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냐? 권력이냐?”(사무엘하 6:1-15)

▲이병일 목사 ⓒ 장익성

대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후보들 중에는 권력을 향한 욕망이 앞선 사람도 있고, 진정으로 민중의 삶이나 생명과 평화를 향한 열정으로 나선 후보들도 있을 것이다. 누구를 지지할 것인지 결론은 분명하지만, 히브리 성서에서 다윗에 관한 일화를 통해서 함께 생각해 보려한다.

다윗은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으로 추앙되었다. 사사시대 이후 사울을 거쳐 다윗이 왕권을 확립한 후, 하느님이 다윗과 영원한 계약을 맺었다는 ‘왕조신학’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 내용은 하느님이 다윗을 왕으로 세워서 그에게 영원한 왕조를 약속해 주셨고, 다윗이 자기의 사유지에 만든 예루살렘(시온)은 하느님께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것이다. 이는 다윗에서부터 시작된 전제왕권을 합리화 하고 다윗 왕조의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의 결과이다.

더욱이 역대기에서는 성군(聖君)으로 묘사되어 아무런 흠이 없는 왕으로 묘사되어 있다. 역대기 사가는 다윗을 성전을 중심으로 한 종교제도와 종교의식의 창시자로 생각하고, 종교적 공동체로서 이스라엘의 모든 기초는 다윗 때 마련되었다고 말한다. 역대기에서 사울왕은 단지 다윗의 등장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거론되고 있으며, 사무엘서와는 달리 다윗의 부정적인 면은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는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망명생활을 할 때, 이스라엘의 원수였던 불레셋에 가담하여 용병이 되었던 일(삼상 27, 29장), 밧세바와의 불륜과 그녀의 남편 우리아를 죽인 사건(삼하 11장), 그의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예루살렘을 떠나 피신했던 일(삼하 13-19장) 등이 그것이다.

이처럼 다윗은 이스라엘의 국가적 기반과 종교적 전통을 확립한 왕으로 여겨진다. 왕조가 몰락한 후에도 다윗은 유대 왕조를 회복할 메시아로 기다려졌다. 그가 빼앗은 예루살렘과 그의 성은 다윗성(시온성)으로 불리며, 오늘까지 시오니즘의 고향이 되었다. 이스라엘(전제적 왕국이 시작된 이후에는 이스라엘 전체가 아니라 유다 지파의 이스라엘이 되었다.)의 정치적 지배자들은 그들의 권력이 약해질 때마다 다윗왕조의 계약과 시오니즘으로 백성들을 선동하면서 자기들의 지배를 희구했다.

야훼신앙을 사적 종교로 축소시킨 다윗 왕

히브리성서(구약성서)의 왕조 이야기는 주로 다윗 왕조의 정통성을 합리화하는 측면에서 편집되었지만, 그 속에 간간이 예언자들이 외친 야훼신앙에 뿌리를 둔 해방 전통이 숨어있다. 왕조 전통의 허구를 드러내는 해방 전통(예언 전통)에 의하면, 다윗은 이스라엘의 평등공동체를 파괴하고 야훼신앙을 개인의 사적 종교로 축소시킨 장본인이다. 이스라엘 평등공동체의 이상을 모두 파괴하고 전제왕권을 실현한 왕이다.

본문(사무엘하 6장)은 다윗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인 이해에 의문을 제기할 만한 근거를 제공한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다윗은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그곳에 자기 왕조의 터를 잡았다. 대외적으로 블레셋을 평정하여 이스라엘의 안보를 확고하게 한 다음에 다윗이 한 일은 하느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이스라엘에 왕을 세우는 데 있어서 찬성과 반대의 견해가 사사기와 사무엘상에 엇갈려 나오듯이, 본문은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일에 있어서 찬반의 여론을 반영하는 내용을 연이어 보도하고 있다.

법궤는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나올 때부터 생겼던 이동식 제단, 하느님 임재의 움직이는 상징이었고(민 10:35-36), 이스라엘이 가진 가장 오래된 전통들과 관련되어 있다. 실로에 머물고 있던 법궤는 아벡 전투에서 블레셋 군에게 빼앗겼지만, 블레셋에게 여러 가지 재앙이 일어나서 다시 돌아온다. 그 후 20년 동안 법궤는 바알라[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에 있었는데,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게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

다윗은 왕이 되었을 때에 이 법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자기의 새 왕국을 이스라엘의 종교적 전통 위에 세워 나가려고 했다. 이때에 법궤를 다윗의 사유지인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일은 예루살렘이 온 이스라엘의 중심성소가 되고, 다윗은 정치적으로는 물론이고 종교적으로도 하느님의 확증을 받는 일이었다.

본문에서 법궤를 옮기는 두 번의 시도가 나란히 기록되어 있는데, 그 두 이야기를 비교하면 하느님과 권력의 관계, 하느님이 권력자에게 무엇을 원하시는 지를 엿볼 수 있다. 첫 번째 시도는 웃사의 죽음으로 실패하고, 두 번째 시도에서야 비로소 법궤를 옮길 수 있었다. 첫 시도에서 웃사의 죽음은 그 의미를 이해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고, 따라서 그 해석도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나 두 본문을 자세히 비교해 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왼쪽)가 8월21일 오후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방문해 이용규 대표회장(오른쪽)과 악수하고 있다. 이를 한기총 최희범 총무(가운데)가 지켜보고 있다. ⓒ 박지훈/에큐메니안

하나님의 힘을 자신의 군사력에 포함시키거나 그 아래에 두려고 했던 다윗

첫 시도에서 다윗은 전쟁에 참여하는 것처럼 “정병 삼만 명을 다시 징집하여” 법궤를 옮기려 하였다. 군대의 힘으로 “만군의 주의 이름으로 부르는 법궤”를 옮기려 한 것이다. 또한 다윗은 하느님의 궤를 옮기는 수단으로 새 수레를 이용한다. 하느님의 궤를 옮길 때에는 반드시 고핫 자손들이 어깨에 메고 옮겨야만 했다(출 25:14-15; 민 3:30-31; 5:15; 7:9). 아무리 새로운 수레를 이용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이다.

게다가 웃사의 죽음에 대한 다윗의 반응은 의외이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성군 다윗이라면 이런 일이 일어난 원인을 알아보고 하느님 앞에 잘못한 일이 있으면 회개하고 돌아섰을 텐데, 오히려 다윗은 화를 내고 무서워하며 법궤 옮기는 일을 중단한다. “이래서야 내가 어떻게 주님의 궤를 내가 있는 곳으로 옮길 수 있겠는가?”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지키신 하느님의 힘을 다윗 자신의 군사력에 포함시키거나 그 아래에 두려고 하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다윗은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채우기 위해 법궤를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자신의 권력을 확장시키는 데 하느님의 이름을 내세우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심판 앞에서 다윗의 의도는 무산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시도에서 다윗은 큰 축제를 벌이면서 “모시로 만든 에봇만을 걸치고” 하느님 앞에서 춤을 추며 법궤를 옮기고 있다. 첫 시도와 다른 것은 다윗의 마음가짐인데, 그 것은 그가 입은 옷에서 드러난다. 다윗이 입었던 “모시로 만든 에봇”은 전통적으로 제사장들이 입었던 화려한 예복이 아니라 종교의식에 참여하는 사람이 입는 일반적인 예복이다. 하느님의 궤 앞에서 다윗은 더 이상 권력을 지향하는 왕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과 같은 평범한 인간이었다. 다윗은 왕으로서의 권위와 체면을 벗어버리고 하느님 앞에 섰던 것이다.

다윗의 이러한 태도는 이스라엘에서 왕도 하느님 앞에서는 똑같은 인간이라는 전통과 일치한다. 여기에는 권력을 지향한 어떠한 정치적 의도도 있을 수 없다. 또한 거기에서 법궤를 옮겨 온 후에 다윗은 온 백성들과의 먹을거리를 나누었다(19절). 다윗이 하느님의 궤를 옮겨 올 수 있었던 것은 장군이나 왕으로서가 아니라 모든 백성들과 똑같은 위치에서 하느님 앞에 섰기 때문이었다.

하느님의 이름은 어떤 경우에라도 누구에게라도 이용될 수 없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면서 하느님을 대신하려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스스로를 하느님의 직접적인 계시자라고 말하면서 하느님의 자리를, 하느님의 영광을 자기의 것으로 삼고 숭배를 받으려한다. 자기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이 보여주신 많은 이적이 있다고 홍보한다. 또한 더 큰 권력에 의지하여 자신이 그 권력의 대열에 함께 있다는 것을 자랑하려 한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대선후보(왼쪽)가 지난 6월26일 명당성당에서 열린 6월항쟁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이해찬 전 총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정 후보는 23일 오후 KNCC를 방문할 계획이다. ⓒ 박지훈/에큐메니안

선거철만 다가오면 교회를 이용하려는 정치인으로 가득

반대로 정치인들은 종교를 자기 권력에 이용한다. 남한 현대사에서 정치권력과 기독교의 밀월관계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선거 때만 되면, 평상시에는 교회에 나오지 않던 사람들이 이 교회 저 교회를 돌아다니며 얼굴도장을 찍는다. 정치인들은 교회를 찾아가 지지를 호소하고, 어떤 교회의 목사는 유명한 정치인과 찍은 사진을 교회 홍보에 적절하게 이용한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개신교의 모 목사는 모 장로 후보를 찍지 않으면 생명책에서 삭제될 것이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했다가 사회의 지탄을 받은 적도 있다. 이것은 종교와 정치권력의 파행적 관계이다.

우리가 속해있는 기독교의 초기역사에서 교리가 결정되고 교회에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면 정치권력과 종교가 엎치락뒤치락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금 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느님 말씀보다 더 중요하고, 때로는 서로 갈라질지라도 버릴 수 없다고 하는 교리들이 제후와 군주, 그리고 그들에 의해 이용당했던 감독들이 서로 권력다툼을 하는 와중에 생겨난 것이다.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하느님과 권력의 관계에 있어서, 하느님은 권력을 지지하지 않는다. 게다가 백성을 돌보지 않고 권력을 통하여 하느님까지도 자기의 욕망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이의 권력을 더욱 용납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이러한 권력에 대한 도전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권력을 지지하지 않는 하나님...대통령 되겠다면 사람 위에 군림하려는 권력욕 버려야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거대한 로마 황제의 정치권력을 등에 업은 총독과 유대의 산헤드린에 대한 도전이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자기들도 지키기 힘든 율법 조항 하나하나로 오늘 먹을 양식이 없는 민중들에게 강요하며 스스로 의로운 체 하던 바리새파 사람들의 종교권력에 대한 도전이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이미 굳어질 대로 굳어진 딱딱한 전통으로 틀을 만들어 놓고 살아 있는 생명을 그 속에 몰아넣고 가두었던 어른들의 아집에 대한 도전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권력에 힘없이 끌려 다니며 그들의 손발이 되어 칼과 몽둥이를 휘두르고 큰 소리로 외치던 뭇 사람들의 나약함에 대한 도전이다. 사람의 아들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다가오는 권력의 유혹에 대한 거부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이는 사람 위에 군림하는 권력을 향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

이병일 위원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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