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6-8장은 빵을 주제로 큰 이야기를 이룹니다. 짧은 이야기들을 이어주는 고리는 빵입니다. 6장에 ‘오천 명을 먹이신 일’과 8장에 ‘사천 명을 먹이신 일’, 그리고 7장에는 ‘시로페니카아 여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것은 “빵”입니다. 직접적인 사건의 보도뿐만이 아니라 배를 타고 여행할 때에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빵에 대하여 언급하며 가르칩니다.

예수님은 모인 무리와 시로페니키아 여인(여인의 딸)에게 빵을 허락함으로써 그들을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 먹이는 사건이 주의만찬을 상징하듯이 빵은 예수님의 몸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몸을 사람들에게 내어주어 먹게 하는 것은 다가오는 자신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빵이 되어 사람들을 먹인 것처럼 자기의 죽음으로 무리를 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 살리기는 밥상을 함께 함으로써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활동이 생명을 살리는 일이고, 생명을 창조하는 능력은 치유와 밥상친교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함께 먹는 식탁은 하느님 나라의 생명이 약동하는 거룩한 현장입니다. 어떤 공동체에서든지 가장 중요한 모습은 바로 공동식사입니다. 함께 먹는 모습, 생명의 양식을 함께 나누며 즐거워하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유쾌합니다. 그리고 먹는 일을 통해서 우리는 食口나 親口가 됩니다.

마가복음에 무리를 먹이는 이야기가 두 번 반복되어 나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특별한 의미가 없다면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할 정도로 마가복음은 널널하지 않습니다. 마가는 말을 아끼면서 짧은 복음서 속에 예수님의 활동을 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빵을 먹이는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천 명을 먹인 이야기에서 남은 빵은 열두 바구니이고, 사천 명을 먹인 이야기에서 남은 빵은 일곱 바구니입니다. 이는 다섯 두루마리(오경)와 그 열둘로 대표되는 유대인과 사방으로 펼쳐진 온 땅과 그 일곱으로 대표되는 이방인을 말합니다. 유대인의 땅에서 빵을 먹이고 바다를 건너 이방인의 땅에서도 똑같이 빵을 먹임으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였습니다.

그 두 이야기의 중간에 시로페니키아 여인이 등장합니다. 딸의 귀신들림을 치유해 달라는 이방의 어머니를 향해서 예수님은 하나의 잠언을 인용합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개나 다른 가축보다 앞서 자녀들을 먹여야 한다.” “자녀를 먼저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이 먹는 빵을 개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이렇게 말하는 예수님에게 여인은 ‘그래, 나는 너희들에게 개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나도 자식의 생명을 사랑한다. 내 자식이 죽어가는 것을 그냥 볼 수 없는 너희들과 똑같은 인간이다.’ 라고 말합니다. 당시의 속담을 인용한 것이지만 예수님에 의해서 개로 취급된 이방 여인의 놀라운 믿음으로 빵이 자녀에게서 개에게로 넘어갑니다.

자녀의 빵이 개에게 넘어가듯이, 생명의 빵이 이방인에게 그리고 여성에게도 넘어간 것입니다. 여인의 용기 있는 행동을 통하여 예수님의 활동은 새로운 지평을 얻게 되었으며, 인종과 이념과 역사와 종교의 장벽이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이방 여인의 용기로 예수님 안에서 같은 인간으로, 하느님 나라의 주체로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대 땅에 있는 무리나 이방 땅에 있는 무리나 똑같이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는 생명의 빵을 먹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그의 활동 속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를 가로 막고 있는 바다를 건너서 생명의 빵으로 양쪽을 똑같이 먹였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의 의미는 그 사람의 삶에 의해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어떻게 살았느냐는 그 사람의 죽음과 죽음 이후 남겨진 모습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삶에서 자기 안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을 품으려는 활동이 없었다면, 십자가에서 양쪽을 하나 되게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러한 행동의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사람이 바로 시로페니키아 여인이었습니다.

예수를 따라 벽을 허무는 일은 고난의 길이기도 합니다

지금 내가 관계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 우리 사이에 놓인 벽은 무엇입니까? 크게는 국제적인 문제와 남과 북의 관계, 사회-정치적인 이슈들이 있습니다. 가까이에는 나 자신, 가족, 교회 학교, 일터에서 마주하는 일과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는 이미 벽이 허물어진 관계도 있고, 지금 막 쌓고 있는 벽도 있을 것이고, 벽이 생긴 지 너무 오래 되었거나 높아서 그저 덤덤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뿐만 아니라 오늘 나의 삶 속에서 나와 남을 가르는 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그만큼 노력도 해야 합니다. 노력뿐만 아니라 때로는 억울함이나 창피함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자기를 존재하게 하는 자존심이 심하게 구겨지고 상처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정말로 참을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개처럼 생각되어지는 일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시로페니키아 여인은 당시의 통념대로 개같이 취급받게 될지라도 딸을 살리겠다는 애틋한 사랑으로 오히려 그 통념의 벽을 허물고 예수님의 몸을 함께 나누는 하느님 나라의 당당한 일군이 될 수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6-8장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겪는 일들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벽을 허물고 하느님 나라의 일군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반대와 오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벽을 허물기 위해 애쓰다 보면 예수님이 고향에서 배척을 당했던 것처럼, 자기를 너무나 잘 안다고 하는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고향을 두루 다니면서 가르침을 멈출 수 없었던 것처럼 하느님의 진정한 공동체를 향한 벽 허물기를 멈출 수는 없습니다. 헤롯 안티파스에 의하여 죽임을 당했던 세례자 요한처럼 죽임의 위협 속에 그대로 놓여 있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일이 돈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무리들처럼 굶주릴 수도 있습니다.

바다를 건너던 제자들이 바다 한 가운데에서 그들의 길을 반대하며 방해하는 바람에 의해서 애써 노를 젓지만 소용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벽을 허무는 일이 동시대의 상식과 전통과 달라서 심한 오해와 반대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몸과 마음에 병을 얻을 수도 있고, 특히 제대로 말하고 듣지도 못하게 되어 화병을 얻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자기가 만나는 무리들과 그들 따라다니는 제자들과 함께 그를 반대하는 세력들에 대항하여 벽을 허물고 있습니다. 그 목적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하느님 나라의 일군이 되어 함께 일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날마다의 삶 속에서 나의 모든 말과 행동을 기억하고, 함께 밥을 먹은 사람을 기억하고, 내가 본 자연의 모습 - 언제나 그렇게 거기에 있는 자연의 모습을 곱씹으며, 자기를 열어 봅시다. 너와 내가 주인이 되는 하느님 나라를 향해서, 바다 한 가운데에서 한 배를 타고 노를 젓는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이병일 위원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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