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서 하늘을 보는 사람들

500년 전,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이던 루터는 교회가 신앙의 본질인 말씀과 은총, 믿음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했다. 당시 교회는 물질과 권력, 이기심과 같은 세속적 욕망이 신앙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루터의 종교개혁은 아직도 진행형인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교회는 세속적 욕망을 떨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종교개혁 기념, 무엇을 기념하고 있나

종교개혁 500주년, 한국교회 모두가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기대감도 높았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마치 종교개혁 이전의 중세 봉건의 교회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소작농들의 삶에는 관심 없고, 대토지를 소유하기 바쁘던 교회가 오늘에는 종교인 과세를 대비해 이중장부를 만들자던 교회로 부활했다. 종교권력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던 마녀사냥은 혐오와 배제 차별을 부추기는 각종 교단법으로 탄생했다. 한국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자더니 500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 같다.

▲ 류장현 교수와 생명선교연대 공동으로 주관하는 한신대 신학대학원 민중신학 세미나 ⓒ고수봉

한국교회가 종교개혁의 거품을 물며, 상서로운지 상스러운지 모를 총회를 하고 있을 당시, 그 밖에는 차별과 혐오, 배제를 멈춰달라는 작은 자들이 울부짖고 있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한일서 4:16 상반절) 그들이 내건 성서의 말씀은 성소수자를 교회와 학교에서 내쫓겠다는 한국교회에서 찾을 수 없는 깊은 울림과 감격을 주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말씀이 누구에게서 고백되느냐는 매우 큰 차이를 낳는다. 높은 시멘트 건물과 화려한 유리벽으로 치장된 곳에서 고백되는 하나님의 사랑보다 절망과 고난의 자리에서 힘겹게 움터 나오는 하나님의 사랑이 훨씬 더 값지다. 하나님이 그곳에 고난받는 사람들과 함께, 민중과 함께 있기 때문이다.

민중신학적 성서읽기, 무엇을 읽었는가

7,80년대 민중신학과 그 교회는 그런 사람들의 눈으로 성서를 보고자 했다. 어쩌면 그들의 자리가 민중의 자리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민중의 눈으로 성서를 볼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 교리와 제도로 왜곡된 성서를 예수사건을 중심으로 새롭게 읽어내고자 했다.

강연을 맡은 이병일 목사는 “성서는 하나님과 인간이 어울려서 만든 사건, 즉 하나님과 민중이 함께 만들어낸 해방의 역사로써 오늘 우리의 삶에서 반복되어야할 역사”라며, 민중적 성서읽기를 요약했다. 그러면서 더 나아가 “성서를 깊이 이해하다 보면 민중적으로 읽혀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성서는 민중을 묻는다. 민중의 현실, 고난, 한, 구원, 해방, 희망, 나라를 따져 묻는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성서해석의 목적이 되고 방법이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류장현 교수도 “민중신학은 ‘예수가 누구인가?’를 묻지 않는다. ‘예수는 어떤 사건을 일으켰는가’에 집중한다.”며, “민중신학에서는 종교적, 제의적으로 해석된 케류그마적 예수가 아닌 민중 이야기 안에 살아있는 예수를 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런 면에서 민중신학은 성서를 규범이나 정형으로 보지 않는다. 성서는 ‘민중의 사회적 전거’로 이해된다.

예수는 민중으로 살았다. 예수는 민중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으며, 병자를 치유했고, 귀신을 내쫓았다. 유대 종교권력을 정면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예수는 민중의 해방을 말했고, 민중은 예수를 따라 해방을 말했다. 예수는 민중이었고, 민중은 예수의 해방사건의 주체가 되었다. 그리고 민중은 예수가 되었다.

성서를 읽은 사람의 시각이 바뀌어야

발제를 맡은 김용민(신대원, 4/4) 씨는 “예수님은 명령과 수칙에 놓여있던 민중들을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깨우치고 해방하셨다.”며 “촛불 혁명을 보면서 세월호 아이들과 백남기 농민이 부활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찬송가 한 줄 없었지만 가장 감격스러운 민중의 예배로 기억된다.”고 소감을 전했다.

끝으로 이병일 목사는 “민중의 눈으로 성서를 읽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배운 선입견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어쩌면 민중의 눈으로 보는 것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바닥에서 성서를 보아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민중이 되는 것은 쉽지 않다. 버리고자 한다고 해서 사회문화적 위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최소한의 동일화, 역사적 상상력을 동원해서라도 바닥에서 성서를 읽어보자.

“서는 자리가 바뀌면 보이는 풍경도 달라지는 법”이라고 한다. 민중교회는 민중의 자리로 한국교회가 나오길 바란다. 그리고 그들의 눈으로, 그들이 보는 풍경을 함께 목격하고, 그들을 통해 새로운 해방의 사건을 일으켜 가시는 그리스도를 발견하고자 한다. 여전히 민중신학과 그 교회가 우리에게 요청하는 과제이다.

고수봉 기자 gogo9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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