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로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지만, 이스라엘의 운명은 하나님과 관계 맺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달려 있었다. ⓒGetty Images

사사시대는 사무엘이 그의 아들들을 삼았어도 실질적으로 그의 ‘스승이었던’ 엘리에게서 막을 내리고, 사무엘 시대에 왕정이 도입됩니다. 그 근본 이유는 안전입니다. 이스라엘은 사사 제도가 전쟁과 침략에 맞서 적절한 대응 수단이 되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이를 촉진시킨 것은 사무엘의 아들들이 사사로서 부패했던 점입니다. 이렇게 보면 왕정 도입에 대한 책임에서 사무엘도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새로운, 그러나 가지 않는 것이 더 좋았을, 체제로의 전환이 가져올 파장은 대단히 크고 그로 인한 생활환경의 변화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이스라엘의 태도는 완강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요구의 의미를 이스라엘이 자기를 버리고 자기가 왕이 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파악하십니다(삼상 8,7-8).

그렇습니다. 사사시대는 하나님이 왕이시던 때입니다. 지배계급이 없는 사회가 사사시대의 이스라엘입니다. 강압적인 공권력이 없습니다. 불평등이 없지는 않지만, 이를 조장하거나 심화시킬 요인은 비교적 적습니다. 상대적으로 평등한 사회였고, 그 중심에 야훼 하나님이 있습니다. 그는 군림하는 왕이 아니었습니다. 자율과 자주와 사랑과 평화와 평등의 보루였습니다. 불의와 억압을 추구하는 사람이나 집단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참으로 불편한 존재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왕으로서의 야훼와 평등한 삶을 포기할 만큼 이스라엘의 상황이 절박했던 것일까요? 주변 상황은 과거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통치에 불안을 느끼는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은 왕정요구를 못마땅해하는 사무엘을 달래주시며 그들에게 왕정요구의 의미와 결과를 알려주고 왕을 세워주라고 하십니다. 권력의 위임과 그에 따른 착취와  ‘종살이’가 왕정 성립의 한 결과입니다.

이에 따라 사울이 왕으로 선택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안전하게 살게 하신(삼상 12,11) 사사시대는 이렇게 진한 아쉬움을 남기고 마감되었습니다. 왕정치하에서의 삶은 과연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느냐가 당면 문제였고, 이에 대해 사무엘이 답을 내놓습니다.

왕을 구하는 것이 악을 더하는 것이었고(19절) 왕으로서의 야훼를 포기했어도 이스라엘과 그와의 관계가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아니 새로운 환경 하에서도 야훼는 여전히 그들의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왕이 모두 야훼의 말씀과 명령을 지킬 것을 요구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특이한 점을 볼 수 있습니다. 위의 절은 조건문인데, 결론부가 없습니다. 다만 짐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결론부는 듣는 사람에게 맡기고 경고로 바로 넘어가는 것은 그만큼 우려가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왕이 세워졌어도 왕을 포함해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을 떠나지 않기만 바라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왕을 요구한 것이 백성이어서 그럴까요? 이 단락 마지막은 너희가 계속 악을 행하면 너희도 너희 왕도 다 망할 것이라고 백성에게 방점을 둔 경고입니다. 왕의 존재와 영향력이 아무리 크다 해도 백성의 책임은 면제되지 않고 오히려 모두의 존폐가 백성에게 달려 있습니다.

현실적인 역학 관계가 어떻든, 적어도 본질적으로는 백성이 책임적 위치에 있습니다. 그 책임이 어떻게 이행되어야 하는지는 시대마다 지역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왕과 그의 권력은 전적으로 백성에게 의존해 있음을 마지막 구절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백성의 ‘선한 삶’에 의해 통제되는 권력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이렇게 왕으로서의 하나님의 뜻은 모든 형태의 권력을 꿰뚫고 실현될 것입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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