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의 참 예언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전했기에 미움의 대상이었다. ⓒGetty Images

예언자 예레미야 시대에 이스라엘은 국가 존망의 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밖으로는 바벨론 제국이 침공해 왔고, 안으로는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 권력층의 불의와 폭력 아래 민중의 신음이 깊어져만 갔습니다. 그러나 양자는 별개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벨론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정의롭고 평화로운 나라를 다시 세우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였습니다. 위기의 시대에 예언자로 부름받은 예레미야의 말은 늘 듣는 자를 몸서리치게 할 만큼 두려운 심판과 파멸의 경고뿐이었지만, 그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회개하여 심판을 피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레미야를 사람들은 환영하기 어려웠습니다. 사람들은 두려운 심판의 경고를 쏟아내는 예레미야보다 진실을 은폐하고 귀를 즐겁게 하는 거짓 예언자들의 말을 위안으로 삼았습니다. 어떻게 살고 행동하든 입으로는 하나님을 부르며 성전을 그들의 안전의 보증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런 그들을 향해 오늘 본문과 같이 말합니다. 이스라엘을 지탱해 온 신념을 부정하고 현체제를 뿌리째 흔들어 놓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성전 안에 가둬 두어 현체제를 유지하고 그들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하나님은 그들이 악에서 돌이키지 않는다면 성전은 실로처럼 버림받을 것이고 이 땅에서도 더 이상 살 수 없으리라고 예언자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이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 경고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응을 짐작케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성전이라 부르던 그것은 하나님을 자기 뜻대로 조정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으며, 하나님의 경고는 그들과 하나님의 관계를 바르게 하는 생명의 길이었습니다. 정의롭고 공의로운 새로운 사회를 세우는 토대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현체제를 위협하고 자신의 신념을 부정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성전에서 예배와 기도가 그치지 않고 구원의 감격을 말하곤 하지만, 거기에 하나님은 없었습니다. 자신이 믿는 바와 달리 행동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악을 멀리하고 정의를 행하라는 하나님의 뜻에 무관심했습니다. 그저 자기의 뜻을 관철하기 위한 것일 뿐, 하나님 없는 신앙입니다. 그들은 예레미야를 박해함으로써 하나님을 거부하고 그의 말씀을 반박하기도 합니다.

자신을 거부하는 이스라엘에 직면하여 하나님은 이제 더 이상 그들을 위해 부르짖지도 간구하지도 말라고 예언자에게 말씀하시기에 이릅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자기를 고집하고 하나님을 거부하고 적대할 수 있는 우리입니다. 신앙의 이름으로 그리할 수 있는 우리입니다. 자연과 인간을 끊임없이 착취하고 맘몬의 질서에 종속되기를 강요하는 우리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정의와 생명으로의 부르심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께로 돌이켜 새로운 살림의 질서를 살고 관철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빕니다.

자기 자신과 현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하나님에 대한 적대는 예수에게서 계속되고 예수를 희생시키기에 이릅니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생긴 것이 아니며, 더 나아가 인자 곧 사람이 안식일의 주인임을 선언하심으로써 안식일의 잃어버린 목표를 되돌려 주십니다. 생명 살림을 위해 생겨난 안식일을 비롯한 제도가 오히려 생명을 질식시킬 때 예수께서는 그 굴레를 벗기고 사람을 그 위에 세우십니다. 사람을 물화하고 수단화하고 억누르는 그 질서를 전복하십니다. 구원이며 창조 질서의 회복입니다.

옛 질서를 유지하려는 세력은 예레미야를 박해했던 자들처럼 예수를 죽음으로 몰아갑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그들은 옛 질서의 유지에 성공했다고 생각했으나, 예수의 십자가는 사랑과 생명의 길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몰아간 듯 보였으나 예수께서 십자가를 향해 달려가셨습니다. 사람을 억압과 폭력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그 사랑을 십자가 위에서 보여주십니다. 사람됨이 회복되는 새 질서를 십자가 위에서 이루십니다.

십자가는 예수의 십자가일 뿐 아니라 오늘 우리의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예수와 함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들입니다. 그 때문에 탐욕과 맘몬의 질서에 종속될 수 없는 우리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날마다 자기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한다고 고백했듯이 이는 저절로 되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안의 탐심을 부추기고 탐욕을 이용하는 이 시대를 거부하는 싸움이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탐심의 지배를 거부하며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살림의 질서를 오늘 살 수 있기를 빕니다. 하나님의 해방과 회복의 역사를 말살하려는 세력 앞에 굴복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믿음과 사랑으로 이기는 우리가 되기를 빕니다.

이경훈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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