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세 시대를 거치며 루터 시대까지 이어진 성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예수께서 제정하시고 교회 전승한 성찬식은 소박하게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것이었지만 이를 신비화해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Getty Images

안녕하세요, 채수일의 기고만장입니다.

오늘은 마틴 루터의 《교회의 바빌론 유수》(1)를 여러분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교회의 바빌론 유수》는 1520년, 서른일곱 살에 루터가 쓴 세 권의 기념비적인 저작의 하나입니다. 앞서 소개드린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아직 소개하지 않은 《독일 그리스도인 귀족들에게》가 나머지 두 권입니다. 1520년 6월 15일 교황이 루터를 정죄하자, 루터는 8월부터 11월까지 세 달 동안에 세 권의 저작을 연속으로 간행하여 개혁의지와 방향을 제시한 것이지요.

《교회의 바빌론 유수》는 독일어와 라틴어로 출판되었는데, 루터는 가톨릭교회가 공식적이고 전통적인 성사로 인정한 일곱 개의 성사, 곧 성찬례(성체 성사), 세례 성사, 참회의 성사(고해성사), 견진성사, 혼인성사, 성품성사, 종부성사(병자성사)를 비판하면서 오직 성만찬과 세례만이 성서적으로 정당한 성사라고 주장합니다.

“평신도들에게 빵과 포도주의 성찬을 베풀지 않는 사제는 사악하다”: ⟪서문⟫

《교회의 바빌론 유수》 서문은 아우구스티누스회 수사인 루터가 친구인 헤르만 툴리히(Herman Tulich)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서문에서 루터는 교황청이 자신을 설득하거나 회유하려고 노력한 것을 지적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벌부가 그저 로마의 아첨꾼들의 사기에 지나지 않고, 그런 사기를 써서 사람들에게서 신앙과 재산을 강탈한 것”이라는 비판을 계속합니다.(2)

그리고 요한 에크(Johann Eck)와 제롬 엠서(Jerome Emser) 같은 학자들이 교황의 수위권에 대해 자기를 가르치는 작업을 했지만, “교황의 지위가 그 자체로 바빌론 제국이며, 강력한 사냥꾼인 니므롯(창 10,8-9)의 권세”라는 자신의 확신을 더 견고하게 만들었을 뿐이라고 주장합니다.(3) 이 책의 제목을 《교회의 바빌론 유수》라고 정한 것은 교황의 지위가 그 자체로 바빌론 제국과 같다는 것을 폭로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루터는 또 양종성찬식(빵과 포도주 두 가지를 모두 사용하는 성찬식)을 비롯한 여러 성사들에 관하여 자기를 가르치려고 학교로 다시 보내려는 교황청의 시도에 맞서, 성찬식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을 비판합니다. 특히 라이프치히의 거룩한 십자가 현양 수도회 수사들이 “그리스도와 사도들은 평신도들에게 양성체를 베푸는 것을 명하지도 않았고 권하지도 않았으며, 따라서 이 문제 있어서 무엇을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지는 교회의 판단에 달려 있는 것이고, 우리는 이 교회의 판단에 순종해야 한다.”고 선포했습니다.(4)

다시 말해 “양종성찬식은 그리스도께서 명하시거나 권고하신 것이 아니고 다만 교회의 판단에 맡겨진 것이고, 일종성찬식은 평신도들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명에 의해 지정되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5) 그것도 요한복음서 6장의 말씀을 근거로 그렇게 주장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는 자신을 하늘로부터 오는 빵이라고 했는데, 이 구절은 평신도를 위한 오직 한 종류의 성체 성사 제도의 도입을 말해준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나는 살아 있는 빵”이라고 하셨지, “나는 살아있는 (음료)잔”이라고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6)

여러분은 혹시 가톨릭 성만찬에 참석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저도 처음 가톨릭 성만찬에 참석했을 때 신도에게는 오직 빵만 주고 포도주는 사제 혼자 마시는 것이 의아했습니다만, 왜 그런지, 언제부터 그랬는지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루터의 이 책을 보면서 비로소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루터는 《교회의 바빌론 유수》에서 “평신도들에게 양종성찬식을 허락하지 않는 모든 이들은 사악한 사람들임을 증명하는 일에 착수하려고 한다.”고 하는데(7), 바로 이 책은 그 작업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루터는 이 책에서 가톨릭교회가 성사를 일곱 개로 규정한 것을 부인하고, 대신 세 가지 성사만을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세례 성사와 참회의 성사, 그리고 성찬례(성체성사)가 그것입니다.(8)

성찬례(성체 성사)

루터는 먼저 성체성사의 의미를 논의하기 위해 요한복음서 6장은 전적으로 배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찬식에 대해서 한 음절도 언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9) 오히려 주님의 만찬 제정에 관한 복음서 이야기들과 고린도전서 11장을 검토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루터는 이 말씀들에 의거, 바울도 양종성찬식을 전했다는 것이 확실하다고 주장합니다.(10)

그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너희들 모두 그것을 받아 마시라”고 허락이 아니라, 명을 내리셨기 때문에, 그리고 그 말씀이 사제들에게만 건네진 것으로 이해될 수 없기 때문에, 그 잔을 원하는 평신도들에게 그것을 주지 않고 보류하는 것은 분명히 불경한 행위라고 루터는 지적합니다.(11)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양종성찬의 분배가 교회의 판단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는데, 루터는 가톨릭교회가 그 이유를 들지도 않으면서 그런 주장을 하고, 어떤 권위도 없이 그런 주장을 제시한다고 비난하면서(12), 성찬례가 평신도 모두에게, 그들이 원한다면, 완전한 형태로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13)

루터는 평신도에게 양종성찬식을 허락하지 않는 것은 사악하고 횡포가 심한 일이라고 결론 내립니다. 이런 것은 어느 천사의 권한에도 속하지 않고, 어떤 교황이나 공의회의 권한에는 더군다나 속하지 않는다고 합니다.(14) 성찬식은 사제들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속하는 것이고, 만약 사제들이 평신도로부터 양종성찬식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탈취하고 강제로 그것을 보류하고 있다면, 그들은 폭군이며, 그리스도 앞에서 사악한 종들로 정죄될 것이라고 규탄합니다.(15)

루터는 철저하게 성서에 근거한 성사만 그 정당성을 인정합니다. 성경 밖에서 주장된 것, 또는 승인된 계시는 하나의 견해로는 견지될 수 있지만, 신앙으로 믿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16)

가톨릭 전통에 의하면 신적 권능에 의해 ‘실체 변화’(transubstantiation, 화체설)가 성체성사에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루터는 실체변화를 상정하는 것이 필연적이지 않으며, 그런 것은 인간의 정신이 만들어낸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실체변화가 성경에 근거하지도 않고, 이성에 맞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17)

게다가 교회는 1,200년 이상 동안 ‘실체변화’라는 괴상한 생각을 표현하는 괴상한 말을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이런 표현이 등장한 것은 사이비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교회에 만연했던 12세기 이후부터였다고 루터는 지적합니다.(18)

성만찬과 관련된 억류는 (1) 신도에게 양종성찬을 허용하지 않은 것, (2) 실체 변화설에 이어 (3) 사악한 오용이라고 루터는 주장합니다. 성만찬에 대한 원래의 믿음이 완전히 소멸되었고 대신 거룩한 성만찬이 그저 상품이나 시장, 또는 이윤을 만드는 장사로 변질되었다는 것입니다. 대도, 공로, 여러 기념들, 추모의 날들, 그 외 여러 비슷한 상품들이 교회 안에 도입되고, 팔리게 되었고, 거래되고 물물교환 되었는데, 사제들과 수도사들이 그들의 생계를 이런 것들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19)

그렇다면 성찬식의 본래의 의미를 어떻게 해야 회복할 수 있을까요?

루터는 성찬식에 대한 참되고 공정한 지식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성찬식이 제정되었을 때의 본래적 단순한 형태에 사람들의 열성과 신심에 의해 첨부되어 왔던 것들을 모두 치워야 한다고 합니다. 예컨대 예복들과 장식품들, 성가와 기도, 오르간, 촛불, 나아가 화려한 외형적 행사와 같은 것들을 다 치우고, 우리의 눈과 마음을 오로지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것에만 단순하게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20)

루터는 성찬식은 물론 “미사를 위한 유일하게 가치 있는 준비와 적절한 의식은 신앙”이라고 합니다.(21)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약속에는 두 가지, 곧 말씀과 표상이 우리에게 제시된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말씀은 약속인 것으로, 표상은 성사인 것으로 우리는 이해하게 됩니다. 미사의 경우, 그리스도의 말씀은 약속이고 빵과 포도주는 성사입니다.(22)

그러나 사제들은 하나님의 약속과 성사를 벗어나 믿음이 없는 길로 빗나갔다고 루터는 비판합니다. 약속과 성사는 받아들여지는 선한 선물이어야 하는데, 사제들은 스스로 그것들을, 자신들이 하나님께로 전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행해야 될 선행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입니다.(23)

사제들이 그렇게 한 것은 그것들이 많은 수입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24) 이것이 가능한 것은 미사를 희생제사라고 생각하는 일반적 믿음 때문입니다. 루터는 이런 믿음이 가장 위험하고, 제거해야 할 장애물이라고 합니다.(25)

그러므로 참된 미사를 드리는 사람은, ‘의식의 화려함에 현혹되지 말고, 격식을 차리며 잘난척하는 다수의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미사 자체의 단순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진실로 미사의 소박한 실체를 망각하고 외형적 장관의 부차적인 다양함에 매달린 채, 일종의 실체변화와 같은 것을 실행하지 말아야 한다.’고 루터는 주장합니다.(26)

루터는 미사의 단순함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미사에서 신도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그리스어와 라틴어, 히브리어가 아니라 독일어나 다른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27) 루터는 사제의 마음가짐도 지적합니다. 사제는 자신이 미사를 베푼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미사와 성사의 축복에 관한 한, 사제이건 평신도이건 모두 동등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28)

가톨릭교회는 그레고리우스 교황 1세(재위 590년-604년)의 선언을 유지해 왔는데, 그는 “사악한 사제에 의해 집전되는 미사라도 선한 사제에 의해 집전되는 미사보다 덜 효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만약 베드로와 유다가 미사라는 희생 제사를 바쳤다면, 성 베드로가 거행한 미사가 배반자 유다의 미사보다 더 나은 미사이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루터는 많은 사람들이 그레고리우스 교황 1세의 말을 자신들의 사악한 행동을 덮는 은폐물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비판합니다.(29)

물론 루터도 사악한 사제가 세례를 줄 수 있듯이, 또한 성찬식의 언약을 제시할 수 있고, 그 성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성찬을 나누어줄 수 있고, 스스로도 참여할 수 있다고 인정합니다. 마치 주님의 만찬에 배반자 유대가 끼여 있었듯이. 그것은 여전히 변함없이 같은 성사이며 언약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지요.(30)

그러나 루터는 성찬식이 희생 제사를 바치는 것으로 될 때, 사정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합니다. 미사가 아니라 기도가 하나님께 바쳐지기 때문에, 사악한 사제가 바치는 기도는 아무 효용이 없다는 것이 대낮처럼 분명하다는 것입니다.(31) 그러므로 미사와 기도, 성사와 행위, 언약과 희생제사, 이 두 가지 것들이 혼돈되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미사와 성사와 언약은 하나님으로부터 사제의 직무를 통해 오는 것으로 우리의 믿음을 요구하고, 기도와 행위와 희생제사는 우리의 믿음으로부터 하나님께 사제를 통하여 나아가는 것으로, 그분의 응답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전자는 내려오는 것이고, 후자는 올라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자는 자격 있고 경건한 성직자를 필수적으로 요구하지는 않는 반면, 후자는 참으로 그런 사제를 필요로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요 9:31). 하나님은 악인을 통해서도 선을 행하실 수 있지만, 그분께서는 악인으로부터 나오는 어떤 행위도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32)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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