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의환향(錦衣還鄕)?”(에스라 3:8-13)

음력으로 새해 첫 주일입니다. 새해 복 많이 지으시고, 덕 많이 쌓아서, 서로 나누는 한 해가 되기를 빕니다. 명절(설이나 추석)이면 생각나는 말들이 있습니다. 여자는 여자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느끼는 명절 증후군, 풍성한 먹을거리, 기독교인들을 갈등하게 하는 차례, 많은 교통량으로 힘들게 가는 고향 길 등입니다. 저도 고향에 다녀오면서, 그리고 유명인사의 고향방문 소식을 보면서 머리에 맴돌며 떠나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금의환향”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객지에 나가서 돈 벌던 형님들이 집에 오는 것을 은근히 기다린 적도 있었습니다. 금의환향에서 ‘금의(錦衣)’는 화려하게 수놓은 비단옷이라는 뜻인데, 옛날에는 왕이나 고관들이 입던 옷으로 출세의 상징이었습니다. 반면 평민들은 흰색 베옷을 입었는데, 이것은 ‘포의(布衣)’라 하였습니다. 따라서 비단옷을 입고 고향에 돌아간다는 뜻은 출세하여 고향을 찾는 것을 뜻합니다. 성공을 하거나 뜻한 바를 이루고 환영을 받으며 고향을 방문하거나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예전에는 깊은 산골이나 도시문명과 멀리 떨어진 시골에서 대학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마을 경사였습니다. 게다가 출세 관문이라고 생각했던 고시(사시, 행시 등)에 합격이라도 하면,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 일인 것처럼 들뜨고 설레며 함께 환호하던 적도 있었습니다. 요즘에는 주로 운동선수들이 큰 성과를 올리고 돌아올 때, 정치인들이 높은 자리에 오른 후에 고향을 방문할 때에 많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금의환향이라는 말의 기원을 보면 그 뜻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건이 있습니다.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記)’에 유방과 항우 이야기가 있습니다.

초(楚)나라와 한(漢)나라 전쟁이 한창일 때 이야기이다. 유방(劉邦)이 먼저 진(秦)나라 도읍인 함양(咸陽)을 차지하자, 화가 난 항우(項羽)가 대군을 몰고 홍문(鴻門)까지 진격하였다. 이때 유방은 장량(張良)과 범증(范增)의 건의로 순순히 항우에게 함양을 양보하였다.

함양에 입성한 항우는 유방과는 다르게 아방궁을 불태우는가 하면 궁중의 금은보화를 마구 약탈하고 궁녀들을 겁탈했으며, 시황제(始皇帝) 묘까지 파헤쳤다. 항우는 스스로 망쳐놓은 함양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고향인 팽성(彭城)에 도읍을 정하려 하였다.

신하들은 항우가 예로부터 패왕(覇王)의 땅이었던 함양을 버리고 보잘것없는 팽성으로 도읍을 옮기겠다고 하자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이때 간의대부(諫議大夫) 한생(韓生)이 간언했지만 항우는 오히려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길거리에서 '부귀하여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면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무엇이 다르리!'라는 노래가 떠돌고 있다고 하더군. 이건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이야. 그러니 어서 길일(吉日)을 택하여 천도하도록 하라." 그래도 한생이 간언을 그치지 않자, 항우는 그를 기름이 끓는 가마 속에 넣어 죽이고 말았다.

하지만 이 노래는 항우가 천하의 요새인 함양에 있는 한 유방이 승리할 수 없으므로 항우를 함양에서 내쫓기 위해 장량이 퍼뜨린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함양을 싫어했던 항우는 그 노래가 하늘의 뜻이라고 판단하여 마침내 팽성으로 천도하게 되었다.

결국 항우는 함양을 차지한 유방에게 해하(垓下)에서 크게 패함으로써 천하를 넘겨주고 만다. '금의환향'으로 자신의 공덕을 고향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는 하였지만 천하를 잃고 만 셈이다.

항우가 고향 팽성으로 도읍을 옮기려는 이유와 목적, 그리고 그 과정과 결과에는 불의와 폭력과 억압과 허황됨이 들어 있습니다. 항우가 함양을 점령하고 저질렀던 만행이나, 황폐한 함양을 떠나서 팽성으로 도읍을 옮기는 과정은 분명한 권력의 횡포입니다.

권력을 쥐고 비단 옷을 입은 것을 출세하였다고 생각하는 것과 큰 부자가 된 것을 성공하였다고 생각하는 시대를 비판하는 사건이 그 말 속에 들어 있습니다. “시온의 빛나는 아침”(248장)이라는 노래에서 시온의 영광은 오늘날의 시오니즘에 따르면 정복과 억압의 분위기이지만, 성서의 근원을 보면 야훼 하느님의 해방하는 능력에 감사하는 찬양입니다. 따라서 금의환향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생각할 때에 진정한 삶, 출세와 성공에 대해서 깊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떠들썩한 출세나 성공과는 대조되는 귀향이 있습니다. 요즘에는 귀농이나 낙향, 전원살림 등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한 일도 역시 쉽지는 않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두 사람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서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한 분은 문경식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전 의장입니다(통일뉴스 기사 참조). 그는 서울에서 4년간 아스팔트 농사를 갈무리하고 고향인 보성으로 돌아갔습니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문경식 전 의장은 초등학교 출신이며, 집에서 아버지보다 열심히 일하면서 동생들 뒷바라지 하고, 평범하게 농사를 지으며 살았습니다. 이십대가 되면서 우연히 ‘크리스찬 아카데미’ 교육을 받고, “열심히 일만 해서는 사람대접 못 받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가톨릭 농민회에 가입해 농민운동을 시작한 그는 70년대 말 전남 기독교 농민회를 조직했고, 90년대 보성군 농민회 회장, 전남도연맹 의장을 거쳐 전농 의장까지 맡게 된 것입니다. 그것도 연이어 불어오는 ‘쌀개방’, ‘FTA’라는 강풍 속에서 남들은 2년씩만 하는 전농 의장을 두 번 지냈습니다.

그의 임기 중에 일어났던 일 중에서 그는 2005년 11월 여의도에서 ‘쌀협상 국회비준’을 막다가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하늘나라로 보낸 전용철. 홍덕표 두 농민 열사를 가슴에 묻어두고 있었습니다. 당시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 속에서 청와대, 경찰청 가리지 않고 농민들이 농성을 벌이고, 청년. 학생들이 하루도 안 빠지고 촛불집회, 지하철 선전전, 모금활동을 진행했습니다. 비록 쌀개방은 막지 못했지만, 경찰청장을 사퇴시키고 대통령의 사죄도 받아냈습니다.

그는 고향에 내려가서 ‘농촌공동체’를 만드는 일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는 “보성에 내려가면 같이 술 먹고 하던 친구들과 생산도 같이 해서 나눠먹고, 남는 것은 돈으로 바꾸고 그러면서 살고 싶다”며 “보성에서 하나의 농촌공동체, 협업 사례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우보천리; 牛步千里), 그의 인생에 참 어울리는 말이라고 합니다.

또 한 사람은 평생을 아스팔트 위에 바친 칠순의 노신부, 문정현 신부님입니다(프레시안 기사 참조). 문 신부는 지난 24일 전라북도 익산 '작은 자매의 집' 원장직을 은퇴한 이후 전북 군산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군산은 1997년 문 신부가 처음 ‘미군기지 반대 운동’을 시작한 곳입니다. 문 신부는 이곳에서 출발해 10년간 서울, 매향리, 파주 스토리 사격장, 평택 대추리 등을 거쳐 다시 군산으로 돌아왔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10년은 한나라당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르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와 겹칩니다. 많은 사람이 진보·개혁 세력의 집권을 자축할 때도 문 신부는 아스팔트에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그는 함께 싸웠던 이들이 ‘낮은 곳’ 따위는 잊고 ‘패거리’가 되는 걸 지켜봤고, 또 그 자리에서 그들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계속해 왔습니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지금. 참담하게 패배한 그들은 갈 길을 잃고 헤매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 신부는 다시 출발선에 서 있습니다. 문 신부는 이해찬, 김근태, 임채정, 이철 씨 등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만한 민주화 인사를 꼽으며 “10년 헛살았다”고 단언합니다. 찬란한 민주화 운동의 후광을 업고 정치를 했지만 무엇을 했느냐고 힐난합니다.

이들의 과오 탓에 결국 또다른(이명박) 정권 시대가 열렸습니다. 문 신부는 이런 이명박 시대에 불안해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시간을 가져라.” 문 신부는 “언제 정치인이 민중의 아픔을 보듬은 적이 있었는가?” 하고 묻습니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 등 우리 사회의 가장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다시 시작하자!”고 말합니다.

“민중이 경제논리에 휩쓸려 또다른(이명박) 정권을 선택했지만 머지않아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라고 깨우칠 때가 온다. 그 때 깨우친 그들의 힘은 엄청날 것이다. 마침 또다른(이명박) 정부가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엄청난 일들이 이런 ‘각성’을 앞당길 것이다.”

지난 10년간 문 신부를 볼 수 있었던 매향리나 대추리에서처럼 군산에서도 문 신부는 미군 전투기의 시끄러운 소음이 연이어 들렸고 지평선 멀리에는 ‘기름탱크’를 볼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문 신부는 낡은 집을 전세로 빌려 지난 2006년 ‘평화바람 유랑단’을 했던 이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곳에서도 역시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내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비록 겉모습으로는 금의를 입지 않았지만, 마음속에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꿈으로 가득 찬 이런 환향, 귀향은 어떻습니까? 참으로 의롭게 살면서 풍족한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기는 쉽지 않은 세상에서 비단 옷이 성공과 출세를 상징하지만은 않습니다.

또한 고향을 찾는 것은 내가 있을 자리, 내가 설 자리를 찾아서 돌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나의 삶에서 내가 어디에서 서 있어야 하는가? 내가 선 자리는 나의 미래를 보여줍니다.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 하는 것은 어디를 향해 발을 내딛을지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남유다가 신바벨론에게 멸망한(BCE 587년) 후,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에 의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지 2년이 지났을 때(BCE 536년)의 일입니다. 50년 동안 황폐해 있던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기초를 놓는 자리에서 감사의 노래소리와 회한의 통곡소리가 뒤섞여서 들려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 화답하면서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의 찬송을 불렀다. ‘주님은 어지시다.’ ‘언제나 한결같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 주님의 성전 기초가 놓인 것을 본 온 백성도, 목청껏 소리를 높여서 주님을 찬양하였다. 그러나 첫 성전을 본 나이 많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가문의 우두머리들은, 성전 기초가 놓인 것을 보고, 크게 통곡하였다. 또 다른 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며 즐거이 노래하였다. 환성과 통곡이 한데 뒤섞여서, 소리가 너무나도 크고 시끄러웠다. 그 소리는 멀리서도 들을 수 있었으나, 어느 누구도 환성인지 통곡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통곡과 찬송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회한과 희망, 과거와 미래입니다. 예루살렘의 멸망과 파괴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통곡과 성전의 재건을 바라보는 감사의 노래가 뒤섞여서 구별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서 과거와 미래는 현재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슬퍼도 울고 기뻐도 우는 것처럼 회한과 희망은 함께 있습니다. 바로 지금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은 바로 나, 우리입니다.

지난 6일(재의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순절에서 40이란 수는 예수님이 40일 동안 광야에서 시험 받으심, 모세가 40일간 시내산에서의 금식한 일,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40년간의 광야에서 생활하면서 연단한 일, 엘리야가 아합과 이세벨의 수배를 피하여 광야에서 40일 동안 숨어지내면서 때를 기다린 일, 예수님이 부활하여 승천하기까지의 40일 등과 같이 성서에 여러 번 고난과 갱신의 상징 기간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사순절은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기념 묵상하며 경건히 보내고자 하는 절기입니다.

이 사순절 절기에 나의 삶과 희망을 생각해 봅시다. 금의환향, 고향에 돌아갈 때에 내가 입어야 할 비단 옷은 무엇이며 어떤 것입니까? 비단 옷이란 나의 모습을 말합니다. 그 비단 옷을 입고 내가 돌아가서 서 있어야 할 곳은 어디입니까? 지금은 내가 무엇을 입고 어디로 갈 것인지를 깊이 고민할 때입니다.

이병일 위원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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