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채수일의 ‘기고만장’입니다.

오늘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대화를 통해서 서로에게 배우고, 서로를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대화의 주제 가운데 하나인 두 종교의 신비주의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이슬람에서는 신비주의를 ‘수피주의’라고도 표현합니다. 아랍어 ‘양모’를 뜻하는 어근 ‘수프’에서 파생된 단어인데요, 본래 양털 옷을 입고 청빈과 금욕을 실천하는 신비주의자들을 통칭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초기 수피주의에 있어서 하나의 중심적 주제는 ‘가난’(파크르)이었습니다. 수피들은 ‘파크리 파흐리’(나의 가난은 나의 자랑이다)라고 한 예언자의 말을 귀감으로 삼았습니다. 수피 중 한 사람은 ‘누가 수피냐?’라는 질문을 받자,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으며, 누구로부터도 소유당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대답했습니다.(1)

비록 후기에는 많은 빈자들이 영향력 있는 지주로 변했고, 초창기의 금욕적 이상과는 정반대로 지배계층과 결탁하기도 했지만 물질적인 가난은 오랫동안 수피들이 추구하는 이상으로 남았습니다. 신에 대한 ‘절대적 신뢰’(타와쿨)가 내면화되었듯이 가난도 내면화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일부 수피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한 점의 후회도 없이 일순간에 자신의 모든 재산과 결별을 선언할 수 있는 부자의 정신적 수준이 자신의 가난을 꾸준히 참아내는 가난한 사람의 그것과 같다고 주장했습니다.(2)

‘나프스’, 즉 ‘저속한 영혼과의 끊임없는 투쟁’ 속에서는 가난과 단식, 철야기도, 또는 침묵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자기반성이 요구됩니다. 지상적인 재물에 대한 집착보다 더 나쁜 것은 거만, 자만 그리고 명예와 칭송에 대한 애착입니다. 칭찬이든 비난이든 다른 사람의 반응에 신경을 쓴다는 것은 그 수피가 아직 진정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목적은 무엇보다도 ‘리다’(만족), 즉 무엇이 주어지든 그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수용하는 자세입니다.(3)

수피즘에서 주목할 것은 신인식입니다. 한 사람이 수피인 우라이얀에게 “당신은 신과 어떻게 지내는가?”라고 묻자 그는 “나는 그를 알게 된 날부터 그로부터 얼굴을 돌리지 않았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당신은 그를 언제부터 알았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그들이 나를 미쳤다고 부른 날부터’라고 대답했습니다.(4)

이슬람 수피즘은 믿음에는 네 가지 요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한 없는 합일’, ‘중단 없는 회상’, ‘묘사 없는 상태’, ‘순간 없는 황홀’이 그것입니다. 여기서 ‘순간 없는 황홀’은 모든 순간에 신에 대하여 명상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5)

8세기 중엽, 순수한 사랑의 신비주의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은 이라크 ‘바스라의 라비아’(Rabia of Basra, 797-861)라는 여성이었습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된 그녀는 수피 스승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한 손에는 물동이를, 다른 한 손에는 횃불을 들고 바스라의 거리에 나타났습니다. 무슨 일이냐는 질문에 대해 그녀는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지옥에 대한 두려움이나 천국에 대한 희망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 분의 영원한 아름다움을 사모하여 기도하도록 지옥에는 물을 쏟아 붓고 천국에는 불을 질러 그 두 개의 장막이 사라지도록 하려 하오.”

그렇게 대답한 그녀는 이런 기도를 남겼습니다:

“오, 주님, 제가 주님을 섬김이 지옥의 두려움 때문이라면, 저를 지옥에서 불살라 주옵시고, 낙원의 소망 때문이라면 저를 낙원에서 쫓아내 주옵소서. 그러나 그것이 주님만을 위한 것이라면 주님의 영원한 아름다움을 제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개별적으로 추종자들을 갖고 있던 수피즘이 교단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압둘 카디르 알 질라니(1166년 사망)와 더불어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설교자로서 바그다드에서 활동한 압둘 카디르는 수피 교단을 세우겠다는 생각을 결코 한 적이 없는 듯하나, 그의 제자들은 스스로 형제단을 조직했고, 그와 때를 같이해서 다른 수피 스승들도 잘 조직된 대규모의 추종자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공식적인 이슬람 속에서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교리주의와 율법주의로부터는 사실 거의 얻을 것이 없었던 독실한 무슬림들은 이들의 모임 속에서 그들이 정작 갈구하던 감성적인 종교성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수피 교단 안에서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매우 엄격했고, 스승은 제자들에게 ‘디크르’를 주었는데, ‘디크르’는 일정한 양식의 말로서 정기적으로 수천 번씩 반복하는 주문으로서 형제단 사이에서 차츰 핵심적인 영적 기술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디크르’는 알라라는 단어로 구성될 수도 있고, 신앙 고백문이나 주에 대한 찬미 혹은 주에게 용서를 구하는 형식을 취할 수도 있으며, 또는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서 99개의 가장 아름다운 하나님의 명칭 중 하나일 수도 있습니다. ‘디크르’는 큰 소리로 낭송될 수도 있고, 침묵 속에서 음미될 수도 있습니다. 수세기를 걸쳐 정교하게 다듬어진 호흡법과 함께 ‘디크르’는 제자들이 행해야 할 핵심적 의무이고, 스승의 의무는 제자에게 그의 영적 수준에 적합한 ‘디크르’를 정해주는 것인데, 이는 신성한 명칭을 수천 번씩 반복하는 경우 심리적으로, 또는 심한 경우 생리적으로도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6)

교단의 급속한 확산으로 수피주의는 점점 대중운동으로 성장했습니다. 수피주의가 절정에 이른 것은 13세기였습니다. 13세기는 이슬람 세계의 중심부와 그 동부 지역의 정치적 판도를 뒤엎은 몽골의 침략과 그로 인한 재난의 시기였는데, 이 때 수피주의도 전성기를 맞이했던 것입니다.

후기 수피주의의 최대의 거장은 스페인 태생의 이븐 아라비(1165-1240년)로서 그의 사상은 이후 모든 신비주의 계통의 서적을 주도했는데, 특히 ‘존재의 융합’(와흐다트 알 우주드) 개념은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나 이븐 아라비보다 약 반세기 뒤에 활약한 잘라루딘 루미(1207-1273)의 작품은 신비주의의 영감을 받은 모든 시인들의 보물 상자가 되었습니다. 부친과 함께 몽골의 침입을 피해 콘야로 피난한 루미는 부친의 한 제자를 통해 신비주의 전통에 입문합니다. 그리고 이어 1244년 유랑 중이던 동년배의 수피 무슬림, 타브리즈 출신의 샴스 타브리지를 만나면서 신비적인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무려 35,000 소절 이상의 운문이 이 두 성숙한 신비가의 특이한 만남과 이별로 인해 쏟아져 나왔습니다.

▲ 이슬람 수피주의 한 모습인 춤 ⓒhttps://unsplash.com/s/photos/sufi

샴스 타브리지가 홀연히 사라진 후, 루미는 마침내 자기 제자 후사무딘 첼레비(1284년 사망)의 요청으로 26,000 소절에 달하는 신비적이고 교훈적인 이행시 ‘마트나위’(Mathnavi)를 남겼습니다. ‘마트나위’는 페르시아어로 ‘영적 쌍둥이’를 의미합니다. 운율에 맞추어 쓴 이 ‘마트나위’는 13세기 당시 세상에 알려져 있던 모든 신비적인 관념과 사상을 총 망라한 일종의 백과사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273년 루미가 죽은 후 추종자들로부터 ‘페르시아어 꾸란’이라고 불리게 된 그의 ‘마트나위’는 페르시아어 권에서 신비주의적 작품의 교과서가 되었습니다.(7) 여기 몇 개의 시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이슬람 연구자인 안네마리 쉼멜은 이슬람 신비주의의 영향은 고도의 형이상학적 사변의 세계로부터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시골 아낙네들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뻗어 있으며, 현대 문명이 출현하기 이전에는 무슬림 사회 전반에 그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조금도 과장된 말이 아닐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8)

흥미로운 것은 이슬람 신비주의가 절정에 달했던 13세기, 루미와 동시대에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신비주의의 대가들이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독일의 베네딕토회 수녀이자 신비주의자였던 힐데가르트 폰 빙겐(Hildegard von Bingen, 1098-1179), 독일의 도미니코회 수사이자 신비주의자였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von Eckhart, 1260-1329) 등 많은 신비주의자들이 동시에 출현한 것이지요.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에 대해서는 별도로 공부할 시간을 갖게 될 것입니다만, 하나의 정신현상으로서 신비주의가 13세기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안에서 동시적으로 등장한 것은 단지 우연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중세의 가을에 등장하는 그리스도교 고전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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