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일 목사 ⓒ 문영진

한해가 저물어가는 대림절 기간 동안에 기다림에 대해서, 그리고 오늘날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의미에 대해서 함께 생각했습니다. 고향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을 기다리는 이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고향에 대한 기억인 '서로를 묶어줄 공통의 끈'은 지나간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기억입니다. 고향 사람들이 자기를 믿지(지지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예수님의 마음은 ‘고향을 잃어버린 마음’입니다. 자기를 거리끼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은 ‘서로를 묶어줄 공통의 끈’을 상실한 마음입니다. 고향으로부터 유배당한 사람들의 마음은 고향의 옛 모습이나 옛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그리움이 과거에서 미래로 방향전환을 하게 되면, 새로운 고향 꿈꾸는 세상에 대한 기다림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강남향린교회가 고향 같은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따뜻한 쉼터가 되고,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어머니 같이 푸근한 품으로 안아서 다독이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삶의 방향을 가리키는 교회, 자기 정체성을 찾고 싶은 사람들에게 미래의 희망으로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삶에서 지친 어깨를 부축해 주고,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 용기를 주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그 때 그 시절을 기억하려 할 때마다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이미 왔는데 무엇을 더 기다리는가

대림절은 예수님의 오심과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기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이 땅에 오셨고 우리 가운데 계시는데, 무엇을 더 기다립니까? 기다림은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을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것입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절기에서 중요한 것은 오늘이고 내일입니다. 절기를 지키는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는 현재이고 미래입니다. 이미 오신 예수님의 오심을 반복해서 기다리는 것은 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예수님의 꿈을 우리의 꿈으로 삼아 함께 이루는 일입니다. 우리가 대림절에 기다리는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과 목숨을 바쳐 이루려 했던 꿈입니다. 그 꿈은 누가복음 본문에서 읽은 “주의 은혜의 때”, 즉 하느님 나라를 이루는 일입니다. “서로를 묶어줄 공통의 끈”인 고향의 품에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이 자유롭게 안기는 일입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언제든지 갈 수 있고, 고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평화롭게 미소 지으며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입니다.

고향을 만들며 그리워하는 힘은 기다림의 근거입니다. 반대로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나 향수가 아니라, 과거의 암울했던 노예생활, 즉 야훼 하느님의 구원을 간절히 바라면서 울부짖었던 삶으로 되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것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찾아와서 그들을 해방시킨 야훼 하느님과의 약속과 신뢰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기다림은 미래이면서 현재입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예수님의 오심은 생명과 평화가 넘실대는 미래이면서 현재입니다. 지금 바로 우리 앞에 광야가 펼쳐져 있고, 우리는 이미 그 광야를 걸으며 미래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 길에서 너무 힘들다고 과거로 돌아가려 하지도 말고, 성급한 나머지 미래를 강제로 앞당기려 하지도 말고, 너무 조급해 하면서 기다림을 포기하지도 맙시다. 우리가 뿌린 기다림의 씨앗을 그리움으로 자라게 한다면, 그 열매는 나나 혹은 나의 먼 후손들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미래를 향한 그리움으로 예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기다린다고 해도, 삶의 과정에서 기다림에 지쳐 절망할 때가 있게 마련입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으면 “차라리 이집트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겠습니까?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광야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불신앙이나 인간의 근본적인 간사함을 탓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내가 몇 년을 광야에서 살았고,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러한 생활을 해야 할지 모른다면 어떠했을까요. 우리의 삶에도 실망과 절망에 늪에 빠져서 헤쳐 나가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사야 58장(55-66장)은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에 의해서 귀향한 이후의 팔레스타인에서 외쳐진 예언입니다. 모든 것이 폐허가 된 고향에 돌아와서도 종교와 정치 지도자들은 유다가 멸망하기 이전의 삶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습니다. 2,500년 전에 이사야가 폭로하는 그들의 만행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나 우리네 삶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마치 공의를 행하고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않는 민족이나 되듯이, 날마다 나를 찾으며, 나의 길을 알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무엇이 공의로운 판단인가를 나에게 묻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기를 즐거워한다고 한다. 주님께서 보시지도 않는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금식을 합니까? 주님께서 알아주시지도 않는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고행을 하겠습니까? 너희들이 금식하는 날, 너희 자신의 향락만을 찾고, 일꾼들에게는 무리하게 일을 시킨다. 너희가 다투고 싸우면서, 금식을 하는구나. 이렇게 못된 주먹질이나 하려고 금식을 하느냐?”

이러한 나의 모습, 우리의 모습,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는 것은 우리를 실망과 절망에 빠지게 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근본으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처음처럼’이라는 신영복 선생님의 글처럼, 처음을 돌아가서 나와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기초를 다시 쌓는 일입니다. 어수선하게 흩어진 마음의 조각들을 모아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일입니다. 기초를 튼튼하게 쌓는 일은 처음 어떤 일을 시작할 때뿐만 아니라 잘 못된 길, 돌아가기에 너무 멀리 온 길을 되돌리려 할 때에도 꼭 필요한 일입니다.

2007 대선에 실망한 진보 개혁 진영, 기초부터 다시 쌓은 일 착수해야

지난 한 주간은 대통령 선거와 그 결과로 어수선한 한 주간이었습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국민들을 상대로 수많은 약속을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길만이 사람들을 편하고 잘 살게 하는 길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번 결과에 대해서 민주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사람들, 편중된 경제적 성장과 풍요보다는 정의로운 분배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실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기회에 조직의 위상이나 운동의 방식에 대하여 근본적인 돌아봄과 기초부터 다시 쌓는 일이 필요합니다. 또한 이명박 당선자는 당선이 발표되자마자 국민들과의 약속을 깨뜨리는데, 더 이상 국민을 상대로 거짓의 가면을 벗고 작은 눈이지만 세상을 더 넓게 보고 더 많은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국정운영을 구상해야 할 것입니다.

기초를 다시 쌓는다고 했는데, 그러면 그 기초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길을 함께 걷는 사람으로서 잊지 말아야 할 그 기초를 잘 일러주는 이사야(58:6-7)와 누가복음(4:18-19)의 구절입니다.

(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부당한 결박을 풀어 주는 것, 멍에의 줄을 끌러 주는 것, 압제받는 사람을 놓아 주는 것, 모든 멍에를 꺾어 버리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니냐?”

(7) “또한 굶주린 사람에게 너의 먹거리를 나누어 주는 것, 떠도는 불쌍한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는 것이 아니겠느냐? 헐벗은 사람을 보았을 때에 그에게 옷을 입혀 주는 것, 너의 골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18)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19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사 61:1; 2>

우리는 대림절 넷째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동안 예수님의 꿈, 예수님의 뜻,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에 대해서 나누었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들이 바로 이 구절입니다. 예수님이 자기의 고향 나사렛에서 이사야의 예언(61:8-9)을 인용하여 자기의 삶의 목적을 선포하였습니다. 고향의 사람들이 그를 확실히 알았고, 그의 입으로부터 선포되는 은혜로운 말씀을 이상히 여겼습니다(22절). 위에 언급한 구절을 제대로 지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선뜻 받아들이기에 꺼려지기도 합니다.

그만큼의 자기희생을 필요로 하기에 애써 눈감고 잊으려고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이 땅에 아기로 오심을 기억하는 날에 반드시 생각하고 돌아보아야 할 말입니다. 예수님을 비롯한 영웅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영웅이 될 아기의 탄생에까지 소급됩니다. 왜, 탄생과 아기를 이야기 할까요? 어느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라 아기와 어린 시절을 이야기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기는 누군가의 보살핌으로 자라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아기는 열심히 먹고 배워서 자라납니다. 그 일을 함께 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다 자라서 온전한 성인이 아니라 아기로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은 그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병일 위원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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