을 죽였습니다. 그 아기들은 예수님을 대신해서 죽임 당했고, 예수님은 그들의 죽음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헤롯은 이 학살을 통해 자기 왕권이 정통성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견제하고 자기의 왕권을 확실히 했습니다. 헤롯은 자기가 하느님의 뜻에 의해 왕이 되었으며, 백성이 오랫동안 기다리던 평화와 번영을 이룩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마치 현재 남한의 대통령인 누구처럼. 헤롯은 성전 재건이라는 경건한 행동이 하느님이 자신의 왕국에 베푼 은혜에 충실하게 보답하는 영예로운 일이라고 떠벌렸습니다.

심지어 헤롯은 자신의 합법성을 주장하기 위해 자신이 메시아라는 주장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헤롯은 말년에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되었던 두 아들과 아내를 처형했습니다. 또한 죽기 직전에는 유대의 모든 지역에서 뛰어난 이들을 잡아들여 경기장에 가둬놓게 한 뒤, 자기가 죽을 때 이들을 모조리 죽여 “온 유대와 모든 집안이 좋건 싫건 나를 위해 울게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왕”이라는 칭호는 헤롯에 의해 폭군의 전형으로 비쳐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유다인의 왕”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한 음모에서 나온 터무니없는 누명에 불과합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할 때, “네가 유다인의 왕이냐?” 하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은 너의 말이다”라고 대답함으로써 빌라도와 대사제들의 음모를 폭로합니다. 즉 그것은 너희들이 나를 죽이기 위해 나에게 씌운 누명이라는 것입니다. 계속되는 빌라도의 심문에 대답할 의사도 이유도 없다는 듯이 그 물음을 묵살하고 침묵합니다. 결국 사형은 언도되고 로마 군인들에 의해 예수님은 조롱받습니다. 가시관과 갈대(부들)과 자색 옷으로 나약한 왕처럼 꾸며놓고 조롱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INRI를 예수님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의미를 정확하게 해야 합니다. INRI가 예수님의 상징이 되려면, 그 의미는 권력에 의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어간 사람 예수님의 상징이어야 합니다. 예루살렘의 종교권력자들과 로마의 정치 권력자들은 자기들의 지배를 폭로하는 예수님이 그들의 눈에 가시 같았는데, 그 예수를 죽이기 위해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목을 억지로 덮어씌웠기 때문입니다.

언제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으로 살았습니까? 예수님의 삶이 계절마다 궁을 옮겨 다니는 헤롯왕의 화려한 생활에 비교나 되겠습니까?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 헤롯처럼 백성들의 강제노동으로 궁전과 성전과 도시를 건설했습니까? 예수님이 자기의 권력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학살하였습니까? 예수님이 억지로 사람들을 끌어다가 자기의 말(주장, 의견)에 굴복시키려 했습니까?

지금도 이러한 음모와 누명은 여전히 계속되고 우리의 가까운 곳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힘 있는 자들의 권력놀음에 희생된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정권을 쥐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언론재벌, 그리고 무엇을 지키려 하는지도 불분명한 보수세력 등, 이 나라의 힘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싸움판에 희생양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진리는 밝혀질 것입니다.

이처럼 “유다인의 왕”이라는 죄목은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살았던 예수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죄목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유다인의 왕”으로, “INRI”로 고백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INRI를 예수님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것은, 그 속에 권력에 의하여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리고, 그렇게 누명을 써서 고통과 죽임을 당한 생명의 권리를 회복하고, 진상을 규명하려는 의지와 실천 속에서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2000년의 역사를 통해서 예수님을 죽이기 위한 음모에서 나온 “유대인의 왕”을 왜곡해서 제왕의 모습으로, 승리자의 모습으로 바꾸었습니다. 중세 로마교회는 예수님을 “왕 중의 왕”으로, “만왕의 왕”으로 묘사했습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로마교황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교묘한 술책의 산물입니다. 교황의 통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기 위해 예수님을 “만왕의 왕”으로 부각시켰고, 교황 자신은 바로 그 예수님의 대리자로 행세했습니다. 기독교가 사회의 중심적인 위치에 놓이게 되면서 예수님은 왕으로 추앙을 받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의”라는 한정어가 “만왕의”로 대치되면서 기독교는 영광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반대로 우리는 예수님을 왕으로 부르는 것조차 꺼려합니다. 찬송가에 예수님을 왕으로 부르는 대목이 나오면 “예수”나 “주님”으로 바꾸어 부릅니다. 하느님 나라(왕국)를 하느님의 통치로 바꾸어 말하기도 합니다. “주”(Kurios)라고 하는 것도 모든 사람들을 종으로 취급하는 의미에서 왕과 다를 바는 없습니다. 호칭에서 오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어떻게 부르든 그 이름의 뜻과 의미를 얼마나 우리의 몸과 마음에 새기고 따르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만왕의 왕”으로 부르는 것은 또다시 예수님을 음해하는 것이며, 새로운 누명을 씌워 십자가에 못 박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왕 중의 왕”으로 부르면서 스스로 그 왕의 반열에 끼어 들어가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모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가장 충실하게 따른다고 하는 기독교에서 이러한 일을 너무나 흔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가장 열심히 따른다고 하는 교회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자기를 높여 스스로 왕이 되려고 행세합니다.

혹시라도 우리의 말과 행동에서도 이러한 일이 없는지 살펴봅시다. 예수님의 이름을 단지 권력의 획득이나 경제적 부를 얻는 부적으로 전락시키는 것, 예수님의 가르침을 편안한 삶이나 대학진학을 위한 주문으로 치부하는 것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 예수님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억울한 누명을 씌우거나 매도하는 것 또한 권력에 의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어간 사람의 상징인 예수님을 또다시 죽이는 행위입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기억하고, 자신을 돌아보면서 참회와 경건(영성훈련)에 힘쓰며,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되새겨 이 땅에서 실천하려는 절기입니다. 언제나 그래야 하겠지만 특히 이 기간 동안에 예수님의 삶과 죽음을 기억하면서 “온 인류를 섬기고 생명을 나누는 예수님”의 모습을 닮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특히 힘 있는 자들의 싸움과 음모로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 군대에서, 비행기 안에서, 감옥에서 절규하다 죽어간 사람들, 지금도 그러한 누명 때문에 명예와 생존의 위협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그 사건들의 진상이 밝혀지고, 죽은 이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더 이상 무고한 생명의 위협이나 억울한 죽음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예수님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길입니다.

이병일 목사(강남향린교회)

이병일 위원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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