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희생은 나와 무관한가?”

“함부로 하는 일에 용감한 자는 (백성을) 죽이는 것을 본받고, 함부로 하지 않는 일에 용감한 자는 (백성을) 살리는 것을 본받는다. 이 둘 중에 한 쪽은 이롭고, 한 쪽은 해로운데, 하늘이 미워하는 바를, 누가 그 까닭을 알겠는가? 이럼으로써 성인은 오히려 그것을 삼간다(어려워한다). 하늘의 도는 싸우지 않고도 잘 이기고, 말하지 않고도 잘 응하고,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오고, 늘어지지만 잘 도모한다. 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어서 트였으나 잃어버리지 않는다.”
- 노자, 『도덕경』, 73장
勇於敢(者)則殺, 勇於不敢(者)則活, 此兩者或利或害, 天之所惡, 孰知其故, <是以聖人猶難之>, 天之道, 不爭而善勝, 不言而善應, 不召而自來, 繟然而善謀, 天網恢恢, 疏而不失

인위적인 다스림을 고집하는 자는 인민을 죽이고, 무위를 행하는 자는 인민을 살린다. 노자는 그 까닭을 설명한다. 인위적인 정치는 현실에서 혼란과 불복종을 초래하는데, 그러한 혼란과 불복종은 하늘의 뜻이기도 하다. 하늘의 길은 싸우지 않고 이기고, 말하지 않아도 응하고, 부르지 않아도 저절로 찾아오고, 느슨한 듯하지만 그 이치를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노자가 말하는 하늘은 자연의 도를 뜻한다.

하백이 물었다. “무엇이 하늘이고, 무엇이 사람입니까?” 북해약이 말했다. “소와 말의 발이 네 개인 것, 이것을 하늘이라고 말하고, 말의 머리에 굴레를 씌우고, 소의 코에 구멍을 뚫는 것, 이것을 사람이라고 한다.”
- 장자, “추수편”

▲ 인위적인 정치는 현실에서 혼란과 불복종을 초래하는데, 그러한 혼란과 불복종은 하늘의 뜻이기도 하다. ⓒGetty Image

성인은 인민을 죽이는 일과 해로운 일과 자연이 미워하는 일을 스스로 삼간다.

이제는 우리가 못 박힐 차례입니다.
우리가 어리석어 우리 대신 그분을 못 박아 가시게 했듯
이제는 우리가 못박혀 메달릴 차례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피 흘릴 차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대신하여 앞서서 피 흘리며 갔듯이
이제 다른 이들을 위해 우리가 피 흘리며 가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아야 할 쓴 잔이라면
말없이 받아 들여야 합니다.
비난의 돌멩이, 눈총의 화살, 모함의 가래침을 받으면서
그분이 말없이 그 길을 가셨듯
우리도 우리의 십자가를 끌고 이 길을 가야 합니다.
영광이 못되는 돌 자갈길에, 목을 축일 물 한 모금
땀 씻을 손수건 한 장 건네받지 못한다 해도
이 길이 옳은 길이라면 꿋꿋이 가야 합니다.
함께 가기로 했던 사람들이 우리를 모른다 하고
뒷걸음친다 해도
그분이 말없이 가시었듯 우리도 가야 합니다.
- 도종환, “나의 십자가”

남한의 역대 대통령들 중에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은 자기 나라의 인민들을 죽이면서 정권을 잡았고, 독재로 권력을 유지하였다. 물론 이명박은 돈을 긁어모으기 위해서, 박근혜는 아버지의 영화를 되찾는다는 명분으로 주변의 사람들이 죽었다. 노자가 비판하는 함부로 권력을 사용하여 인민을 죽이고, 죽게 하고,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을 역대 최고 권력자가 했다는 역사는 부끄럽고 한탄스럽다. 하늘이 미워하는 일을 한 사람들은 자연의 이치에 의해서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은 그 험한 현대사를 순응하거나 뚫고 살아 있는 것이다. 지금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때에 희생한 모든 인민들에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은덕을 입고 있는 것이다. 미래에 더 좋은 세상, 후손들에게는 살만한 세상을 꿈꾸게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역사의 청산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회개하여 돌이켜서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애(愛)씀이 있어야 한다. 모든 인민이 나아가 모든 생명이 정당한 생명의 권리를 보장받으며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예수님의 존재와 예수님과의 관계를 부인했던 베드로의 과오를 우리는 되밟지 말아야 한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나와 거리가 있다고 먼저 희생당한 분들을 모른다고 할 수 없고, 그분들의 희생이 나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여기에서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그분들의 희생을 알아야 하고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땅 이곳저곳에서 먼저 울고 있는 수많은 닭들의 홰치는 소리를 따라 함께 우는 닭이 됩시다.

“예수님이 잡혀서 대제사장의 관저로 끌려갔을 때 바로 그곳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예고대로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자기를 부인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베드로의 첫 번째 부인은 예수님에 대한 무지함을 주장하고, 둘째는 그 소속을 완강하게 부인하고, 셋째는 예수와의 관계를 부인합니다. 베드로는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으며, 갈릴리 사람이므로 그들과 한 패라는 사실을 저주하고 맹세하면서 극구 부인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닭 울음소리를 듣고 비로소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울었다고 합니다. 베드로를 회개시킨 그 닭은 지금도 울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마음속에 닭을 한 마리씩 넣어 두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책감입니다. 기독교는 너무 죄책감을 부추기지만, C.S. 루이스는 죄책감을 정의하기를 “참된 죄의식은 우리의 삶에 내재하는 죄와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을 경고하는 마음의 비상벨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삶에 죄가 존재할 때,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이상이 발생할 때 그 닭은 이를 경고하기 위해 우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깨우침으로 뿔뿔이 흩어져 도망갔던 제자들이 다시 모이게 되었고, 그들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예수님의 부활을 기다렸습니다. 아직도 부족한 제자들이지만, 그들이 모임으로써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습니다. 내가 가는 길이 전혀 다른 길이었음을 알았을 때 즉시 돌아서서 옳은 길로 들어서야 합니다. 닭의 홰치는 소리에 즉시 엎드려 울었던 베드로처럼 돌아서는 행동은 개인과 공동체가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서는 출발이 될 것입니다. 닭은 베드로를 깨우치기 위해서 먼저 울었습니다. 우리가 어둠 속에서 절망하고 있을 때, 새로운 일을 계획했으나 두려움 때문에 우물쭈물 망설이고 있을 때, 닭이 홰치는 소리처럼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은 우리 안에 깊이 잠겨 있다가 우리를 부르고 초대합니다. 그 소리를 듣고 깨우치고 깨닫는 일은 우리의 몫입니다. 내 마음을 깨우치고, 내 몸을 깨닫게 하고, 세상의 어둠과 악귀를 물리치고 신새벽을 알리는 닭이 됩시다.”
- 이병일, 『미친 예수』(서울: 도서출판 밥북, 2017), “신새벽, 닭의 홰치는 소리” 중에서

이병일 목사(광주무등교회)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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