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1889. 1, 아를, 캔버스에 유채, 51×45cm, 쿤스터하우스, 취리히)

빈센트는 고갱과 자신의 관계를 르네상스의 문을 열어 ‘최초의 근대인’이라는 이름을 얻은 페트라르카(1304~1374)와 인문주의자 보카치오(1313~1375)처럼 생각했다. 자신과 고갱이 함께 하면 예술의 새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하였다. 고갱이 아를의 노란 집에 오기를 갈망한 빈센트의 마음은 그만큼 순수했다. 고갱도 그런 마음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고갱의 그림은 테오의 화랑을 통하여 인기를 올리고 있었다. 이는 빈센트가 동생에게 고갱의 그림을 사라고 설득한 탓이다. 고갱은 아를의 노란 집에 가라는 테오의 요청을 미루고 미루다 결국 돈 때문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빈센트에게 고갱은 배울 것이 많은 선배였고, 고갱에게 빈센트는 유력한 화상의 보잘것없는 형에 불과하였다.

고갱의 눈에 비친 빈센트는 그림을 그린다고는 하지만 특색도 없고 기대할 것도 없어 보였다. 빈센트는 고갱이 오래(영원히) 아를에 머물 줄 알았다. 고갱은 애초부터 아를의 노란 집에 오래 머무를 생각이 없었다. 돈이 마련되면 곧 떠날 속셈이었다. 두 사람은 성격은 물론 기질과 생각이 서로 달랐다. 거만하고 자신감 넘치는 고갱에 비해 빈센트는 외로움에 익숙하고 고뇌할 줄 아는 화가였다.

1888년 12월 초순 추운 날씨 탓에 두 사람은 실내에서 그림을 그렸다. 고갱은 해바라기를 그리는 고흐를 그렸다. 우정의 그림이라고 하였으나 빈센트는 자신을 모독했다고 생각했다. 그 후 성탄절 무렵 찬 겨울비가 내려 하루 종일 실내에 있던 그들은 여느 때처럼 사소한 언쟁으로 서로 기분이 상했다. 게다가 빈센트는 독한 술 압생트를 계속 마신 상태였다.

이날 저녁 빈센트는 자신의 귀를 잘랐다. 이튿날 아침 경찰이 노란 집을 찾아왔을 때 빈센트는 엉망이 된 침대에 있었다. 질겁을 한 고갱은 서둘러 아를을 떠났다. 두 사람은 그 후 다시 만나지 못했다. 꼭 두 달간의 동거였다. 고갱과 함께라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예술가 공동체의 꿈은 그렇게 깨졌다. 동상이몽이 성공하는 예는 없다. 병원으로 이송된 빈센트는 간질, 알코올 중독, 정신분열증 등의 진단을 받았다.

선의의 경쟁자가 있어야 피차 발전한다. 하지만 경쟁자와 하나가 될 수는 없다. 세상에는 경쟁자를 적으로 아는 이가 많고, 적을 동반자로 생각하는 정신 나간 이들도 있다. 적이라고 하여도 선의의 경쟁자로 여기는 안목을 가질 필요가 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이는 동반자인가, 경쟁자인가? 아니면 적인가? 혹 동반자를 적으로 간주하고 있지는 않은가?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최광열(기독교미술연구소 연구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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