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을 지나고 제법 쌀쌀해진 아침 공기를 보면 겨울이 다가왔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일교차도 높아져서 독감 예방주사도 미리 맞아 두어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제일 추운 건 북미, 남북 상황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남북이산가족상봉,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남북군사회담, 그리고 무수하게 진행됐던 민간교류와 만남들까지 훈풍이 불던 한반도 상황은 10년 사이에 급속도로 냉각되었습니다. 마치 이른 아침과 한낮의 기온이 확연히 다른 요즘 날씨처럼 불과 10년 전과 지금은 판이하게 다르게 느껴집니다.

‘통일’, ‘한반도 평화’, 한국사회의 중요한 의제였습니다. 하지만 두 번의 보수 정권을 거치면서 이러한 의제는 자취를 감췄습니다. 사람들이 체감하는 것도 매우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치 독감에 걸린 것 마냥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앓고 있는 형국입니다.

민중신학과 통일운동

그렇다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두 번의 보수정권이 망쳐놓은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 그들에 대한 평가는 잠시 미뤄뒀으면 합니다. 한국 사회의 보수, 아니 파쇼적 세력들의 속성이야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평화통일에 대한 답은 평화를 일구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통일운동으로 부름 받은 목회자 한기양 목사(울산 새생명교회)에게 듣고자 합니다.

▲ 울산새명교회 한기양 목사 <민중신학과 교회> 세미나에서 민중신학을 토대로 어떻게 통일운동에 접근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고수봉

지난 7일(화) <민중신학과 교회> 세미나 학생들을 만난 한 목사는 통일운동에 뛰어든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다른 교단 목사님들과 함께 평양육아원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평양육아원은 북측에서 가장 시설이 좋다고 하는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은 충격이었습니다. 시멘트 위에 허름한 장판 한 장 깔려있는 차가운 곳에서 본 아이의 얼굴은 연약해 보였습니다. 그 얼굴에 예수님의 얼굴이 오버랩되면서 아침에 읽은 성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그러더니 1년 후에 다시 그곳에 가게 되더군요.”

아마도 그에게 민중신학적 관심이 없었다면 외면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민중신학의 산실이라는 선교교육원에서 민중목회의 세례를 받았다고 표현합니다. 민중에 대한 관심과 관점이 없었다면 공해추방운동을 시작으로 환경선교에 발을 들이지 않았을 거라고 합니다. 통일운동에 나서게 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봉사였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신학적 입장 없이 물질적으로 돕는다면 모두 허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북미, 남북 관계나 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신학적 입장을 갖춰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통일 운동가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민중신학적 관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는 남북문제를 ‘통일’보다 ‘화해’와 ‘평화’를 중심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화해와 평화적 체제가 중심이 되지 않고서는 통일은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한반도 통일과 기독교’라는 책을 집필하면서 ‘화해신학’을 강조합니다. 그것도 모두 민중신학이 있었기 때문에 비판적으로 남북의 정권과 사상을 보고, 남북의 민중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두려움이 없이 화해와 평화의 길로

통일운동이 위축된 이유, 특히 목회 현장에서 미진한 이유를 그의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대사회적으로 기장은 ‘평화통일기도회’, ‘평화통일 주일’, 평화통일위원회 활동‘ 등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목회자들도 평화통일에 대해 동의합니다. 하지만 목회 현장에서는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고립과 신도의 이탈이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에 대해 한 목사는 “지난 세기 한국 사회는 ‘빨갱이’인지 아닌지로 나눴습니다. 인식의 틀 자체가 폭력적인 방식이거예요. 그러다 보니 기장 교회는 배타되고 고립되었던 아픈 역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목회 현장의 고충은 이해하지만 목회 현장의 교인들은 매우 성숙해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전북노회의 사례를 전해주었습니다. 노회 차원에서 평화통일 사업으로 ‘평화통일 기행’을 계획했다고 합니다. 주최 측은 참여 인원을 소규모로 계산해 버스 3대 정도 빌리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기행 일주일, 400여명이 등록하더니 당일 650여명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DMZ 출입부터 식당, 버스까지 새로 계획을 짜고 관공서의 협력을 얻는 등 어려웠지만 성공적인 기행이었다고 합니다.

목회현장의 교인들은 목회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평화통일’을 두려워하거나 무관심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교회의 통일운동이 더 다양해지고, 대중적이며, 많아질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좌우되지 않습니다. 이미 북측을 경험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좀 더 서로를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합니다.

한 목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흔히 북측을 ‘북한’이라고 표현합니다. 북측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북 지원사업으로 전달된 쌀포대에 적힌 ‘대한민국’을 보고 그제야 우리 국호를 알았다고 합니다. 그 만큼 서로를 모르고,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북한’이라는 표현은 그들의 국호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낮춰 부르는 말이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선 언어도 바꿔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끝으로 그는 민중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살아있는 신학과 목회를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생명을 자연과학의 차원에서 말할 수도 있고, 인문학 차원에서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신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관점을 우주적 차원으로 혹장하기도 하고, 아주 세미한 차원으로 집중시킬 수도 있어야 합니다. 평화통일은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는 아무 중요한 의제입니다. 항상 끊임없는 관심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길 바랍니다.”

고수봉 기자  gogo9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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