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해 세워진 거짓 평화와 부를 허문 자리에 하나님께서는 새순이 돋게 하신다. ⓒGetty Images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심판으로부터 구원으로의 전환이 일어나고 새 질서가 시작되는 장면을 봅니다. 역사의 주로서 야훼께서 행하신 일입니다. 야훼는 민중을 짓밟아 권력과 부를 축적하고 민중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제도화하는 이스라엘의 지배계층에게 심판을 경고하셨지만 그들은 야훼께 돌아오기를 끝내 거부하고 불의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야훼는 진노를 거둘 수 없었고 심판의 손을 계속 들고 계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야훼는 마치 벌목꾼이 도끼로 나무를 찍어 넘기듯 이스라엘을 넘어뜨리고, 빽빽한 숲 같던 이스라엘을 황량한 벌판과 같게 만드십니다. 준엄하고 철저한 심판입니다.

그러나 심판은 야훼의 최종 행동이 아닙니다. 그 심판 속에도 야훼의 구원 계획이 깔려 있습니다. 새로운 미래를 부르고 새 질서를 수립하기 위한 심판입니다.

야훼는 죽은 줄만 알았던 나무 밑동에서 싹이 돋게 하십니다. 더 이상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곳에서 우리에게 희망의 끈을 쥐어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어쩌면 보잘것없어 보여 지나쳐 버릴 여린 새순에서 희망을 발견하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심판의 이유가 법과 정의를 왜곡하고 민중을 억누른 지배계층에 있었기 때문에, 야훼는 다윗 가문 출신의 정의로운 통치자의 등장을 예고하며 새 시작을 알리십니다. 전에 다윗이 그랬듯이 그에게도 야훼의 영이 깃들어 있어서 그는 야훼를 알고 야훼를 경외하며 지혜로 공의로 다스릴 것입니다. 그는 야훼 경외를 자신의 즐거움으로 삼고 자기 뜻을 야훼의 뜻에 일치시키며 약자의 권리를 세워 주고 약자를 억압하는 악한 세력을 엄히 심판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야훼의 심판이 그저 눈먼 심판이 아니라 약자의 울부짖음에 대한 야훼의 응답임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높은 나무와 같은 자기의 위풍당당함을 자랑하지만, 그것은 야훼께서 보시기에 약자의 살과 피를 양분 삼아 자란 나무일 뿐이었습니다. 야훼는 그 잘못 자란 나무를 모두 베어 내고 새싹부터 다시 시작하십니다.

이 세상 질서를 부정하시고 인애와 정의와 공의 위에 새 질서를 세우십니다. 이러한 야훼의 뜻으로 충만한 새로운 다윗의 통치가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그 통치는 인간과 인간 사이를 넘어 인간과 자연 사이에 온 세계에 화해와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성서가 내다보는 세상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전설 속에나 나올 법한 모습이지만, 그 세상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재판을 바르게 하고 약자의 권리를 되찾아 주는 것으로 시작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가까이 있으며 우리 안에서 그 희망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이 세상 안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이지만 우리 속에 씨앗이 뿌려지고 자라서 열매 맺을 세상입니다.

새로운 다윗의 통치로 열린 새 세상은 또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인 뜻인 인애로 정의를 행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또 우리 역사에서 보듯이 새로운 세상은 그 세상에 대한 민중의 참여 없이는 그 질서가 요구하는 새로운 생활방식을 따르지 않고서는 온전히 수립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장래의 정의로운 통치자에 대한 예언이 나자렛 예수에게서 성취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또한 그 세상의 완전한 도래를 갈망하며 예수의 오심을 기다립니다. 새로운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자기의 뜻으로 삼았듯 예수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오직 그를 보내신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만을 말합니다.

또 예수는 그의 양식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그의 일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합니다(요 3,34). 예수는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복종 안에서 살며 자기 목숨을 바쳐야 할지라도 그렇게 합니다. 예수의 말씀과 활동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합니다.

예수의 삶은 한 인간의 독자적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대한 복종의 열매였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명령이 생명의 근원이며 영원한 생명을 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그 명령에 대한 복종으로부터 생명을 얻었고 우리 또한 예수 안에 머물며 생명을 얻습니다.

바울의 말로 하면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이제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입니다(갈 2,20). 자신의 정욕과 탐심이 아니라, 타자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신 그리스도를 따라 사랑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희망을 낳고 생명을 풍성케 하고 온 세상을 살리는 정의와 공의를 이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참 좋다 경탄하셨던 처음 세상으로의 회복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폭력과 억압과 거짓으로 점철된 역사를 청산하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람과 하나님이 서로 어우려져 사는 해방과 평화의 시대를 갈망합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그 새로운 세상이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음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이들은 그 앎으로 세상을 바로 보고 그 앎으로 행동하는 이들입니다. 그 앎으로 우리의 믿음을 견고히 하며 지금 여기서 해방과 평화의 세상을 사는 우리가 되기를 빕니다. 그 세상에 동참하도록 우리를 간절히 부르시는 하나님께 응답할 수 있기를 빕니다. 여기서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살며 빼앗기고 억눌린 사람들과 자연을 보듬고 일으켜 주며 생명을 풍성케 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빕니다.

이경훈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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