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이 없는 곳에 희망을 볼 수 있는 사회와 제도는 하나님의 보호장치이다. ⓒGetty Images

나오미는 룻의 시어머니로 룻기의 두 주인공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베들레헴 출신의 그의 가족은 오늘날의 말로 하면 ‘기후난민’으로 자기 땅을 떠나 옆나라 모압으로 갔습니다. 그래도 그 땅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 다수이니 나오미 가족은 나은 편이라고 하는 이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 가족의 모압생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나오미는 얼마 안 되어 남편을 그 땅에서 잃었고, 그 지역 여인들과 결혼한 아들 둘은 10여년 후에 자식 없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러한 나오미의 삶은 기구하다 또는 박복하다는 말로 다 나타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던 차에 고향 땅이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기후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모든 것이 회복되었습니다. 반면에 나오미는 모든 것을 잃고 모압 땅에 더이상 마음 붙일 것이 없습니다. 결국 나오미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마음 먹습니다.

상황은 다르지만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작은 아들 같은 모습입니다. 떠나온 처지가 더이상 견딜 수 없게 되었을 때 아버지의 집이든 고향이든 돌아갈 곳을 생각하고 돌아가기로 결심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돌아갈 곳이 있고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은 그래도 행복할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믿음도 이해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에게서 떠나온 사람이, 실상은 누구나 그럴 것인데,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현실의 참담함을 깨닫고 하나님에게 돌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오미는 과부가 된 두 며느리들을 데리고 돌아간다는 것은 할 일이 못된다고 생각합니다. 과부는 고아, 이주민과 함께 성서에서 특별히 약자로 언급되는 사람들에 속하는데, 자신도 과부이니 자신이 그들의 미래를 책임진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못할 일일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오미에게는 그가 떠나온 베들레헴 사람들의 시선도 부담이 될 것 같습니다. 어려울 때 떠나더니 좋아지니까 돌아온다고 할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나오미는 고향 사람들이 나오미가 왔다고 ‘환영할’ 때 자신을 나오미(내 기쁨)가 아니라 마라(괴로움, 쓰라림, 씀)로 불러달라고 하며 하나님의 징계로 빈손이 되어 왔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역시 저 둘째 아들이 돌아와서 아버지에게 하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이런 나오미와 며느리 룻에게 무슨 희망이 있을런지요? 그런데 고대 이스라엘에는 토지를 잃은 친척에게 토지를 되찾아주는 ‘고엘’ 제도라는 게 있었고 머냐 가까우냐에 따라 고엘이 되는 차례가 있었습니다. 나오미의 경우는 자식 없는 과부 며느리는 또하나의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가 형사취수법이라고 부르는 것에 따라 고엘은 자식 없이 과부가 된 자에게 자손을 낳게 하는 일도 떠맡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그러한 제도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영되는지 얼마나 엄격하게 지켜졌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나오미와 룻처럼 그 제도의 수혜자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하튼 그러한 제도들이 나오미와 룻에게는 사회적 구조의 길이 되었고, 그 책임들을 떠맡은 보아스라는 사람이 먼훗날 다윗 가문과 왕조의 기원이 되었으니 놀랍기만 합니다.

자신의 선택이 잘못 되었고 하나님께 징계를 받은 삶이라고 자책해야 했던 나오미, 그가 모든 사람들의 축복 속에 룻이 낳은 아들 오벳의 양육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품에서 다윗 왕조가 싹텄습니다.

그와 룻의 이러한 현재는 돌아가기로 하고 동행하기로 한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돌이킴은 절망 속에서 피어난 희망의 행동입니다. 어둠 속에서 붙든 어머니의 하나님이 그들의 행동에 새미래로 응답하시는 그의 섭리를 여기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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