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그러한 자연과 인간의 세계

올해 봄에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어느 때보다도 시끄럽습니다. 이명박 정부에 참여한 사람들의 모습과 어의없는 정책으로 그야말로 미칠 것같은 날들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그러한 자연은 어느 때보다도 맑고 푸릅니다. 황사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아서인지 산은 녹음을 짙게 드리우고 하늘은 높고 푸릅니다. 우리를 둘러싼 나무의 초록과 우리를 덮고 있는 맑은 하늘의 푸름은 인간들의 욕심을 한껏 반영하여 생명과 자연을 파괴하려는 정책들을 비웃는 듯합니다.

초록색은 눈에 좋은 대표적인 색입니다. 심리적 안정 효과가 있는 색으로 시각적으로 해독작용을 해줍니다. 피로감을 덜 느끼는 색이라 학교나 병원 등 눈에 안정감을 줘야하는 공간에서 많이 사용됩니다. 파란색 또한 좋은 색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생체병리학자들은 파란색에 두통 및 피로감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고, 눈이 몹시 피곤하고 혈압이 올라갈 때 파란색을 보면 진정작용을 얻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푸른 나무들과 하늘을 보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늘을 잃어버린, 하늘을 잊고 있는 세상

‘하늘’을 화두로 삼아 명상했습니다. 많은 물음과 생각이 지나갑니다. “하늘의 색은 수시로 변한다.” “어디부터 하늘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늘을 하느님이라고 할 수 있다면, 어떤 이유에서 그런가?” “우리에게 있어서 하늘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나는 얼마나 자주 하늘을 보면서 살고 있는가?” “하늘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새 하늘과 새 땅은 어떻게 시작될까?”

예로부터 하늘은 신의 자리 혹은 신을 상징하는 대상이었습니다. 성서에서도 하늘은 자연이면서도 하느님을 대신해서 하느님을 나타내는 말이었고, 그것은 우리의 전통적인 사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고한 신의 이름을 하늘님, 하느님이라고 하는 것도 바로 그 생각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어떤 절대자로부터 받은 일을 천명(天命)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의 모습을 표현하는 말 중에 하나를 든다면, ‘하늘을 잃어버린, 하늘을 잊어버린’ 세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하늘을 볼 시간을 갖지 못합니다. 어떤 날에는 오늘의 날씨가 어떠했는지도 모르고 지나갈 때도 있을 정도로 하늘을 쳐다볼 여유가 없는 것이 우리네 삶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존재를 잃어버리고 살아갑니다.

또한 은유와 상징으로서의 하늘을 잊어버렸습니다. 하느님의 존재가 없는 것처럼, 더 이상 하느님의 도움이 필요 없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아니면 전혀 다른 하느님을 상정하고 거기에 매달리며 복을 빌거나 죄 용서를 받겠다고 애걸합니다.

훈민정음을 만들 때 모음이 기본이 된 것은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입니다. 천은 ‘∙’, 지는 ‘ㅡ’, 인은 ‘ㅣ’로 형상화 됩니다. 모든 모음은 하늘이 땅을 만나거나(ㅗ, ㅛ, ㅜ, ㅠ), 하늘이 사람을 만나거나(ㅏ, ㅑ, ㅓ, ㅕ), 땅이 사람을 만나거나(ㅢ) 또는 셋이 서로 만나서(ㅚ, ㅟ)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의 음가가 없어지고 글자도 없어졌습니다. 은유적으로 말하면, 하늘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가 없어지면서 개신교에서는 하느님이냐 하나님이냐 하는 신의 이름에 대하 논쟁이 일어났고, 어떤 이름을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패가 갈라지기도 했습니다.

하늘을 잃어버리고 하늘을 잊고 사는 것은 단순히 하늘을 쳐다볼 여유를 잃어버린 것뿐만 아니라, 순간순간의 삶 속에서 하느님 없이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Matin Mater를 평하기를 “주일날에 교회 의자가 너무 많이 실제적 무신론자들로 채워져 있다. 그들은 일주일 내내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오다가 주일날에만 신자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온 실제 무신론자들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현대인의 이러한 삶의 모습은 본회퍼가 “비종교화”라는 말로 비판한 것과 같습니다.

본회퍼는 하느님의 통치 영역을 점점 축소해버리고, 자기에게 필요한 부분만을 하느님의 영역으로 남겨두는 모습을 “비종교화”라고 합니다. 본회퍼는 1944년 7월 마지막 희망이었던 히틀러 암살 계획마저 실패하게 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테겔의 군사형무소에서 “하나님은 누구인가?”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주어진 확신은 인간에게 삶을 허락한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종교적 작업가설과 같은 하나님 없이 살도록 요구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곧 우리를 버리신 분이며,(막 15:34)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없이 산다.”(WEN 394)는 것입니다. 이 역설적 수수께끼는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하느님에 대한 이해만큼이나 복잡 미묘합니다.

이와 같은 사상은 본회퍼가 감옥에서 남긴 <그리스도인과 이교도>라는 시 속에서 잘 드러납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께 간다. / 그들은 도움을 간청하고 행복과 빵을 구하고, / 질병,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을 구한다. / 이와 같은 것들은 그리스도인과 이교도들 모두가 하는 일이다. // 사람들은 자신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께 간다. / 그리고 가난하고 모욕당하며, 집과 빵도 가지지 못한 그를 발견하고, / 죄와 약함과 죽음에 삼킨 그를 바라본다. / 그리스도인은 그의 고난 속에서 하나님 곁에 서 있다.”(WEN 382)

새 하늘을 찾아서

그렇다면 우리가 잃어버리고 잊고 사는 하늘, 하느님을 새롭게 발견하고 찾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이 될 때에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보아라,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 4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집에 거하는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하느님은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시고, 그들은 죽음이나 슬픔이나 울부짖음이나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때의 상황을 예언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 내용들을 현재로부터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 내용들은 현재의 간절한 염원과 희망을 암시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날’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기 위해서 찾아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직접 모든 이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시고, 죽음과 슬픔과 울부짖음과 고통을 사라지게 하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하늘의 경계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까? 어디부터 하늘입니까? <우리의 키 이상이면 하늘인가요? 땅으로부터 몇 Km이상이 떨어지면 하늘이라고 할 수 있나요? 아니면 대기권 밖을 하늘이라고 할까요?> 하늘은 시작되는 점이 없습니다. 내가 숨 쉬고 활동하는 이곳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내가 숨을 쉴 때에 단순한 공기를 마시는 것을 넘어서 하늘을 마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바로 나로부터 시작됩니다. 나의 숨은 나를 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곳에 하느님은 언제나 그곳에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단지 우리가 하느님을 잊고 잃어버리고 살았던 것입니다. 너무나 가까이 계시기에 나의 목숨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함에도 거짓된 나에 사로잡혀서 너무 멀어져 버렸습니다. 하늘은 저 멀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를 둘러싸고 있으며, 내 속에도 있는 것입니다.

높고 넓은 하늘을 보면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을 찾기 위해 하늘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찾게 됩니다. 하늘을 소유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늘을 소유했다고 하는 그 순간에 사람은 숨이 막혀서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늘은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밥을 먹는 것은 하늘로부터 온 생명의 양식인 예수님의 몸을 먹는 일이며, 숨을 쉬는 것은 바로 그 하늘을 받아들이고 내 놓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몸의 가장 중요한 생명활동인 먹고 숨 쉴 때마다 우리는 예수님을 먹고 하느님을 쉬는 것입니다.

새 하늘을 찾는 것은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고, 나뿐만 아니라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과 생명들의 죽음과 슬픔과 울부짖음과 고통을 사라지게 하는 것입니다. 나와 남을 하나 되게 하는 것이 바로 하늘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숨과 남의 숨을 연결하는 것은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하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백성은 자기 혼자만의 삶을 살지 않습니다. 나와 하느님으로 연결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 모든 생명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배우고 깨닫습니다.

이병일 위원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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