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CCL교회력 누가복음 다해 ‘정의의 성령님’의 해

오늘은 창조절 첫째주일이자, 재일동포선교주일, 그리고 개척선교주일입니다. CCL교회력으로 누가복음이 주제인 다해 ‘정의의 성령님’의 해입니다. CCL교회력은 ‘최병학 목사의 그리스도론적 주일성서일과(Choi’s Christologic Lectionary, 2021)’의 약자입니다. 지난 2021년 9월 코로나 자가격리 기간 중, 하나님께서 저에게 교회력과 성서일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셔서 각 복음서를 중심으로 4년 동안 전체 신구약 성서를 다 살펴볼 수 있는 주일 성서일과(52주×4년)를 만들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CCL은 삼위일체교회력과 RCL(Revised Common Lectionary, 개정공동성서일과)의 장점을 취합한 교회력 성서일과입니다. 절기에 창조절을 넣고, 삼위일체 신론 중심 교회력이며, 성서일과로는 네 복음서를 중심으로 ① 구약과 ②복음서, 그리고 ③ 사도행전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세 본문을 4년 한 주기로 합니다. 이것은 RCL의 기독론적 관점을 취한 것입니다. 그러나 매년 돌아가는 절기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였습니다(창조절 → 대림절 → 성탄절 → 주현절 → 사순절 → 부활절 → 성령강림절 → 창조절).

특히 각 해의 주제를 ‘가’해는 마태복음 중심 ‘생명의 하나님’, ‘나’해는 마가복음 중심 ‘평화의 예수님’, ‘다’해는 누가복음 중심 ‘정의의 성령님’, 마지막 ‘라’해는 ‘사랑의 교회 공동체’로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회 공동체라는 주제를 설정하여 주일 세 본문 말씀이 구성됩니다. 시편은 교독문으로 전환했기에 세 본문에는 넣지 않았습니다.

사실, 세 본문 설교는 절기별 특성과 성경 전체를 알아갈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특히 구약에 나타난 성부 하나님과 복음서의 성자 예수님, 사도행전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령 하나님의 교회를 통한 놀라운 역사를 구조화하여 아주 체계적이며 조직신학적인 설교 본문 말씀이 구성됩니다. 한국교회가 말씀으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교회력 중심 세 본문 설교가 활성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이 창조절 첫째주일이라 말씀드렸는데, CCL은 9월 첫 주부터 시작되는 성부 하나님의 절기인 창조절기를 한 해의 시작으로 봅니다. 이후 11월 말이나 12월 초 대림절을 시작으로 성자 예수님의 절기가 성탄절, 주현절, 사순절, 부활절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이어지는 성령강림절기는 성령 하나님의 절기가 됩니다. 그러나 기독론 중심 교회력에서는 대림절부터 성령강림절까지를 축제기간(약 26주)이라고 하고, 성령강림절 이후 대림절까지를 비축제기간(약 26주)으로 나눕니다. 아무튼, 삼위일체 중심이건, 기독론 중심이건, 교회력 절기와 세 본문 말씀은 한해를 삼위일체 하나님, 혹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2. 재일동포선교주일, 교토국제고의 일본 전국 고교야구선수권대회 우승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오늘은 재일동포선교주일이기도 합니다. 제가 지난 8월 21일부터 27일까지 일본 나고야와 교토, 오사카를 방문했습니다. 특히 나고야 난잔대학 종교문화연구소 김승철 소장님을 만났는데, 종교와 과학(특히 생물학), 엔도 슈사쿠의 소설(중간문학과 추리소설 등), 교토 학파와 중국 불교(작년 5월부터 올해 4월까지 안식년 때 대만에서 연구하신) 등 소장님의 관심 분야를 여쭙고 들었습니다. 저는 종교와 과학(특히 현대 물리학과 양자역학), 해체주의 신학자 마크 테일러의 후기사상, 신유물론과 포스트휴먼, 챗GPT와 tlooto(논문쓰는데 도움을 주는 챗GPT), 그리고 교회력 세본문 설교에 관해 말씀드렸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교회력 성서일과 내용입니다.

▲ 난잔대학교 종교문화연구소 김승철 소장님과 함께한 필자

소장님과 함께 가을이 몇몇 낙엽 선발대로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학교 교정을 걸으며 인생과 삶을 나누고, 연구소 도서관과 책들을 소개받았습니다. 특히 소장님의 신학적 사유의 깊이만큼 인품의 넓이도 맛보았습니다. 저녁과 차는 보너스였습니다. 돌아보니, 세월은 소장님도 비껴가지 않았습니다. 건강을 위해 기도하며 종교와 신학의 아름다운 결실이 일본은 물론, 한국과 아시아 신학에 크게 이바지하시기를 소망하였습니다.

이후 나고야를 떠나 교토 학파의 본산지인 교토 대학과 동지사 대학(윤동주 시인과 정지용 시인의 시비가 있는)을 방문했습니다. 이렇게 학교 방문이 끝나고, 23일 아침 일찍 교토에서 유명한 후시미 이나리 신사를 보러 나섰습니다. 신사 쪽으로 올라가는 도중 도로에 학생들을 실은 관광버스 수십 대가 지나갔습니다. 관동제일(간토다이이치)고 학생들을 실은 버스였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8월 23일) 열린 일본 전국 고교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 결승전을 응원하러 교토에 온 학생들이었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결승전에서 교토국제고가 관동제일고를 꺾고 우승하여 일본 교토는 물론, 한국도 난리가 났습니다. 오늘이 재일동포선교주일인데, 귀한 선물을 받은 것 같습니다.

교토국제고는 교토시 히가시야마구에 위치한 국제학교입니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산하 단체 학교법인 교토국제학원이 운영하고 있는데, 한국어·영어·일본어·중국어 등 다양한 언어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재일교포들이 민족 교육을 위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1947년 설립한 ‘교토조선중학교’인데, 1958년 한국 정부의 인가를 받았고, 2000년대 초반 학생 수급 및 재정 등의 문제로 2003년 교토국제학교로 바꾸고 일본에서도 정식 학교 인가를 받아 순수 일본인 학생의 입학도 받고 있습니다. 민단 산하 단체가 학교 운영을 맡고 있기에 과외활동으로 한국어, 한국사, 한국 문화 교육을 하고 있으며 교가 역시 한국어 가사입니다.(1) 교토국제고의 우승으로, 일본에 있는 재일동포들은 물론, 우리에게 큰 힘과 용기를 준 경기였습니다.

▲ 2024년 8월 23일 일본 전국 고교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 결승전에서 교토국제고가 간토다이이치고를 상대로 2-1 승리를 거둬 우승을 차지

3. 플라이트 셰임, 미트 셰임(부끄러운 비행, 부끄러운 육식)

서론이 길어졌지만, 이렇게 일본을 다녀오면서, 최근 유럽의 ‘플라이트 셰임(Flight Shame)’ 운동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플라이그캄(Flygskam)’이라고도 하는 이 말은 “항공기가 발생시키는 환경적 영향을 줄이기 위한 반(反)비행 사회 운동”을 뜻합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부끄러운 비행’으로 번역될 수 있겠습니다. 이 운동은 지구온난화가 심각한 때에 비행기를 타는 데서 느끼는 죄책감과 수치스러움을 이르는 말입니다. 

최근, 우리나라에 코로나 감염 환자가 늘었는데, 코로나 팬데믹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기후의 이상 변화가 나타난 지금, 앞으로 더 위험한 코로나의 등장도 예상됩니다. 그런데도 최근 국내외 항공 및 여행의 붐이 일고 있습니다(저 역시 이 비난을 피해갈 수 없지만). 코로나를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 플라이트 셰임, 미트 셰임 운동

그러나 자동차를 안 타는 것보다 소고기를 ‘안 먹는/줄이는 것’이 지구온난화 현상을 더 잘 막습니다. 많은 사람이 기후위기를 걱정하며 소고기를 먹는데, 이것이야말로 아이러니의 극치입니다. 왜냐하면, 육식이 지구온난화의 주범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TV 방송은 너도나도 먹방을 통해 고기의 육질을 보여주며 육식을 장려합니다. 아시다시피, 소는 되새김질하면서 메탄가스를 발생시킵니다(90% 이상을 트림으로, 나머지 10% 미만은 방귀로 배출). 이 메탄가스는 온실효과가 아주 심각합니다. 대기 중의 열기를 가두는 효과가 이산화탄소보다 80배 이상이라고 합니다.

놀라지 마세요. 소 한 마리가 트림이나 방귀로 하루에 배출하는 메탄가스의 양은 최대 500ℓ. 소형차 한 대의 1일 배출량과 맞먹습니다. 이렇게 소를 비롯한 전 세계의 가축들이 배출하는 메탄가스는 온실가스 중 18%에 이릅니다. 모든 교통수단에서 배출되는 가스(13.5%)보다 높은 수준입니다. 통계를 보면, 소처럼 되새김질하는 가축의 수는 2014년 32억 마리에서 2023년 현재 280억 마리까지 늘었습니다. 엄청납니다. 9년 새 9배 이상 육류 소비를 늘린 셈입니다. 물론, 소의 트림과 방귀에서 메탄가스를 줄이려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소화가 잘되는, 그래서 되새김질하지 않은 식재료도 만들어야겠죠? 또한, 뉴질랜드처럼 소, 양 등 가축이 트림으로 배출하는 메탄에 세금을 매기는 방법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육식을 줄이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올해도 그렇지만, 해마다 평균 기온이 상승하고 날은 점점 더워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집집마다 에어컨을 돌리며 대기 중 온도 상승을 유발합니다. 복날 때면, 육식하러 사람들이 에어컨 빵빵한 식당으로 쳐들어갑니다. 어떻게 보면 미쳐 돌아가는 세상입니다. 또한, 휴가 때 피서지로 떠나기 위해 비행기를 탑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습니다. 그동안 억눌렸던 욕망을 한꺼번에 배출합니다. 그래서 유럽의 ‘플라이트 셰임’ 운동이 대단해 보입니다. 여기에 ‘미트 셰임(부끄러운 육식)’을 추가한다면 세상은 놀랍게 변할 것입니다. 그러나 쉽지가 않습니다. 사람들은 제 욕심대로 살 것이며 세상은 심판을 향하여 열심히 노를 젓고 있기 때문입니다.

4.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오늘 창조절 첫째 주일 말씀은 이렇게 미쳐 돌아가는 세상이 멸망하고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보여줍니다. 바로 노아를 통한 구원의 새로운 역사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창조하신 세상을 파괴합니다. 아니, 오히려 하나님을 가지고 장사합니다, 따라서 사도행전 말씀은 오늘날의 교회와 같이 종교를 이용해 장사하는 데메드리오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비판도 먼저 자신을 돌아볼 때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잘 아시고 비판하지 말라.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먼저 빼야 형제 눈 속의 티를 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새 창조의 시작은 이렇게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남을 헤아리는 그 헤아림에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구약 말씀부터 볼까요?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창 6:13-16)

방주의 구조에 관한 설명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방주를 만들라 하신 것은 노아의 시대가 악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앞부분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창 6:5-6)”라고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땅 위에 생명 있는 모든 육체를 멸하십니다. 심판이죠? 그러나 노아와는 언약을 맺습니다. 새 창조의 시작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1508-1512) <대홍수>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노아가 그와 같이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창 6:17-22)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양식을 준비하게 하고 혈육 있는 모든 암수 한 쌍씩의 생물을 방주에 들이라고 합니다. 심판 이후 재창조의 밑천입니다. 이렇게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인류의 역사는 ‘창조→타락→심판(재창조)’의 역사입니다.

5. 집이 없는 시대의 서로 주체성

『나와 너』로 유명한 대화의 철학자 마르틴 부버의 말년 사상이 담겨 있는 책, 『인간의 문제(Das Problem des Menschen, 1943)』(길, 2007)는 집, 혹은 고향에 관한 사유입니다. 부버는 칸트의 물음 가운데,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춰 서양철학사 전반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며 철학적 사유의 중심에 ‘인간’이 놓여야 함을 주장합니다. 곧, 인간의 ‘이성’ 대신 ‘인간’이 중심이 된 철학적 인간학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버는 서양철학사를 ‘집이 있는 시대’와 ‘집이 없는 시대’로 구분하며 각 시대에서 인간이 어떻게 자기 인식의 인간학적 문제를 성찰했는지를 살펴봅니다. 여기서 ‘집이 있는 시대’는 오늘 말씀의 맥락에서 창조와 재창조에 해당하죠?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집이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주시니 집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집이 없는 시대’는 타락과 심판이 됩니다. 왜냐하면, 인류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집을 불태웠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부버는 플라톤부터 헤겔까지를 집이 있는 시대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집이 있기에, 인간의 문제는 그저 형이상학(아리스토텔레스)과 종교철학(아우구스티누스, 스피노자, 칸트), 역사철학(헤겔)의 맥락에서 부수적으로 다루게 됩니다.

이후, 집이 없는 시대는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선언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니체의 이 선언은 이전 철학사의 형이상학, 종교철학, 역사철학의 해체입니다. 부버는 이때 부수적으로 다루어진 인간학이 비로소 자립성을 회복했던 시기라고 합니다. 철학적 인간학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 위대한 사상가들은 니체, 포이에르바하, 마르크스, 키르케고르, 하이데거, 셸러 등입니다.

그러나 부버는 근대의 철학적 인간학을 ‘개인주의적 인간학’과 ‘집단주의적 인간학’으로 구분합니다. 전자에는 키르케고르, 하이데거가 있고 후자에는 마르크스가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부버는 ‘사회’만을 분석하여 ‘인간 일반’을 놓친 마르크스의 집단주의를 비판합니다. 물론, ‘집단’을 놓치고 ‘인간’만을 분석한 실존주의도 꼬집습니다. 가령, 키르케고르는 인간의 ‘실존적인 자기 관계’만을 고집하는 바람에 ‘신을 향해 열린 개별자의 실존적인 자기 관계’만을 제시한 오류가 있고,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는 개인주의로, ‘닫힌 체계’라고 비판합니다(물론, 하이데거의 실존이 존재 자체를 향해 열린 개방성임은 부인하지 않습니다만).

조금 더 살펴볼까요? 부버는 하이데거가 강조하는 존재(Dasein)가 인간관계의 대화적 본질을 진정으로 인식하지 못한다고 주장합니다. 가령, 하이데거의 실존적 분석에 따르면, 존재는 근본적으로 고립된 존재로 묘사되며, 개별 존재와 존재(Sein)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춥니다. 부버는 이러한 접근이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며, 인간 경험을 형성하는 대인 관계를 간과한다고 비판합니다. 따라서 부버는 인간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너’ 관계가 핵심이라고 주장합니다. 부버의 주저가 『나와 너』인 것 아시죠? 이러한 대화 원칙은 개인들 간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는데, 부버는 이를 통해 진정한 인간 존재를 파악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부버가 특히 관심을 두는 것은 파스칼입니다. 『팡세』에서 파스칼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 무한한 우주 어디에도 돌아갈 집이 없는 인간에 관한 진지한 사유를 미리 선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부버의 대안은 무엇인가요? 마지막 장인 제2부 4장 ‘전망’에 잘 나와 있습니다. 앞서 하이데거 비판에도 나왔지만, 바로 ‘사이존재(Zwischensein)’입니다. 사실 인간은 나와 너 ‘사이’의 열린 공간에서 ‘사이의 영역’ 자체로 존재합니다. 한자 인간(人間)의 사이(틈) 간(間)이 바로 그 의미죠? 이것을 전남대 철학과의 김상봉 교수는 ‘서로주체성’이라고 표현합니다.(2)

결국, 인간은 대화를 통해 서로 삶을 나누는 것이 본질적이라는 것입니다. ‘집이 있는 시대’는 이러한 대화가 필요 없었습니다. 그러나 ‘집이 없는 시대’는 ‘사이존재’의 서로 간의 대화가 중요합니다. 그것이 허무를 견디는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집을 찾는 용기를 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창조→타락→심판과 재창조’의 순환하는 역사 속에 인간 관계의 중요성을 보여주죠? 이것은 다른 말로 헤아림의 중요성입니다.

6. 헤아림이 없는 세대, 형제 눈의 티보다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따라서 헤아림이 없는 세대는 타락하고 심판을 받습니다. 오늘 사도행전 본문 말씀은 헤아림이 없는 이를 보여줍니다. 그것도 종교의 이름으로! 그는 바로 데메드리오입니다. 소아시아 에베소에서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드는 은 세공업자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전도 여행을 통해 에베소에서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복음을 전하자, 자신의 생업에 타격을 입습니다. 이렇게 경제적인 타격을 입자, 사람들을 선동하여 소요를 일으킵니다. 말씀을 볼까요?

“그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그가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행 19:23-27)

아데미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르테미스(Artemis)입니다. 로마 신화에는 디아나(Diana, 영어식으로 읽으면, 다이아나)입니다. 제우스와 레토의 딸로, 헬라의 12여신 중에 가장 으뜸가는 신입니다. 그리스로마 신화를 보면, 태양과 음악, 치료의 신인 아폴론과 쌍둥이입니다. 처녀의 수호신이며 출산과 풍요를 주관하는 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울은 3차 전도 여행 때, 3년 동안 에베소에 머물면서 두란노 서원에서 말씀을 강독하였는데, 당시 에베소 시민들은 다산과 풍작을 기원하며 아데미를 섬겼습니다. 아데미의 신전은 가로 120m, 세로 60m의 거대한 신전입니다. 그리고 이 신전 주위에 아데미 신전의 모형을 파는 자들이 있었는데, 수입이 아주 좋았습니다. 지금도 유명한 관광지에 가면 기념품을 팔죠?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때문에 기념품이 팔리지 않자, 데모드리오는 사람들을 선동합니다. 이에 흥분한 사람들은 바울의 일행 가운데,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잡아 연극장(비극 공연장)으로 달려갑니다. 그러나 에베소 시청 서기장이 이 소요는 불법 소요이므로 자칫하면 자기들이 고발을 당할 염려가 있다고 설득하여 그 모임을 해산시킵니다. 말씀을 볼까요?

▲ 에베소 지역의 대규모 반원형 극장의 현재 모습, 이곳에서 데메드리오가 소란을 일으켰습니다. 발굴은 1869년 대영박물관의 후원으로 우드(J.T. Wood)에 의해 진행되었으며 에베소의 중앙에 있는 피온 산(Mt. Pion) 서쪽 경사면에 있는 우묵한 지역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서쪽으로 1km 정도 떨어져 있는 항구를 정면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연극장의 크기는 지름이 대략 50m이며, 약 25,000명 정도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 청중들을 위해 마련된 좌석은 반원이 좀 넘는 둥근 대리석으로 된 것으로서, 22열로 된 층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붙잡아 왔으니, 만일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고발할 것이 있으면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할지라.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는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자료가 없다 하고,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행 19:35-41)

서기장이 상식 있게 대처했습니다. 35절을 공동번역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에페소 시민 여러분, 이 에페소 시가 위대한 여신 아르데미스의 신당과 제우스 신의 아들을 숭배하는 도시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개역개정은 우상의 신전지기로 번역했지만, 결국 서기장은 에베소가 아데미와 제우스를 숭배하는 우상의 도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죄에 관한 판단은 이렇게 감정적으로 하면 안 되고, 민회(έκκλησία, 고대 그리스의 여러 폴리스에서 개최된 시민 총회)에 고소하여 판결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서기장은 복음서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었나 봅니다. 복음서 말씀을 볼까요?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 6:37-38)

이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덧붙이십니다.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눅 6:39-4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집이 있는 시대(창조와 재창조 시대)이건, 집이 없는 시대(타락과 심판의 시대)이건, 사이존재로서 서로 헤아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헤아림이 동물과 식물까지 이어질 때, 제대로 된 창조절기를 보낼 수 있습니다. 그런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종교인문학연구소 소장)  hak-99@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