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일 목사 ⓒ 문영진

따뜻한 것을 찾게 되는 계절 탓인지 요즘 '고향'이라는 화두가 맴돕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난 곳을 고향이라고 부르지만, ‘정들면 고향이라’는 말처럼 그저 생물학적으로 몸이 태어난 곳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고향이란 말을 들으면 누구나 자기가 살던 마을의 나무와 개천과 골목을 떠올리고, 같이 놀던 친구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식구들이 둘러 앉아 함께 밥을 먹던 옛집을 기억하고, 그 기억들 속에는 지금의 나를 지탱하며 살아 있게 하는 중요한 무엇, 꺼내보면 달아날 새라 고이고이 감춰두었던 무엇이 있습니다. 고향이란 말 속에는 오늘 우리의 삶이 느닷없이 생겨난 것이 아니듯이 앞으로도 느닷없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평화에 대한 목마름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나와 우리, 그리고 우리 주변의 삶은 일상에 묻혀 살다가 그만 이러한 고향을 잃어버리거나, 타의에 의해서 강제로 고향에서 추방된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특히 거리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하며 쫓겨 다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나 이주노동자들, 아우슈비츠의 고통을 기억하는 유대인들이 나치가 되어 내쫓고 고립시키는 압박에 저항할 수밖에 없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들의 투쟁과 저항은 과거의 기억 속에 있는 고향을 미래의 현실로 되찾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팔레스타인의 저항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는 말합니다.

“팔레스타인의 진정한 자유와 독립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을 서로 묶어줄 고통의 끈을 기억하는 데서 시작한다. 떨어져나가면 누구나 쉽게 뿌리 뽑히기 때문이다. 한 공동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광풍 앞에서 서로를 단단히 묶어줄 끈은 바로 자기가 태어난 땅과 사람들에 대한 기억, 그리고 그 기억을 지키려는 저항에서부터 시작된다.”

여기에서 고향에 대한 기억인 “서로를 묶어줄 공통의 끈”은 지나간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기억입니다.

스스로 나치의 행동을 닮은 이스라엘의 집요한 분리와 무자비한 파괴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은 2천년 전의 갈릴리와 비슷합니다. 예수님은 자기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그 중에서 열둘을 뽑아서 세우고, 그들과 함께 자기의 고향을 방문합니다. 예수님이 고향을 방문한 일과 고향 사람들의 꺼림은 단순한 일화가 아닙니다. 다음에 계속되는 열둘의 파송과 세례자 요한의 죽음과 연결해서 생각할 때에 그 의미를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권력 쥔 사람 비판하고 죄악 폭로했던 예수, 가족에게까지 배척

안식일에 회당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은 고향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여기에서 “놀라다”[ἐκπλήσσω]는 “때리다, 쳐서 튀기다, 공포로 압도하다, 공포에 사로잡히게 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뿐만 아니라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달갑지 않게 여깁니다. [σκανδαλίζω]는 “덫을 놓아 걸려 넘어지게 하다, 충격을 주다, 괴롭히다, 함정에 들다, 죄를 짓게 하다”라는 의미입니다. 고향 사람들, 그 중에는 어렸을 때에 예수님과 함께 회당에서 토라를 배우고 뛰어 놀던 친구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형제들과 자매들과 어머니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무서워하고 예수님에게 걸려서 넘어지듯이 괴로워합니다. 왜? 왜 그랬을까요?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요?

예수님이 한탄조로 말씀하신 “예언자는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밖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는 법이 없다.” 다시 말하면, “예언자는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대부분은 어떤 사람이 예언자적 능력을 갖기 전에 어렸을 때부터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그들이 유독 공동체성이 적어서 그랬을까요? 그런데 그 말이 나온 시대적 배경을 보면 조금 달리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로부터 예언자는 누구이며 어떤 일을 했습니까? 언제나 권력을 쥔 사람들을 비판하고 그들의 죄악을 폭로하였습니다. 그들은 사회적인 죄악의 원인을 찾아내고 그것을 바로 잡아서 하느님의 정의를 실현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배자들과 권력자들에게 예언자는 결코 달가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예언자들을 그들에게 쫓겨 다니거나 잡혀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갈릴리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언자나 메시아로 자처한 사람은 언제나 유대 지배자들과 로마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언자나 메시아로 자처한 사람과 연관된 사람들이나 지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본거지라고 생각되는 곳은 로마 군인들에 의해서 초토화되거나 수많은 사람들이 반란죄로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언자의 가족이나 고향은 그 예언자를 그저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언제 끌려갈지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예언자라는 사람을 만나거나 그 가족조차도 기피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꺼려하거나 달갑지 않게 여긴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남한의 역사에서 연좌제도 같은 맥락입니다.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수배당한 사람이나 그 가족들의 고통이 그 말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권력의 횡포와 탄압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이들이 예언자를 품고 예언자를 낳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권력 횡포와 탄압 이겨낼 수 있는 이들이 예언자 품고 예언자 낳을 수 있어

예수님은 자기의 고향에서 더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랐습니다. 여기에서 놀라다는 2절에서 고향 사람들이 공포에 사로잡히는 것과 다릅니다. [θαυμάζω]는 “놀라다, 존경하다, 기이하게 여기다, 이상히 여기다, 찬양하다, 칭송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고향 사람들이 자기를 지지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만, 그들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주변의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칩니다. <6절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 중에서 열둘을 파송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고향을 방문한 이후에 선교활동은 더 적극적인 양상을 띠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마가는 파송 현장과 파송의 의미를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이야기의 구조를 배치하였습니다. 그것을 샌드위치 기법이라고 하는데, 한 이야기 중간에 다른 이야기를 넣어서 두 이야기의 내용이 한데 어우러져 명확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것입니다. 열둘이 파송되었다가 돌아와서 보고하는 사이에 세례자 요한의 죽음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면서 자기의 일을 시작하기 직전에 죽은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를 마가는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제자들을 파송하는 장면과 함께 나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활동하는 세상은 언제나 죽임과 배척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 사이,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는 운명의 동일시가 일어납니다. 세례자 요한이 선포하고 넘겨졌듯이(1:7,14), 예수님도 마찬가지로 선포하고 넘겨질 것입니다(1:14,39; 9:31; 10:33). 그리고 예수님이 선포하고 넘겨지듯이, 제자들도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고 마침내 넘겨질 것입니다(13:9-13).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 그리고 제자들은 모두 동일한 예언자의 운명을 맞게 될 것입니다. 마가는 이 이야기를 통하여 제자들이 파송되는 현장의 분위기를 암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하여 파송되는 이들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 분위기는 죽음의 위협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고, 제자들의 결단은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리를 위하여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자기의 생명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향서 배척당한 예수...고향을 잃어버린 마음이었을 것

고향 사람들이 자기를 믿지(지지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오늘의 화두에 맞추어 생각해 본다면 “고향을 잃어버린 마음”일 것입니다. 자기를 거리끼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은 다르위시의 말처럼 “서로를 묶어줄 공통의 끈”을 상실한 마음입니다. 고향으로부터 유배당한 사람들의 마음은 고향의 옛 모습이나 옛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그리움이 과거에서 미래로 방향전환을 하게 되면, 새로운 고향 꿈꾸는 세상에 대한 기다림이 됩니다.

‘기다림’은 현재의 부재(不在)를 전제로 하나 언젠가 나타날 것이라는 희망과 긍정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김승환 목사는 <기다리는 기쁨>(상상나무)이란 수필집에서 “산다는 것은 기다림이며 모든 값진 것은 기다림의 결과”이며, “기다림은 신앙의 기본이자 자연의 이치이며,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곧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우리의 삶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시켜둔 자장면을 기다리고, 첫아이의 출산을 기다립니다. 사람을 기다리고, 때를 기다리며, 다가올 고통의 소멸을 기다리고, 만들어갈 세상을 꿈꾸며 기다립니다.

해마다 찾아오는 대림절, 당신은 무엇을 기다립니까

특히 오늘은 해마다 찾아오는 대림절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대림절 절기에 기다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오심과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기간이라고 하는데, 그 말이 무슨 의미죠? 예수님은 이미 이 땅에 오셨고 우리 가운데 계시는데, 무엇을 더 기다립니까?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린다고 하는데, 그날을 기다리는 우리는 오늘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해마다 반복되는 교회절기를 지키기 위해 촛불을 켜고 성탄축하를 위한 준비를 하는 기다림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안도현 님의 시입니다. <기다리는 사람에게>. 이 시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지를 깨닫게 합니다.

기다려도 오지않는 사람을 위하여 / 불 꺼진 간이역에 서 있지 말라
기다림이 아름다운 세월은 갔다
길고 찬 밤을 건너가려면 / 그대 가슴에 먼저 불을 지피고 / 오지않는 사람을 찾아가야 한다
비로소 싸움이 아름다운 때가 왔다
구비구비 험한 산이 가로막아 선다면 / 비껴 돌아가는 길을 살피지 말라
산이 무너지게 소리라도 질러야 한다 / 함성이 기적으로 울 때까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는 / 그대가 바로 기관차임을 느낄 때까지

우리가 대림절에 기다리는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과 목숨을 바쳐 이루려 했던 꿈입니다. 교회 용어로 말하면 하느님 나라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화두로 말하자면, “서로를 묶어줄 공통의 끈”인 고향의 품에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이 자유롭게 안기는 일입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언제든지 갈 수 있고, 고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평화롭게 미소 지으며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입니다. 이 땅이 그런 세상과 완전히 일치하는 일은 미래의 일이라지만, 지금 내가 함께 하고 있는 가족 교회 공동체를 그렇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 일은 멀고 험한 것처럼 보입니다. 오죽했으면 예수님이 죽임을 당했겠습니까? 그러나 고향을 만들며 그리워하는 힘은 기다림의 근거입니다. 우리의 기다림은 미래이면서 현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예수님의 오심은 생명과 평화가 넘실대는 미래이면서 현재입니다.

이병일 위원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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