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 선 예수님

예수님과 제자들은 이제 겟세마네에 이르렀습니다. 겟세마네(Gethsemane)는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이 건너다 보이는 곳에 있는데, “기름을 짠다”, “기름짜는 틀”이라는 뜻입니다.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은 죽음을 앞두고 극적이고 실존적인 고민을 보여줍니다. 겟세마네라는 지명의 의미는 이곳에서 예수님이 두려움과 괴로움에 싸여서 온 몸의 체액을 다 쏟을 정도로 기도하는 모습과 서로 연결됩니다. 열매에서 기름을 짜듯이 몸의 체액을 다 쏟을 정도로 치열하게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땀이 핏방울이 되어 떨어졌다고 합니다.

마가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을 죽이려는 적대자들의 음모가 무르익고(14:1-2), 예수님의 죽음과 장례를 예시하는 장면이 이어집니다(14:3-9, 22-25). 그 죽음이 자연사가 아니고 정치적인 음모와 덫에 걸린 지도자의 갑작스런 죽음의 분위기는 극적인 긴장감을 더해줍니다. 이런 상황에서 측근들(제자들)이 배반하고 / 도망하고 / 부인하리라는 예고는 예수님의 고독한 실존을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은 자기에게 닥친 죽음의 운명과 치열한 싸움을 합니다. 우리는 겟세마네 이야기에서 우선 죽음 앞에선 예수님의 몸과 마음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죽음은 죽어가는 과정으로 체험됩니다. 죽음이라는 사실뿐 아니라 그 사실을 자신의 내면 속에 의식화해 나가는 과정도 결국은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고달픈 일입니다. 죽음이라는 현실 앞에서 예수님의 몸과 마음은 ‘죽음 때문에 죽을 지경이었다’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의 표현대로 예수님은 “매우 놀라며(두려워하며)[ἐκθαμβέω] 괴로워하기[ἀδημονέω] 시작합니다.” “너무 서럽고 슬퍼서[περίλυπος] 목숨이 죽을 지경이다”라고 말하면서 제자들에게 깨어있으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땅에 엎드려서 기도하는 모습은 마치 실패하고 무너져서 파멸에 이르는[πίπτω] 것같이 보입니다.

예수님이 한 그 기도는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자기에게서 사라지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이 잔”은 고통과 고난의 상징이며(에스 23:32-34), 운명을 나타내기도 합니다(이사 51:17, 22; 애가 4:21; 시편 11:6). 죽음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겪게 될 고난의 잔입니다. “아바, 아버지, 당신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나에게서 이 잔을 제거해 주십시오. 그러나 내가 바라는 대로가 아니라 당신이 바라는 대로 하십시오.”(36절) 이 기도는 한 마디로 “나는 더 살고 싶다.”는 생존의 본능뿐 아니라 자신이 가려는 길에서 하느님 나라는 선포하고 인류를 구원하는 방법이 죽음만이 유일한 선택인지를 확인하려는 희원입니다. 다른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내가 꼭 죽어야만 하는지를 확인하고 싶은 열망입니다.

겟세마네의 예수님은 죽음에 초연하는 달관의 자세를 보여 주기보다는 자기 현실의 매순간을 치열하게 의식하면서 죽음의 의미와 그 너머의 지평을 희망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그러면서도 담백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생을 마감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겟세마네의 예수님은 마지막 한 순간까지도 자기의 생명을 고귀하게 보듬으며 살아내고자 하는 인간의 처절한 안간힘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엄을 지닌 채 죽음을 받아들일 줄 아는 비범한 대립적 가치를 따져보게 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하는 물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올해처럼 죽음에 대해서 남한의 온 국민이 삶과 죽음이라는 공통의 화재로 생각하고, 기도하고, 행동한 적은 없었습니다. 연초에 용산 남일당에서 다섯 명의 철거민(이성수 윤용헌 이상림 양회성 한대성)과 한 명의 경찰이 죽임을 당했고,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이 다른 세상으로 갔습니다. 또한 강희남 목사는 “지금은 민중 주체의 시대다. 4.19와 6월 민중항쟁을 보라. 민중이 아니면 나라를 바로잡을 주체가 없다. 제2의 6월 민중항쟁으로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을 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연예인들의 사회적 죽음이 있었습니다.

죽음의 해, 분노의 해, 원한의 해라고 할 수 있는 2009년이 이제 보름 정도 남았습니다. 한 해를 마감하면서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에 있어서도 삶과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살아 있음에 감사하면서 삶의 한 자락 한 자락을 의미 있게 살아 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물음은 죽음의 의미를 빛나게 하고, ‘어떻게 죽었느냐’ 하는 물음은 삶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제자들 앞에 선 예수님

겟세마네 이야기에서 죽음 앞에 선 예수님의 모습과 함께 제자들 앞에 선 예수님의 모습을 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슬픔으로 죽을 지경인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함께 깨어 기도하기를 당부합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깨어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내가 너무 슬퍼서 나의 생명이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머물러서 깨어 있어라.”(34절) “시몬아, 자느냐? 너는 한 시간이라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너희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라. 마음은 기꺼이 하려는데 육신이 약하구나!”(37절)

우리는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몸을 맘대로 움직일 수 없을 때, 육체의 한계를 느낄 때 하게 되는 말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절절히 깨닫고 포기할 때에 체념하면서 하게 되는 말입니다. 배드민턴을 칠 때에 좁은 코트 안에서 셔틀콕이 넘어오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도 몸이 따라가지 못합니다. 산행을 하면서 이 모 집사님이 “눈이 게으르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실제로 가야할 봉우리를 보면 까마득히 멀게 보입니다. 그러나 한 발 두 발 걷다 보면 어느새 그곳에 와 있습니다. 그리고 지나 온 길을 보면 아까 내가 서 있던 그 곳이 저 멀리 물러나 있습니다. 비록 몸이 약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가다보면 갈 수 있고, 한 가지 한 가지 하다보면 할 수 있습니다.

죽음 앞에 선 예수님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잠에 빠져있습니다.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오신 예수님께 제자들은 아무 말(어떤 변명)도 하지 못합니다. 이 때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측은하게 여기며 말합니다. “이제부터는 자고 쉬어라. 충분하다. 시간이 왔다. 보라, 사람의 아들이 죄인들의 손에 넘어간다. 일어나서 데려와라. 보아라, 나를 넘겨줄 자가 가까이 왔다.”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순간, 연약한 육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 한계의 현실을 껴안고 기도로써 자신의 운명과 싸워야 하는 실존에 동참한 예수님은 제자들의 한계 또한 동정하고 이해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니까, 끝내는 부활할 수 있으니까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였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서는 겟세마네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세 번의 간곡한 당부의 말에도 불구하고 잠들어버린 제자들, 스승은 죽음의 고통을 넘어서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데 나 몰라라 하면서 눈을 뜨지 못하는 제자들을 언제나 그랬듯이 연민이 가득한 마음으로 품어줍니다.

아마도 미련하고 부족한 저 같았으면, ‘너희가 이렇게 하고도 내 제자라고 말할 수 있겠냐? 너희들과 함께 있으면서 수없이 말했건만 고작 이렇게밖에 못하겠냐? 나를 스승이라고 그리스도라고 하면서 따를 때는 언제고 이토록 내 마음을 몰라주느냐?’ 하면서 야단을 쳤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잘못한 것 같을 때, 야단치면서 많이 하는 말이 ‘한 번 말할 때 들어라.’ ‘좋은 말로 할 때 해라.’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와 함께 있던 제자들, 먹을 것이 없을 때 함께 굶주렸던 제자들, 머리 둘 곳이 없어서 노숙할 때에도 함께 있었던 제자들, 아무리 가르쳐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 싸웠지만 하느님 나라를 향한 꿈을 함께 나누던 제자들, 모두가 배반하고 도망하고 부인하겠지만 결국에는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에서 다시 만날 제자들, 끝내는 자기의 이름 때문에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자기와 똑같은 운명에 처할 제자들을 이해하면서 ‘이제부터는 자고 쉬어라.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지난 주일, 교회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음이 무겁고 허전했습니다. 지난 주중에 급체를 하면서 며칠 동안 쉬면서 계속된 화두였고, 몇 년 전부터 쌓여서 제 마음을 누르는 무엇인가의 구체적인 실마리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것은 오래 전부터 습관화된 일상 속에 있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내려놓지 못했던 것입니다. 나는 옳고 정당하다고 생각하면서 남을 향하던 마음이 내 마음을 닫히게 하였습니다. 내 말이 내 마음을 상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잠을 뒤척이며 고민을 합니다. 다음날 새벽에 명상하면서 다짐을 합니다. 비난, 비판, 핀잔, 야단, 정죄 등의 마음을 품고 그러한 말을 입 밖으로 쏟아내는 것을 단(斷)하기로 하였습니다. 뉴스를 보고 들으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여러 가지로 부딪히면서 했던 수많은 비난과 핀잔을 단(斷)하기로 하였습니다. 나의 아이들로부터 시작해서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 이르기까지 그들을 향하던 수많은 야단과 정죄들을 단(斷)하기로 하였습니다. 노력하는 만큼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애쓰는 만큼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 감사하게 됩니다. 옳고 정당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의 의미가 새롭게 보이게 됩니다. 따듯한 마음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 나라를 향한 공동체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이루는 하느님 나라를 향한 공동체에서 제자들은 스승에 대한 많은 오해나 몰이해뿐만 아니라 배신, 도망, 부인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받아들이고 끝까지 가르쳤습니다. 실망하고 포기하지 않고, 인간의 약함을 인정하고, 그 약함으로 인해 지친 제자들을 측은하게 여기고 동정하였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눈앞에 다가왔을 때에도 ‘이제부터는 자고 쉬어라. 충분하다.’고 말하면서 제자들을 위로합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모습이 오늘 갈갈이 찢겨진 우리사회의 상황뿐만 아니라 가정과 교회를 비롯하여 내가 속한 모든 공동체 속에서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그대로 간직한 제자들의 실패, 한 번이 아니라 반복되는 실패의 경험은 그들을 더욱 굳게 연단하였습니다. 거룩한 영의 임재로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들의 오해를 모두 깨달았을 때, 그들은 비로소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었습니다. 아픔과 절망의 순간, 위기와 와해의 시간을 이기고 극복한 제자들에 의해 예수님의 꿈을 향한 발걸음이 우리 앞에도 와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만들면서 걸어갈 그 길은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아이들 또한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겟세마네 이야기는 예수님의 신적인 속성이 아니라 인간적인 나약함을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인간의 한계에서 맛볼 수 있는 처절한 아픔을 극복하고 초월하면서 승화된 인간성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겟세마네 이야기에서 우리는 고난이 고통에 머물지 않고, 절망이 희망을 갉아먹지 못하고, 나약함이 포기로 이어지지 않는 가능성과 희망이 바로 연약하고 초라한 인간 속에 잠재해 있음을 느끼고 깨닫습니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고난과 절망의 순간은 나를 더욱 자라게 하는 거름이 됩니다.

안젤름 그륀의《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중에서 “꽃병이 깨졌을 때”라는 글입니다. “산산조각 난 꽃병 자체가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신을 꽃병과 동일시하여 꽃병이 깨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온 마음으로 꽃병에 집착하는 것이 상처를 입힌다.” 사람도 꽃병처럼 깨질 수 있습니다. 작은 상처 하나에 어느 순간 산산조각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대부분 땅을 치며 신음하고 울부짖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이 꽃병과 전혀 다른 것이 있습니다. 꽃병은 한번 깨지면 다시는 못쓰게 되지만 사람은 부딪히고 깨지고 산산조각나면서 깊이 영글고 익어갑니다.

이병일 목사(강남향린교회)

이병일 위원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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