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 지도라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Getty Images

독서중심의 학교 특색사업은 개별화 독서지도였다. 창체시간처럼 독서시간이 지정되어 있는데, 그 시간에 아이들을 하나하나 불러서 담임이 독서에 관련된 조언, 지도를 해 주는 것이다. 다들 이 시간에 아이들이 읽고 있는 책의 목록을 확인하고 어떤 분야의 책들인지 분석해서 가급적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도록 조언을 해주는 시스템이었다.

예를 들어 과학관련 책을 많이 읽는 친구는 역사나 철학, 문학쪽도 읽으라고 조언해주고 적당한 책도 추천해주는 방식이다. 보통 이렇게 하면 34명의 아이들을 1시간 안에 지도할 수 있고 이렇게 아이들을 몇 회 지도했느냐를 실적으로 해서 교장이 매월말에 보고를 받았다.

그러나 나는 좀 생각이 달랐다. 그렇게 1분도 안되는 시간동안 아이들 읽는 목록 확인하고, 그걸 독서지도 했다고 횟수 기록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아이들의 독서능력과 논리적 사고를 기르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제대로 독서지도를 하기 위해 난 아이들에게 글을 쓰게 했다. ‘한 권을 읽어도 제대로 읽고 생각하자’는 취지였다. 한 시간에 8명 정도를 상담했고, 이들과 좀 더 깊이 있게 책에 대해 대화하며 논술 첨삭지도를 했다. 이렇게 지도하니 아이들 기준에서는 주1회 정도 개별 독서상담을 받게 되었지만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만족도는 대단히 높았다.

어느날 교장이 나를 불러서 몰아세웠다. 독서상담 실적이 왜 이리 저조하냐고. 너 빼고 모든 학급은 아이들 기준에서 주3회, 월 10회정도의 상담을 하고 있는데 너는 주1회 정도의 실적 밖에 나오지 않느냐고.

그래서 내가 지도하는 취지와 교육의 효과에 대해 설명하고, 아이들의 글이 발전해 나가는 것을 한 눈에 보여주는 독서록도 증거로 제시했다. ‘수치’가 아닌 ‘내용’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하지만 교장의 대답은 단호했다.

“우리는 그 ‘수치’가 중요합니다. 선생님 멋대로 하지 마세요. 제 지시대로 ‘실적’을 올리는 데 중점을 두세요.”

하지만 점점 발전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논술과 첨삭지도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약간의 타협을 봤다. 양심에는 좀 찔리지만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독서와 글쓰기 첨삭을 기존처럼 하되 보고서에는 1시간에 34명을 다 한 것으로 허위기재했고, 그렇게 몇 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나름 평화롭게 흘러가던 어느날, 동료교사로부터 인터폰이 왔다. ‘지금 교장이 1층 도서관 앞에서 선생님 뒤를 캐고 있다. 아이들 몇몇 불러서 독서상담 몇 회했냐고 물어보고 있으니 참고로 알고 있으라’는 메시지였다. 뭐 또 교장실가서 갈굼 당하겠거니 생각하고 미술실에 갔던 아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는데, 평소 내 ‘친위대’ 노릇을 자처하던 여학생 하나가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한다.

“선생님, 교장 선생님이 저 불러서 이번 주 독서상담 몇 번 했냐고 막 물어보던데요?”
“뭐 교장님은 당연히 그럴 수 있지, 그래서 어떻게 대답했어?”
“그게요,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어요. 좀 무섭기도 하고”
“그냥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되지, 뭐가 무서워.” (웃음)
“왠지 솔직하게 말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일단 3번 했다고 대답했어요. 작년에 하던 것처럼요.”

이 이야기를 들으니, 말그대로 폭소가 빵 터졌다. 

“오케이, 고마워. 거짓말은 나쁜 것이지만 니 덕분에 내가 좀 살았네.” (웃음)

아이에게 거짓말을 시키거나 가르친 적은 없다. 그러나 그 거짓말 덕분에 짜증나는 상황을 모면했고 그것이 또 고맙게 느껴지는 이 상황에서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할지 난감했다. 그리고 이 학교에서의 내 남은 시간이 점점 더 짧아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홍경종 교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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